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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시, 봄> '손'의 움직임, 과거로 가는 감정, 배경음악

by borybory-click 2025. 5. 3.

영화 &lt;다시, 봄&gt; 관련 사진

 

  • 개봉일: 2019. 04. 17.
  • 장르: 드라마
  • 평점: 8.63
  •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 러닝타임: 104
  • 감독: 정용주
  • 주연: 이청아, 홍종현

 

1. <다시, 봄> 속 '손'의 움직임에 담긴 언어

영화 <다시, 봄>을 다시 떠올려보면,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몇 있다. 그중에서도 여주인공 ‘은조’가 사람들과 마주하거나 혼자 있는 장면에서 손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유심히 보면, 말보다 훨씬 더 많은 감정과 상태가 전달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종종 감정이 복잡할수록 말이 줄고, 몸짓이나 작은 습관들이 더 많아진다는 걸 알고 있다. <다시, 봄>은 그런 점에서 손이라는 신체 부위를 통해 무의식적인 감정의 파동을 섬세하게 전달하는 영화다.

처음 영화를 보면 손의 움직임은 아주 사소하게 느껴진다. 컵을 잡는 장면, 아이의 사진을 쓰다듬는 손짓, 침대 모서리를 어루만지는 장면. 하지만 그 반복 속에서 우리는 인물의 정서가 시계처럼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이 영화가 시간의 흐름을 반대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손동작 하나하나의 의미는 더 특별해진다.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는 설정은 이야기 자체의 구조뿐 아니라, 인물의 감정선을 거꾸로 되짚게 만들며, 그 속에서 ‘손’은 마치 감정의 지도처럼 기능한다. 영화 초반, 즉 시간적으로는 마지막을 향해 가는 시점에서 은조의 손은 매우 무기력하고 경직돼 있다. 물건을 잡을 때도 힘이 없고, 무엇을 만지든 간에 감정이 동반되지 않는다. 특히 딸의 유품을 바라보며 멍하니 손끝만 움직이는 장면에서는, 그 무의식적인 손의 움직임만으로도 은조가 겪고 있는 무거운 애도와 무감각이 동시에 느껴진다. 사람은 큰 슬픔 속에 빠지면 정작 감정이 마비되고, 손끝이나 표정 같은 작은 부분에서 그 상실의 깊이가 드러나곤 한다. 이 영화는 그런 부분을 굉장히 조용하면서도 강하게 보여준다. 시간이 거슬러 올라가며, 즉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은조의 손에는 점점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행동의 속도는 조금씩 빨라지고, 만지는 방식도 더 능동적이 된다. 유품을 쓰다듬던 손은 이제 실제로 딸을 안거나, 머리카락을 넘기거나, 밥을 차려주며 사용하는 손으로 변화한다. 손은 감정을 표현하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관계를 이어주는 매개체로도 기능한다. <다시, 봄>에서 은조가 딸과 다시 마주하는 순간들마다 손을 통해 전달되는 체온은 단순한 연출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미 상실된 것을 다시 얻는 기적과도 같은 그 장면들이 손이라는 물리적 매개를 통해 구현되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점은 은조가 극 중에서 손으로 타인을 밀어내는 장면이 단 한 번도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혼란스럽고 아파도, 그녀는 늘 무언가를 감싸거나 쥐거나 붙잡는다. 이것은 그녀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상실에 대한 불안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계를 회복하고 싶은 욕망을 상징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손의 움직임을 통해 무의식적인 감정과 상처를 드러낼 수 있다고 본다. 타인을 향한 손의 움직임, 혹은 멈칫한 손의 상태는 모두 내면의 깊은 상태를 대변한다. 은조의 손이 가장 크게 떨리는 장면은 다름 아닌, 자신의 선택을 되돌릴 수 있는 순간을 마주할 때다. 이 떨림은 단순한 긴장을 넘어, 무의식 속에서 마주하는 죄책감, 사랑, 그리고 희망이 동시에 교차되는 복잡한 감정의 표현이다. 이 영화가 흥미로운 또 다른 지점은 손의 움직임을 통해 감정의 흐름이 전개될 뿐 아니라, 시간의 역행과 감정의 회복이 서로 병렬적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손이 무기력에서 생동감으로, 경직됨에서 유연함으로 바뀌는 흐름은 단순한 몸짓의 변화가 아니라, 정서적인 재건의 과정으로 해석된다. 특히 딸과의 마지막 만남(영화적으로는 가장 처음) 장면에서 은조의 손은 오히려 가장 능동적이며 적극적으로 묘사된다. 아이의 손을 꼭 잡는 은조의 손은, 상실 이후에는 불가능했던 접촉이지만, 시간의 역행 속에서는 다시금 가능해진다. 그 장면에서 손은 말보다 강력한 회복의 상징이다. 연출적으로도 감독은 손의 클로즈업을 여러 차례 활용하며, 관객이 감정의 정수를 놓치지 않도록 돕는다. 예를 들어 은조가 부엌에서 식칼을 들었다가 망설이며 내려놓는 장면은 대사 하나 없이 손의 움직임만으로도 관객에게 그녀의 감정 변화를 전달한다. 이런 장면들은 인물의 내면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손이라는 몸짓을 통해 이해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다. 좋은 영화는 말보다 시선과 손짓으로 감정을 전달한다는 말이 실감 나는 순간이다. 또한 손을 통해 ‘돌봄’이라는 주제가 강조된다는 점도 중요하다. 은조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누군가를 돌보는 손길이 많아진다. 딸을 씻기고, 밥을 먹이고, 손을 닦아주는 등 작은 돌봄의 행동들이 반복된다. 그것은 그녀가 더 이상 돌봐줄 수 없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에, 영화라는 공간 안에서나마 다시 그 기능을 되찾고자 하는 무의식적인 욕망일 수도 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사랑하는 이를 잃으면 그를 다시 돌보는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를 회복하고자 한다. <다시, 봄>은 손을 통해 그런 본능을 깊이 있게 그려낸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에서 손은 단지 감정의 표현이나 관계의 매개체를 넘어, ‘기억’ 그 자체로 기능한다. 은조가 딸의 머리칼을 빗기며 손으로 감싸는 장면은 단순한 행동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그녀의 몸에 남은 마지막 기억이자, 사랑을 전하는 유일한 언어다. 사람은 언젠가 기억도 흐릿해지고, 말도 잊어버리게 되지만, 손이 기억한 감촉만은 오래 남는다. <다시, 봄>은 그런 진실을 조용히 말해준다. 손으로 쓰다듬고, 잡고, 안고, 떨며 기억하는 모든 순간이 결국 이 영화의 감정적인 중심이 된다. 무엇보다 <다시, 봄>은 손을 통해 보여줄 수 있는 최대치의 감정을 이끌어낸 영화다. 영화 속에서 손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고통과 애도의 과정, 그리고 회복과 사랑의 감정까지 담아낸다. 손은 침묵 속에서도 모든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 침묵이 더욱 깊고 진실하게 다가온다. 이 영화가 감정을 이야기하는 방식이 왜 이렇게 조용하면서도 아픈지, 우리는 은조의 손을 바라보며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2. 과거로 가는 감정은 뇌과학에서 가능한가

사람은 살아가면서 감정의 방향성을 체감하는 순간들이 있다. 기쁨은 앞으로 향하고, 슬픔은 과거에 머무는 느낌이다. 무언가를 잃었을 때의 고통은 늘 지나간 시간에 매달려 있고, 누군가를 그리워할 때도 그 감정은 지금보다 ‘예전’에 더 강하게 맺혀 있다. 그래서일까. 영화 <다시, 봄>을 보며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감정을 다시 겪는’ 방식이었다. 이 영화는 단순한 시간여행의 판타지가 아니라, 실제로 인간 내면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방향성과 그 복원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그렇다면 이런 감정의 되감기, 과거로의 감정적 회귀는 실제로 인간의 뇌에서도 가능한 걸까? 비유나 상징이 아니라, 생물학적·심리학적 사실로서 가능한 현상일까?

인간의 뇌는 시간을 직선적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물리적인 시간은 항상 앞으로만 흐르지만, 인간의 기억과 감정은 종종 이를 거스른다. 과거에 겪은 일을 떠올릴 때, 뇌는 그 일을 단순히 ‘상기’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재경 험한 것처럼 반응한다. 예를 들어, 첫사랑과 이별한 순간을 떠올리면, 단순한 정보 이상의 것이 떠오른다. 그때의 공기, 눈빛, 말투, 그리고 심장 박동까지. 이는 단지 기억이 아니라, 감정의 되살아남이다. 뇌는 실제로 그때 활성화됐던 신경망을 다시 켠다. 바로 이 메커니즘이 감정이 과거로 되돌아갈 수 있는 신경학적 기반이다. 신경과학적으로 보면, 해마(hippocampus)와 편도체(amygdala)가 이 작용의 중심에 있다. 해마는 기억을 저장하는 장기 기억의 창고 같은 역할을 하고, 편도체는 그 기억에 감정적 색을 입힌다. 우리가 어떤 장면을 떠올리며 웃거나 울 수 있는 이유는, 단순히 해마의 정보 전달 때문이 아니라 편도체가 그 기억을 감정적으로 ‘코딩’해두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감정 코딩이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 유지된다는 것이다. 뇌는 새로운 정보를 저장하면서도, 감정적으로 강렬했던 기억은 삭제하거나 변형시키기보다 더 깊이 각인시킨다. 그래서 어떤 이별은 수십 년이 지나도 그 감정 그대로 재생된다. 이는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감정의 시간 역행이다. 기억과 감정이 과거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이론은 정신분석학과도 맞닿아 있다. 프로이트는 인간 무의식 속에 억눌린 감정들이 ‘회귀’의 형태로 나타난다고 보았다. 그것은 과거로의 여행이 아니라, 과거에 멈춰 있는 감정의 반복이다. 영화 <다시, 봄>의 은조처럼, 현재를 살아가지만 여전히 과거의 슬픔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은 많다. 뇌는 그 슬픔을 반복 재생하고, 감정은 거기에 붙들린다. 마치 시간을 거꾸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 실제로는 감정이 시간의 흐름을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감정 회상의 생리적 반응은 실제 시간 감각에도 영향을 미친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감정적 시간왜곡(emotional time distortion)’이라 부른다. 슬픔에 빠진 사람은 시간이 더디게 흐른다고 느끼고, 기쁠 때는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다고 느낀다. 흥미로운 점은, 이 시간 왜곡이 감각이 아니라 신체 반응으로도 확인된다는 것이다. 슬픔에 빠졌을 때 심박수가 낮아지고, 자율신경계가 느려지는 현상은 실제로 시간 지각이 늘어지는 느낌과 일치한다. 반대로 긴장이나 흥분 상태에서는 시간이 빨리 흐르는 듯 느껴진다. 결국 감정이 시간의 속도를 지배하고, 때로는 그 방향까지 틀 수 있다는 의미다.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도 감정이 과거로 되돌아가는 대표적 사례다.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사람은 수년이 지나도 갑작스러운 소리, 냄새, 상황에 의해 당시의 감정과 기억을 고스란히 다시 느낀다. 뇌는 그것이 현재가 아닌 걸 알아도, 감정은 과거에서 멈춘 채 그때의 공포와 고통을 반복한다. 이런 신경학적 현상은 단순한 환상이나 연상이 아니라, 뇌가 실제로 과거의 감정을 재활성화하고 있다는 생물학적 증거다. 따라서 감정이 과거로 향하는 건 상징적 표현이 아니라, 명백한 현실이며 과학적으로도 입증 가능한 사실이다. 영화 <다시, 봄>은 이런 뇌과학적 진실을 이야기 구조와 연출로 풀어낸다. 은조가 하루하루 시간을 거슬러 살아가는 동안 그녀의 감정도 역으로 움직인다. 처음에는 마비된 듯한 상태, 그다음은 분노, 그다음은 슬픔, 그리고 마지막에는 사랑과 회복이다. 이 감정의 흐름은 실제로 많은 정신치료 과정과 유사하다. 외상을 겪은 사람은 회복의 단계에서 과거의 감정을 다시 꺼내보고, 맞이하고, 정리하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영화는 시간을 거꾸로 돌리지만, 실은 감정은 그 흐름대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던 셈이다.

감정은 시간이 흘러야 사라지는 게 아니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숙이 스며들기도 한다. 어떤 감정은 ‘지나간다’는 것 보다, ‘머무른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인간의 뇌는 그런 감정을 기억 속에 저장할 뿐만 아니라, 수시로 되살릴 준비를 하고 있다. 좋은 기억은 다시 꺼낼 때 미소를 짓게 하고, 아픈 기억은 다시 떠오를 때 눈물짓게 한다. 그것이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지는 감정의 유연함이고, 뇌의 놀라운 복원력이다. 결국 감정은 기억과 함께 살아있는 존재다. 시간을 거슬러 떠오르는 감정의 흐름은 인간 정신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단순히 추억하거나 그리워하는 감정을 넘어, 뇌의 구조가 그러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영화 <다시, 봄>처럼 우리는 언젠가 과거로 향하는 감정을 품고 살아간다. 그것은 미련이 아니라 사랑이고, 후회가 아니라 회복을 위한 시간 되감기다.

 

3. 영화 속 배경음악

영화를 감상하다 보면, 화면보다 먼저 마음을 건드리는 것은 언제나 소리다. 특히 인물의 감정이 절정에 달하거나, 무언가 말하지 못하는 슬픔이 가득할 때 배경음악은 하나의 대사처럼 기능한다. <다시, 봄>은 이런 음악의 힘을 극도로 절제되게, 그러나 인상 깊게 사용하는 영화다. 특히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피아노 연주곡은 관객이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가도록 돕는 중요한 장치로 작동한다. 음악은 직접적으로 감정을 설명하지 않지만, 감정의 흐름을 암묵적으로 이끄는 지점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 영화는 일반적인 영화 음악처럼 멜로디가 두드러지거나, 화려한 오케스트레이션으로 감정을 끌어올리는 방식이 아니다. 오히려 피아노 단선율이나 단조 화음의 반복, 느린 템포의 여운을 통해 관객의 심리를 끌어당긴다. 특히 영화의 시작과 끝, 다시 말해 이야기 구조상 가장 감정적으로 복잡한 구간에 피아노 선율이 배치돼 있다. 이는 시간의 흐름과 감정의 축이 반대로 움직이는 <다시, 봄>의 서사를 고스란히 반영한 구조다. 관객은 음악을 통해 시간의 감각을 무의식적으로 조정당하고, 인물의 고통이나 갈망을 정서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피아노는 다른 악기보다 더 ‘인간적’이다. 현악기의 떨림이 자연을 닮았다면, 피아노의 건반은 사람의 호흡과 매우 닮았다. 건반을 누르는 압력, 템포의 미세한 변화, 음과 음 사이의 간격은 마치 누군가의 말 없는 고백처럼 들린다. <다시, 봄>에서 이 피아노의 감각은 관객의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트리거로 기능한다. 음악은 단순히 현재의 감정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 자신의 기억을 소환하고, 그 기억 속의 감정과 영화 속 감정을 겹쳐지게 만든다. 예를 들어, 은조가 딸의 방에 들어가 아무 말 없이 자리에 앉아있을 때 흐르는 피아노 선율은 멜로디라기보다 ‘공기’에 가깝다. 그 소리는 그저 흐르고, 머물고, 침묵을 감싼다. 이러한 피아노 음악은 단순한 분위기 형성을 넘어 신경학적 작용과도 관련이 깊다. 사람의 뇌는 특정한 감정이나 상황을 특정한 음악과 연관 짓는 경향이 있다. 이를 감정 트리거(emotional trigger)라 부르며, 흔히 트라우마 치료나 정서 조절 훈련에서도 사용된다. 음악은 장기 기억과 밀접하게 연결된 해마(hippocampus), 감정 반응을 조절하는 편도체(amygdala)와 직접 연결되어 있어, 특정한 멜로디나 화음이 감정 반응을 유발하는 경우가 많다. <다시, 봄>은 이를 매우 정교하게 이용한 작품이다. 영화의 전반부, 그러니까 이야기상 후반 시점에서 사용되는 피아노 음악은 대부분 음이 낮고 리듬이 느리며, 긴 여운을 가진다. 이 시점의 은조는 절망과 공허 속에 있으며, 음악은 그녀의 감정과 완벽히 맞아떨어지는 파장을 만들어낸다. 반면 영화 후반, 즉 시간상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며 은조가 딸과 가까워지고, 감정의 회복이 서서히 시작될 때 피아노의 리듬은 조금 더 밝아지고 음의 진행도 단조롭지 않다. 아주 미세하게 화성이 확장되고, 멜로디에 감정의 곡선이 생긴다. 이 음악적 변화는 관객이 인지하기 어려울 만큼 섬세하지만, 정서적 몰입의 결정적 요소로 작용한다. 말하자면 음악은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앞서 움직이게 만든다. 관객은 피아노 소리로 인해 감정이 준비되고, 그다음에 인물의 행동을 보며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음악이 말을 대신하는 장면은 특히 인상 깊다. 은조가 말없이 아이를 바라보거나, 거리를 걷거나, 눈을 감고 고개를 젖힐 때, 대사 없이 깔리는 피아노는 관객이 불필요한 해석 없이 감정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때 사용된 피아노 음악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감정의 또 다른 표현 방식이다.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 가슴을 막 누르는 감정의 덩어리가 피아노의 울림으로 전달된다. 이 음악은 침묵의 연장선이며, 슬픔의 리듬이다.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특정 피아노 모티브는 관객의 감정 기억에도 각인된다. 처음에는 슬픔을 동반한 선율이었지만, 영화 후반부에는 그 곡이 전혀 다른 정서로 다가온다. 이는 단순한 테마의 반복이 아닌, 감정 경험의 축적이다. 같은 음악이지만, 인물이 처한 상황과 감정의 깊이에 따라 그 음악이 주는 울림은 전혀 다르게 작용한다. 피아노 선율 하나로 영화 전체의 감정 구조를 꿰뚫는 방식은 매우 치밀하면서도 인간적이다. 또한 이 영화의 음악은 배치 시점에 있어서도 매우 전략적이다. 음악은 항상 인물의 대사 직후가 아닌, 대사 직전 혹은 인물의 행동 이후 잠시 정적이 흐른 다음 삽입된다. 이 ‘틈’은 감정이 머물 수 있는 여백이고, 음악이 개입할 수 있는 시점이다. 여백이 있는 구조는 관객에게 감정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피아노의 음을 따라 스스로 감정을 찾아가도록 한다. 이러한 방식은 매우 섬세한 연출력과 음악적 감수성을 필요로 하며, <다시, 봄>은 그 기준을 충족하고도 남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영화의 피아노 음악이 단지 ‘슬픈 음악’이 아니라는 점이다. 때로는 무기력, 때로는 분노, 또 때로는 회복에 가까운 복잡한 감정을 동시에 담아내는 다층적 구조를 가진다. 그래서 관객은 음악을 듣는 순간마다 동일한 감정을 반복하기보다는, 매 장면에서 새로운 해석과 감정의 깊이를 경험하게 된다. 피아노는 정서를 선형적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층을 더해가며 감정의 입체성을 만들어낸다.

<다시, 봄>의 음악은 말하자면 감정의 숨결이다. 소리 없이 흘러가는 장면조차, 그 배경에 놓인 피아노 선율 덕분에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음악은 이야기를 설명하지 않지만, 이야기를 ‘살게’ 만든다. 그리하여 결국 영화가 끝난 후에도, 피아노 소리 하나가 관객의 기억 속에 오래 남는다. 그것이 바로 이 영화의 음악이 가진 진짜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