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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가오는 것들> 교실 밖 철학, 혼자 살기, 여성 삶의 자유

by borybory-click 2025. 10. 23.

영화 &lt;다가오는 것들&gt; 관련 사진

  • 개봉일: 2016. 09. 29.
  • 장르: 드라마
  • 평점: 8.44
  •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 러닝타임: 102분
  • 감독: 미아 한센-러브
  • 주연: 이자벨 위페르, 에디뜨 스꼽

 

1. <다가오는 것들> 속 교실 밖 철학

영화 <다가오는 것들>은 단순히 중년 여성의 삶을 조명한 드라마로 끝나지 않는다. 이 작품은 교사로 살아온 주인공 ‘나탈리’의 일상과 변화 속에서, 철학이라는 것이 실제 삶의 흐름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섬세하게 탐색한다. 우리는 흔히 철학을 학문적 체계로, 추상적인 이론의 영역으로 이해한다. 대학 강의실이나 고등학교 교과서에 등장하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개념들, 혹은 현대 철학자들의 텍스트 속에 갇힌 언어처럼 느껴지기 쉽다. 그러나 <다가오는 것들>은 철학이 교실 바깥에서도 작동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인생의 위기 앞에서 어떤 위로와 방향성을 제공할 수 있는지를 차분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영화 속 나탈리는 파리의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중년 여성이다. 그녀는 남편과 자녀, 노모와 제자 사이에서 나름의 삶의 균형을 유지하며 살아간다. 겉보기엔 단단하고 지적인 여성으로 보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녀의 일상이 하나씩 무너진다. 남편은 다른 여성과의 관계를 고백하며 떠나고, 자녀들은 독립해 자신의 삶을 살아가며, 정신질환을 앓던 노모마저 세상을 떠난다. 이 모든 변화는 순식간에 일어나고, 나탈리는 철학 교사로서 수많은 고전을 인용하며 지성을 논하던 삶에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매우 중요한 질문을 묵묵히 던진다. 철학은 과연, 실제 삶에서 유용한가? 철학자들을 가르치던 그녀는, 이제 자신이 철학적 질문을 통과하며 일상 속의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입장이 된다. 과거에는 플라톤의 이데아, 칸트의 순수이성, 루소의 사회계약 이론을 학생들에게 설명하며 지적 권위를 유지했지만, 막상 자신의 남편이 떠나고 노모가 위독해지는 순간, 그녀는 그 어떤 철학 이론으로도 쉽게 위로받지 못한다. 그러나 영화는 여기서 철학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교실에서 이론으로 가르쳤던 철학이 교실 밖, 현실의 고통 속에서 어떻게 내면화되고 실천되는지를 천천히 보여준다. 나탈리는 혼자 남겨진 일상 속에서도 독서를 멈추지 않는다. 그녀는 여전히 철학서를 읽고, 책을 통해 사유하고, 때로는 출판사와의 만남을 통해 삶의 궤도를 유지하려 한다. 이 과정은 단순한 루틴이 아니라, 철학이 삶 속에 스며든 방식이다. 그녀는 삶의 해답을 철학 이론에서 직접적으로 찾지는 않지만, 그 철학적 사유의 습관이 그녀를 버티게 만든다. 이를테면, 불행을 정의하려 들지 않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 그리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자유를 실천하려는 자세는 단순한 인내가 아니라, 철학적 태도의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나탈리의 제자였던 파비앵은 공동체적인 삶을 실천하려는 청년이다. 그는 산속의 작은 농장에서 다른 철학도들과 함께 살아가며, 자급자족을 실험하고, 체제를 비판하며 살아간다. 그는 교실 속 철학이 아닌, 삶 속에서의 철학을 시도한다. 이 대조적인 인물은 철학이 각자의 방식으로 현실에 적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나탈리에게는 사유와 독서가 실천의 방식이고, 파비앵에게는 노동과 공동체 생활이 그 해답이다. 이 두 인물의 교차는 철학이라는 것이 반드시 이론적일 필요도, 실천적일 필요도 없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철학은 질문이고, 태도이며, 선택의 문제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나탈리가 겪는 변화가 명확한 전환이나 극적인 반전 없이 묘사된다는 것이다. 그녀는 절망하거나 큰 감정의 폭발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조용하고 단단하게 변화의 흐름을 받아들인다. 이것은 철학적 훈련을 거쳐온 사람이 인생의 격랑을 맞닥뜨렸을 때 가질 수 있는 태도이다. 감정은 있지만 그것에 압도당하지 않고, 불행은 있지만 그것에 매몰되지 않는 삶. 영화는 철학의 실질적 효용을 큰 소리로 외치지 않는다. 하지만 잔잔한 흐름 속에서 철학이 삶을 지탱하는 방식, 상실을 견디는 내적 논리를 어떻게 제공하는지를 세밀하게 보여준다. <다가오는 것들>에서 철학은 교실의 칠판 위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결혼 생활이 끝나고, 가족이 해체되고, 나이가 들어가는 그 일상의 균열 속에서 조용히 작동한다. 그녀가 마주한 현실은 가혹하고 예측 불가능하며, 어떠한 준비도 할 수 없었던 일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그녀는 혼란 속에서 중심을 잃지 않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며, 새로운 삶의 균형을 찾아간다. 이 모습은 단지 한 인물의 성격이 아니라, 철학적 사고를 삶의 기반으로 삼은 사람이 보여줄 수 있는 자연스러운 결과다. 또한 영화는 삶과 철학이 어떻게 서로를 비춰주는지에 대해서도 말한다. 나탈리가 철학 교사로서 사회와 제자들에게 가르쳐온 것들이, 결국 자신의 삶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우리는 본다. 그녀는 고전적 사유를 현대의 삶에 맞게 해석할 줄 알았고, 자유와 책임, 사랑과 이별, 죽음과 존재에 대해 쉽게 결론 내리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철학이 일상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단단한 방식이다. 진정한 철학은 감정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더 깊이 이해하고, 그것을 통제하지 않으면서도 조율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다. 현대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고, 삶의 속도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철학은 이런 시대에 비효율적인 학문처럼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오히려 그럴수록 우리는 철학이 주는 사유의 깊이와 삶의 태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가오는 것들>은 그 점을 아주 조용하지만 강하게 설득해 낸다. 교실에서의 철학 강의보다, 교실 밖의 인생에서 철학이 어떻게 몸에 스며드는지를 보여주는 이 영화는, 학문으로서의 철학이 아니라, 삶의 기술로서의 철학을 새롭게 인식하게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다가오는 것들>은 철학적 성찰을 담은 드라마 그 이상이다. 그것은 교사와 지식인의 경계를 넘어서, 인간 존재의 조건과 그것을 감당하는 방식에 대한 기록이며, 철학이 이론에서 실천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한 편의 사유의 여정이다. 결코 요란하지 않지만,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균형을 잃지 않으려는 나탈리의 삶은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철학은 멀리 있지 않으며, 그것은 지금 이 순간, 나의 태도와 선택 속에서 이미 작동하고 있다고.

 

2. <다가오는 것들>의 혼자 살기

영화 <다가오는 것들 (L’Avenir, 2016)>은 삶의 균형이 서서히 무너져 가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혼자 살아간다는 것’의 현실을 아주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이 영화는 전통적인 서사 구조나 감정적 드라마에 의존하지 않고, 아주 일상적이고 담담한 방식으로 고립과 독립, 외로움과 자유, 관계의 해체와 정체성의 재구성이라는 주제를 다룬다. 특히 중년 이후 혼자 살아가게 된 여성 ‘나탈리’의 삶을 중심으로, 현대 사회에서 혼자 사는 존재들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떤 방식으로 일상을 구성해 나가는지를 조명한다.

나탈리는 철학 교사로서 지적인 삶을 살아온 여성이다. 남편과 함께 살았고, 자녀를 키우며 나름 안정된 중산층 생활을 유지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모든 것이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다. 남편은 젊은 여성과의 관계를 이유로 집을 떠나고, 자녀들은 성장해 각자의 삶을 살아가며, 정신적 의존이 컸던 어머니도 병원에서 세상을 떠난다. 나탈리는 단기간에 가족, 배우자, 그리고 역할까지 잃는다. 그러나 이 영화가 흥미로운 이유는 이러한 상실 이후 그녀가 보이는 반응에 있다. 절망하거나 극단적인 감정 표현을 하지 않고, 담담하게 그리고 차분하게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며 ‘혼자’의 시간을 새롭게 조직한다. 그녀의 일상은 혼자 있는 시간으로 채워진다. 철학 책을 읽고, 출판사와 미팅을 하며, 학생들과 수업을 이어가고, 집에서 고양이와 시간을 보내는 등 이전과 다르지 않은 활동이 계속되지만, 그 모든 장면은 이제 ‘타인과 공유되지 않는 시간’이라는 점에서 완전히 달라진다. 영화는 이 고독한 시간을 부정적으로만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 시간 속에서 나탈리가 자유롭게 숨 쉬고, 스스로의 존재를 다시 느끼게 되는 순간들을 조용히 비춘다. 그녀는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엄마라는 사회적 정체성이 사라진 이후에도 여전히 자신만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낸다. 혼자 사는 삶은 이제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다. 특히 프랑스와 같은 유럽 사회에서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1인 가구의 증가가 중요한 사회문화적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 또한 최근 몇 년 사이 ‘혼밥’, ‘혼영’, ‘혼캠’ 등의 단어가 대중문화 속에 자주 등장하면서, 혼자 살기 혹은 혼자 있는 시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영화 <다가오는 것들>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혼자 있는 여성의 삶’을 단순히 고립이나 불행의 상태로 보지 않고, 성숙한 인간이 마주하는 자연스러운 생의 한 국면으로 그려낸다. 나탈리의 삶은 누군가에게는 쓸쓸해 보일 수 있다. 대화를 나눌 가족도 없고, 일과를 마치고 돌아와 식사를 함께 할 사람도 없다. 심지어 그녀의 곁에는 말조차 통하지 않는 고양이 한 마리뿐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런 쓸쓸함 속에서 피어나는 내면의 자유, 자기 결정권, 그리고 감정의 독립성을 천천히 보여준다. 이전에는 타인의 감정에 반응하며 살아야 했던 삶이 이제는 오롯이 자신의 감정에만 귀를 기울이는 삶으로 변화한다. 외로움은 있지만, 그 외로움을 감싸 안고 살아가는 성숙한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물론 혼자 사는 삶이 무조건 자유롭고 행복하다는 낙관적인 시선을 영화는 갖지 않는다. 나탈리는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를 기다리는 표정을 짓기도 하고, 파비앵 같은 제자에게서 묘한 감정의 흔들림을 느끼기도 한다. 또한 돌아가신 어머니의 부재 속에서,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공허함이나 책임감의 벗어남에 대한 죄책감을 갖기도 한다. 영화는 이러한 감정들을 억누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혼자 살아가는 존재의 내면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혼자 있음’이라는 상태는 단지 물리적인 고립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적 역할로부터의 분리, 감정적 연결에서의 단절, 그리고 심리적 독립을 동시에 포함한다. <다가오는 것들>은 이 복합적인 혼자의 상태를 매우 섬세하게 풀어낸다. 나탈리는 이제 더 이상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설계하고, 감정을 통제하며, 때로는 감정에 휘둘리기도 하면서 살아간다. 그녀의 모습은 단지 중년 여성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수많은 1인 가구, 특히 중장년층 여성들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흥미로운 점은 영화가 나탈리의 삶을 통해 ‘혼자 있는 삶도 충분히 가치 있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메시지를 조용히 전한다는 점이다. 이는 현대의 소비적이고 외향적인 라이프스타일과 대비되는 철학적 태도다. 누구와도 경쟁하지 않고, 보여주기 위한 삶도 아닌, 자기 자신과 깊이 있게 마주하는 삶. 그것은 고독하지만 동시에 충만하다. 영화는 이 균형 잡힌 삶의 아름다움을 소리 높이지 않고, 오히려 낮고 잔잔한 울림으로 관객에게 전한다. <다가오는 것들>이 가진 또 다른 강점은, 혼자 사는 여성이 자립적인 주체로 묘사된다는 점이다. 나탈리는 단지 외로움을 견디는 존재가 아니라, 삶의 의미를 스스로 만들어가고,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조절하며, 이전보다 훨씬 더 자기 자신에 집중하는 존재로 변모한다. 이는 ‘혼자 있음’이 약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율적이고 성숙한 인간으로 가는 하나의 과정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메시지다. 영화 속 풍경들도 이러한 혼자 살기의 감성을 뒷받침한다. 파리 시내의 혼잡한 장면보다는, 브르타뉴의 자연, 숲과 산책로, 고요한 집 안 풍경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는 도시적 고립이 아니라 자연 속의 고요함이라는 감성적 이미지로 연결되며, 혼자 있는 시간이 반드시 외롭거나 불행한 것이 아님을 시각적으로 증명해 준다. 특히 철학 교사로서 삶의 본질에 대해 고민해 온 나탈리에게, 혼자 있음은 사유의 시간이며 성찰의 공간이다.

결국 <다가오는 것들>은 현대 사회의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인 ‘1인 삶’을 깊이 있게 다룬 작품이다. 그것은 단지 트렌드를 따르기 위한 접근이 아니라, 인간의 삶이 어떻게 변화하고, 사회적 관계가 어떻게 재편되며, 개인이 어떻게 존재의 본질을 마주하는지를 철학적으로 탐색한 결과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새로운 삶의 태도를 제안하지 않는다. 다만 있는 그대로의 삶을 보여줌으로써, 혼자 있어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아주 조용하고 단단하게 전한다.

 

3. <다가오는 것들>에서 보여주는 여성 삶의 자유

영화 <다가오는 것들>(L’Avenir, 2016)은 삶의 가장 평범한 지점에서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그 중심에는 한 중년 여성이 있다. 그녀는 철학 교사이고, 아내이며, 두 아이의 엄마이고, 노모를 돌보는 딸이다. 즉, 여성의 생애주기에서 주어진 여러 역할을 다 감당해 온 사람이다. 그리고 그 역할들이 하나씩 그녀의 곁을 떠나가면서 비로소 마주하게 되는 어떤 상태가 있다. 그것이 바로 ‘자유’다. 이 영화는 그 자유를 찬양하거나 비극화하지 않는다. 대신 자유라는 개념이 여성의 삶 안에서 어떻게 발견되고 변화하며 체화되는지를 차분하게 보여준다.

나탈리라는 이름의 주인공은 프랑스 파리에서 고등학교 철학을 가르치는 교사다. 지적인 삶을 살아왔고, 출판사와의 협업을 통해 자신의 철학적 영향력을 행사해 왔으며, 학생들에게도 존경받는 인물이다. 겉으로 보면 안정적이고 성공적인 삶처럼 보인다. 하지만 영화는 이 안정 속의 균열을 아주 서서히, 그리고 절제된 톤으로 드러낸다. 남편은 외도를 고백하고 집을 떠나며,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 독립하고, 치매를 앓던 어머니는 요양원에 보내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난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나탈리로부터 사회적이고 정서적인 ‘역할들’을 하나씩 지워간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 남는 것이 바로 ‘나 자신’이라는 존재,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자유다. 자유라는 단어는 흔히 긍정적인 뉘앙스로 사용된다. 누군가로부터 해방되는 것, 억압에서 벗어나는 것, 제약 없이 선택할 수 있는 상태. 그러나 여성의 생애주기 안에서 자유는 그렇게 단순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어릴 때는 부모의 보호 아래에 있고, 청소년기에는 교육과 규율의 테두리 안에 있으며, 성인이 되어서는 결혼과 육아,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이 자유를 대체한다. 특히 한국 사회를 포함한 많은 문화권에서 여성은 사회 구조 안에서 특정한 ‘역할 수행’으로 자신의 삶이 채워지는 경우가 많다. 아이를 돌보는 엄마, 남편을 내조하는 아내, 가족의 정서를 관리하는 조정자로서의 여성. 이런 삶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러한 역할이 끝나는 어느 시점에 여성은 갑작스러운 ‘무역할 상태’를 맞닥뜨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시점에서 자유는 처음으로 실체를 드러낸다. 나탈리에게 찾아온 자유는 선택이 아닌 결과였다. 남편이 떠나고, 아이들이 집을 떠나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야 그녀는 진정한 ‘혼자’의 시간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 시간은 철저히 비자발적인 고립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묘한 해방감이 존재한다. 누구도 그녀에게 하루의 일정을 요구하지 않고, 감정을 설명할 필요도 없으며, 타인의 스케줄에 맞출 필요도 없다. 처음엔 낯설고 공허하게 느껴졌던 이 시간들은 점차 나탈리에게 ‘선택할 수 있는 삶’을 가져다준다. 그녀는 철학서를 읽고, 시골로 여행을 가고, 출판사와의 관계를 새롭게 재정립하며, 자기만의 템포로 일상을 살아간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라이프스타일의 변화가 아니다. 그것은 정체성의 변화다. 아내, 엄마, 딸이라는 사회적 정체성의 옷을 벗은 나탈리는 철학자라는 내면의 정체성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자유는 구체적인 삶의 형태로 드러난다. 과거에는 자신이 선택했다고 믿었던 일들이 사실은 구조와 관계 속에서 결정된 것이었음을 그녀는 깨닫는다. 지금의 나탈리는 이전보다 더 적은 선택지를 가지고 있음에도, 그 선택의 무게는 훨씬 진실되고 실질적이다. 이것이 영화가 말하는 진짜 자유다. 또한 영화는 자유가 반드시 즐겁거나 행복한 상태가 아님을 분명히 한다. 자유는 때로 외롭고, 책임이 따르며, 불안을 수반한다. 특히 중년 이후 여성에게 찾아오는 자유는 삶의 절반 이상을 타인에게 맞추어 살아온 습관을 거슬러야 하기 때문에 더욱 어렵다. 그러나 <다가오는 것들>은 그 어려움을 회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과정을 묵묵히 견뎌내는 나탈리의 모습을 통해, ‘자유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삶 그 자체로 풀어낸다. 이 영화가 특히 인상 깊은 이유는, 자유를 실현하는 주체로서 여성의 모습을 낭만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탈리는 어떤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지 않고, 성공이나 커리어 상승이라는 드라마틱한 서사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점점 더 단단해지고, 자기 삶의 리듬을 찾아간다. 이 과정은 마치 한 인간이 자신을 구성하고 있던 외부적 정체성을 하나씩 탈피하면서, 가장 본질적인 나에 도달하는 여정처럼 보인다. <다가오는 것들>이 여성의 생애주기에서 자유를 다루는 방식은 매우 현실적이면서도 사유적이다. 이 영화는 교훈을 주려 하지 않는다. 대신 지켜보게 한다. 자신의 삶을 하나씩 잃어가는 과정 속에서 어떻게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어떤 자세로 그것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는지를 보여준다. 자유는 결국 그 모든 것을 감당하고도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힘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나탈리는 외롭다. 그러나 외로움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녀는 고양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정원에 앉아 햇살을 맞으며 책을 읽는다. 누구의 엄마도 아니고, 누구의 아내도 아닌 상태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한다. 이 모습은 많은 여성들이 두려워하는 ‘혼자 있음’의 풍경일 수 있지만, 동시에 많은 여성들이 꿈꾸는 자율의 상징이기도 하다. 영화는 이 모순적인 감정을 아름답고 절제된 시선으로 담아낸다. 결국 자유는 선택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수용의 문제이기도 하다. 선택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그것을 자신의 방식으로 살아내는 것. 여성의 삶 속에서 자유는 그렇게 주어지지 않고, 오랜 시간을 통해 조금씩 구축되어 가는 것이다. 그리고 <다가오는 것들>은 그 과정을 보여주는 탁월한 미장센을 제공한다. 나탈리가 보여주는 조용한 변화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극적인 자유의 이미지와는 다르지만, 훨씬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한 자유다.

이 영화는 더 이상 누군가를 위해 살아야 하지 않을 때, 그 공백을 두려워하기보다는 그것을 나만의 공간으로 채워나가는 삶의 방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것은 분명히 여성의 삶 안에서만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지금도 수많은 여성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과 자유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면, 이 영화는 분명한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자유는 외부로부터 얻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삶의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