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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걸어도 걸어도> 일본의 가족 변화, 걷기의 의미, 일본의 전통 가옥

by borybory-click 2025. 3. 18.

영화 &lt;걸어도 걸어도&gt; 관련 사진

 

1. 기본 정보

  • 개봉일: 2009.06.18.
  • 장르: 가족, 드라마
  • 평점: 8.84
  • 등급: 전체 관람가
  • 러닝타임: 114분
  •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 주연: 키키 키린, 아베 히로시, 나츠카와 유이, 하라다 요시오

 

2. 일본의 가족 변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걸어도 걸어도는 단순한 가족 드라마를 넘어, 일본 사회가 겪어온 경제적·문화적 변화를 담아낸 작품이다. 특히 영화가 배경으로 삼고 있는 시대는 ‘잃어버린 20년’이라고 불리는 일본의 장기 불황기(1990년대~2000년대)와 맞물려 있다. 이 시기는 일본 사회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미쳤으며, 가족 구조와 세대 간 가치관의 변화를 이끌었다. 영화 속 가족의 모습은 과거와 현재가 충돌하는 공간에서 일본 사회의 변화를 미묘하게 드러낸다.

1990년대 일본은 버블 경제 붕괴 이후 장기적인 경제 침체를 겪었다. 이로 인해 많은 중산층 가정이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평생직장의 개념이 흔들리면서 고용 불안정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었다. 걸어도 걸어도에서 등장하는 아버지 요시오(하라다 요시오)는 개업의로서 가족을 부양해온 전형적인 전후(戰後) 세대의 가장이다. 그러나 그의 아들 료타(아베 히로시)는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프리랜서로 살아간다. 이러한 설정은 일본의 전통적인 가족 개념이 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아버지가 경제적 책임을 지고, 자녀는 부모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가치관이 강했다. 하지만 ‘잃어버린 20년’을 거치며 이러한 전통적인 역할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료타는 부모 세대가 당연하게 여겼던 ‘안정된 직업’과 ‘가족에 대한 책임’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나 있으며, 이는 세대 간 갈등을 야기한다. 아버지는 아들의 불안정한 경제적 상황을 못마땅해하며, 아들은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죄책감을 느낀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는 대사 하나하나가 함축적인 의미를 지닌다. 걸어도 걸어도에서도 가족 간 대화 속에서 일본 사회의 세대 차이가 드러난다. 특히 아버지 요시오와 료타의 대화는 과거와 현재의 충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면이다. 예를 들어, 저녁 식사 자리에서 요시오는 료타에게 “남자는 돈을 벌어야 한다”고 말하며 전통적인 가치관을 강조한다. 반면 료타는 부모의 기대를 부담스럽게 여기며, 이미 경제적·사회적 구조가 변했음을 암시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는 ‘잃어버린 20년’ 이후 젊은 세대가 겪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다. 과거처럼 한 직장에서 평생을 보장받는 시대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부모 세대는 여전히 기존의 틀을 강요하는 것이다. 이러한 갈등은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부모 세대는 가족이 한 집에 모여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자녀 세대는 독립적인 삶을 원한다. 영화 속에서 료타가 부모의 집을 방문하는 장면에서도 이러한 차이가 두드러진다. 부모는 오랜만에 찾아온 아들을 반갑게 맞이하지만, 료타는 형의 기일이라는 의무감에 의해 방문했을 뿐이다. 가족의 의미가 세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걸어도 걸어도는 전통적인 일본 가족 구조가 서서히 붕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 속 부모 세대는 여전히 가부장적인 가치관을 유지하고 있지만, 자녀 세대는 더 이상 그 틀 안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는 일본 사회에서 1인 가구 증가, 결혼 기피 현상, 비정규직 증가 등의 사회적 변화와 맞닿아 있다. 특히 료타와 그의 아내(유)와의 관계는 현대 일본의 새로운 가족 형태를 보여준다. 유는 료타보다 연상이며, 이전 결혼에서 낳은 자녀가 있다. 이는 전통적인 ‘핵가족’ 개념에서 벗어나, 재혼 가정과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증가하는 일본 사회의 변화를 반영한다. 또한 영화 속에서 가족이 한자리에 모였을 때도, 과거처럼 따뜻한 분위기가 아닌 어색함과 거리감이 느껴진다. 부모는 자녀가 자신들과 가깝게 지내기를 바라지만, 자녀들은 독립적인 삶을 원한다. 이러한 모습은 일본 사회에서 점점 늘어나는 ‘고립된 노인 가구’ 문제와도 연결된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부모와 자녀가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멀어지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걸어도 걸어도는 단순히 한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것이 아니라, 일본 사회의 변화를 섬세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잃어버린 20년’ 동안 일본의 경제적·사회적 구조가 변화하면서, 전통적인 가족 개념도 함께 흔들리고 있다. 부모 세대는 여전히 과거의 가치관을 고수하지만, 자녀 세대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가족 간의 갈등과 거리감은 더욱 깊어지고 있으며, 영화는 이를 조용하지만 강렬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를 과장된 연출 없이, 일상적인 대화와 미묘한 감정선으로 표현해낸다. 이는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가족의 개념에 대한 보편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과연 ‘가족’이라는 관계를 어떻게 유지해야 할까? 과거의 가치관을 계속해서 지켜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새로운 방식으로 가족을 재정의해야 할까? 걸어도 걸어도는 이러한 질문을 던지며, 관객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다.

 

3. 걷기의 의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걸어도 걸어도는 일상의 미묘한 감정을 섬세하게 담아낸 작품으로, 일본 가족 영화의 정수를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걷기’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인물들의 심리 상태를 반영하고 관계의 변화를 암시하는 중요한 장치로 작용한다. 영화 제목에서부터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걷는 행위’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동시에, 인물들의 심리적 거리감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중요한 요소로 기능한다. 일본 영화에서 이동과 공간의 활용은 자주 등장하는 주제지만, 걸어도 걸어도에서는 특히 가족 간의 감정 변화와 연관되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온다.

영화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걷기의 의미 중 하나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나타내는 방식이다. 주인공 료타(아베 히로시)는 아내와 함께 부모님 집을 방문하지만, 그의 태도에서는 어딘가 어색함이 묻어난다. 그는 부모와의 관계에서 완전히 편안하지 못하며, 특히 아버지(하라다 요시오)와의 대화에서는 긴장감이 흐른다. 영화 속에서 료타와 아버지가 함께 길을 걷는 장면이 있다. 하지만 이 장면에서 두 사람은 나란히 걷기보다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걷는다. 이는 물리적인 거리감뿐만 아니라, 감정적인 거리감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부모와 자식 세대 간의 가치관 차이가 점점 벌어지고 있으며, 특히 ‘잃어버린 20년’ 이후 경제적·사회적 변화로 인해 세대 간의 격차가 더욱 커졌음을 암시한다. 일본 영화에서 인물들이 함께 걸으면서 나누는 대화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걸어도 걸어도에서도 인물들은 걷는 동안 표면적으로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지만, 그 속에는 숨겨진 감정과 해결되지 않은 갈등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료타와 어머니(키키 키린)가 함께 걸으며 대화하는 장면을 살펴보자. 어머니는 “그래도 집에 자주 와줬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부드럽게 말하지만, 그 속에는 아들이 부모에게 좀 더 신경 써주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하지만 료타는 이를 애써 넘기거나 농담으로 돌리며, 직접적인 감정 표현을 피한다. 이는 일본 특유의 ‘말하지 않는 감정’ 문화와도 연결된다. 걸어도 걸어도에서 걷기는 단순히 현재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과거의 기억을 소환하는 장치로도 사용된다. 특히 영화 속에서 료타의 가족이 고인이 된 형을 추모하기 위해 이동하는 장면에서는, 가족 구성원 각각이 가진 상실감이 걷는 행위를 통해 표현된다. 부모는 여전히 형을 기억하며 그를 이상화하고 있지만, 료타는 형과 비교되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부모와 함께 걸으며 형을 기리는 의식에 동참한다. 이 과정에서 료타는 과거와 현재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며, 부모의 기대와 자신의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보인다. 걸어도 걸어도의 마지막 장면은 영화의 주제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시간이 흘러 료타는 부모님 집을 다시 방문하지 않고, 그는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료타와 그의 가족이 길을 걸어가는 장면은 부모 세대와의 단절과 동시에, 새로운 세대로의 이동을 상징한다. 료타가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이는 일본 사회에서 전통적인 가족 구조가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메시지이다. 과거에는 부모를 부양하는 것이 자식의 당연한 의무로 여겨졌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개인의 삶과 가족 간의 관계를 다시 정의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걸어도 걸어도에서 걷기를 단순한 이동이 아닌, 감정과 관계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활용한다. 인물들이 걷는 동안의 거리감, 대화 방식, 그리고 걷기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일본 사회의 변화를 세밀하게 담아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걸어도 걸어도는 단순한 가족 영화가 아니라, 세대 간의 갈등, 변화하는 가족 관계, 그리고 일본 사회의 변화를 담아낸 작품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걷기’라는 중요한 영화적 장치가 존재한다. 이 영화에서 걷는 장면들은 인물들의 감정을 함축적으로 전달하는 동시에,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관계의 변화를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우리는 모두 삶의 길 위를 걸어가지만, 때로는 그 길에서 가족과 함께 걷기도 하고, 때로는 홀로 걸어야 할 때도 있다. 걸어도 걸어도는 바로 그런 삶의 모습을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으로 보여준다.

 

4. 일본의 전통 가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걸어도 걸어도는 일본 가족 영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적 요소 중 하나는 ‘집’이다. 영화 속 가정집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가족 간의 관계와 감정을 드러내는 중요한 장치로 활용된다. 일본 전통 가옥의 구조와 특성이 영화 속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를 분석해 보면, 가족의 거리감과 세대 차이를 더욱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일본의 전통 가옥, 즉 ‘고민가(古民家)’는 목조 구조와 미닫이문(후스마, 쇼지)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구조는 개방성과 폐쇄성이 공존하는 독특한 공간을 형성한다. 걸어도 걸어도에서 등장하는 부모님의 집은 이러한 전통 가옥의 특징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으며, 이는 영화 속 가족의 감정과 관계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영화에서 집은 ‘세대 간의 간극’을 강조하는 공간으로 활용된다. 부모 세대는 여전히 전통적인 공간에 머물러 있지만, 아들 료타(아베 히로시)는 도시에서 현대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영화 초반, 료타가 아내와 함께 부모님 집을 방문하는 장면에서 그는 집 안을 낯설게 바라보며 어색한 태도를 보인다. 이는 그가 이미 부모 세대와는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암시한다. 일본 전통 가옥은 실내와 실외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특징이 있다. 미닫이문을 열면 실내와 정원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이는 개방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다. 그러나 걸어도 걸어도에서는 이 개방성이 오히려 가족 간의 거리감을 강조하는 장치로 사용된다. 영화 속에서 료타가 부모님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보면, 그들은 종종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예를 들어, 거실에서 대화하는 장면에서 료타는 방 한쪽에 앉아 있고, 부모는 반대편에 앉아 있다. 이는 물리적인 공간감뿐만 아니라, 감정적인 거리감을 나타내는 방식이다. 또한, 영화 속에서 어머니(키키 키린)가 부엌에서 요리를 하며 아들과 대화하는 장면에서도 미닫이문이 반쯤 닫혀 있다. 이는 어머니가 아들과 소통하려 하지만, 완전히 마음을 열지는 못하는 미묘한 감정을 반영한다. 이러한 연출은 일본 가족 특유의 ‘직접적인 감정 표현을 피하는 문화’와도 연결된다. 일본 전통 가옥에서 또 하나 중요한 공간 요소는 복도(엔가와, 廊下)이다. 걸어도 걸어도에서 복도는 단순한 이동 공간이 아니라, 인물 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장치로 활용된다. 료타가 부모님 집에서 복도를 따라 걸어가는 장면에서, 그는 부모와의 관계에서 느끼는 어색함과 거리감을 그대로 드러낸다. 특히 료타와 아버지(하라다 요시오)가 좁은 복도를 마주 보고 지나가는 장면에서는, 두 사람 사이의 서먹한 감정이 더욱 강조된다. 복도의 물리적인 좁음이 오히려 감정적인 거리감을 확장시키는 효과를 만든다. 걸어도 걸어도 속 집에는 작은 정원이 있으며, 이 공간은 부모 세대가 과거를 간직하고 있는 장소로 묘사된다. 일본 전통 가옥에서 정원은 단순한 외부 공간이 아니라, 가족의 역사와 추억이 깃든 곳으로 여겨진다. 영화에서 어머니는 정원에서 시간을 보내며 옛날 이야기를 꺼내곤 한다. 반면 료타는 정원을 바라보며 과거를 회상하지만, 그 기억 속에서 자유롭지 못한 모습을 보인다. 정원은 부모 세대에게는 추억과 안식의 공간이지만, 료타에게는 부담스러운 기억을 상기시키는 장소가 되는 것이다. 특히 영화 속에서 료타의 형을 기리는 장면에서도 정원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부모님은 정원에서 형을 추억하며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지만, 료타는 그 감정을 완전히 공유하지 못한다. 이처럼 정원은 가족 간의 감정적 차이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공간으로 기능한다. 걸어도 걸어도의 마지막 장면에서 료타는 부모님 집을 떠난다. 시간이 흘러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그 집은 더 이상 그가 방문해야 할 공간이 아니다. 그는 새로운 삶을 살아가며, 과거와의 연결 고리를 점차 정리해 나간다. 이러한 장면은 일본 사회에서 점점 사라져 가는 전통 가옥과 가족 구조의 변화를 반영한다. 과거에는 부모와 자식이 한 집에서 오랫동안 함께 살았지만, 현대에는 핵가족화와 도시화로 인해 이러한 문화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영화 속에서 료타가 부모님의 집을 낯설어하는 모습은, 일본의 전통적인 가족 개념이 변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중요한 장면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걸어도 걸어도에서 일본 전통 가옥을 단순한 배경이 아닌, 가족 간의 관계와 감정을 표현하는 중요한 장치로 활용했다. 개방적인 구조 속에서 느껴지는 거리감, 좁은 복도를 지나며 드러나는 감정의 미묘한 변화, 그리고 정원을 통해 표현되는 과거와 현재의 충돌 등, 영화 속 집은 가족의 이야기를 더욱 깊이 있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한다. 이 영화는 단순히 가족의 갈등을 그린 것이 아니라, 공간을 활용하여 가족의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방식으로 깊은 여운을 남긴다. 집이라는 공간은 단순한 생활의 장소가 아니라, 가족의 역사와 관계를 담아내는 중요한 요소임을 보여주는 작품이 바로 걸어도 걸어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