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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러브, 어게인> 일보다 사랑, 재도약, 딸과 엄마

by borybory-click 2025. 5. 26.

영화 &lt;러브, 어게인&gt; 관련 사진

 

  • 개봉일: 2017. 11. 16.
  • 장르: 드라마, 멜로, 코미디
  • 평점: 8.31
  •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 러닝타임: 97분
  • 감독: 헬리 메이어스 샤이어
  • 주연: 리즈 위더 스푼, 피코 알렉산더, 냇 울프, 존 루드니츠키, 마이클 쉰

 

1. 앨리스가 선택한 일보다 사랑

영화 <러브, 어게인>(원제: Home Again)은 표면적으로는 가볍고 유쾌한 로맨틱 코미디로 보인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하나의 중요한 질문이 숨어 있다. 바로, 인생의 재출발점에 선 한 여성이 왜 일보다 사랑을 먼저 선택했는가 하는 것이다. 앨리스는 이혼 후 두 딸을 키우며 독립적인 삶을 시작하려 애쓴다. 로스앤젤레스의 고급 주택에서 홀로 육아를 하며 동시에 자신의 경력을 쌓아가려는 그녀의 모습은 현대 여성의 대표적인 삶의 갈래를 보여준다. 하지만 영화는 앨리스가 일보다 사랑을 우선순위에 두는 과정을 천천히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감정적 선택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회복하고 온전히 존재하기 위한 진심 어린 결단이었다.

앨리스는 영화 속에서 단순히 남성에게 의존하는 여성 캐릭터로 소비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상황을 스스로 설계하고, 선택의 중심에 자신을 두는 주체적 인물로 그려진다. 다만 그녀의 선택지가 다른 관객들에게는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독립적인 여성이라면 커리어를 중심으로 삶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여긴다. 사랑은 그 뒤에 따라오는 보너스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앨리스는 이 순서를 과감하게 바꾼다. 그녀에게 중요한 건 단순히 사회적 성취가 아니라, 삶의 안정과 감정의 회복이다. 그리고 이 회복의 과정에 사랑이라는 감정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혼이라는 사건은 단지 관계의 종결이 아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정체성과 삶의 리듬을 완전히 흔들어 놓는다. 앨리스는 전 남편과의 결혼 생활에서 점차 자신을 잃어갔다. 감정이 말라가는 일상, 반복되는 희생, 기대와 현실의 괴리 속에서 그녀는 ‘자신의 소리’를 잃었다. 그 공허함은 이혼 후에도 계속되었다. 일은 그녀에게 필요했고, 돈도 중요했다. 하지만 그녀가 진짜로 갈망한 건 자신을 다시 느낄 수 있는 감정, 누군가와의 진정한 연결이었다. 사랑은 그 감정의 언어였다.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젊은 영화 제작자 ‘해리’는 앨리스의 삶에 갑작스럽게 들어온 인물이다. 처음엔 단순한 로맨스의 장치처럼 보이지만, 해리는 앨리스에게 ‘다시 여자이고 싶다’는 감정을 되살려주는 존재다. 이 감정은 단순히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감정이 아니라, 자신이 누군가에게 매력적인 존재이며, 여전히 살아 있는 감정적 주체라는 사실을 느끼게 해 준다. 해리는 앨리스의 자기 확신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촉매가 된다. 그녀는 일보다 감정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감정을 통해 일을 포함한 삶 전체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은 것이다. 사랑을 선택하는 일은 많은 경우 감정적이고 비이성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앨리스의 선택은 정반대였다. 그녀는 오히려 이성적으로 삶의 재구조화를 고민했고, 그 해답이 감정의 회복에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딸들을 책임지고 키워야 하는 상황, 예술적 정체성을 확립해야 하는 현실적인 부담 속에서도, 그녀는 잠시 일보다 사랑을 먼저 품는다. 그리고 이 선택이 그녀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더 단단하게 만든다. 사랑은 그녀가 다시 자신을 믿고 선택할 수 있는 힘이었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가 연애를 삶의 중심에 두는 것은 종종 비판의 대상이 되곤 한다. 특히 여성의 자립, 독립, 커리어 중심 서사가 강조되는 요즘, 앨리스의 선택은 다소 구시대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러브, 어게인>은 이 시선을 전복한다. 이 영화는 사랑을 자립의 반대말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진정한 사랑은 자립을 가능하게 하는 자양분이라고 말한다. 앨리스는 사랑에 기대어 무너지지 않는다. 그녀는 사랑을 통해 자신을 재발견하고, 그 위에 삶을 다시 구축한다. 또한 영화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꼭 로맨틱한 연애로만 그리지 않는다. 동거하게 된 세 청년과의 관계, 아이들과의 일상, 엄마와의 유대, 그리고 자신과의 관계까지 모두 확장된 의미의 사랑으로 담아낸다. 앨리스가 선택한 사랑은 단순한 연애가 아니라, 다양한 인간관계를 통해 자신을 감정적으로 회복시키고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단순히 누군가와 연애를 시작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삶의 동력을 감정에서 되찾아가는 서사다. 앤서니 홉킨스 감독의 딸인 할리 마이어스-숀 감독은 이 영화에서 여성의 삶을 이상화하지 않는다. 현실적인 문제와 감정의 복잡성을 함께 안고 간다. 앨리스의 선택이 완벽하거나 이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영화는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진심 어린 선택이야말로 현실 속 여성들이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이다. 사랑을 우선순위에 둔 선택은 결코 약함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깊이를 인정하고,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솔직하게 받아들이는 용기다.

결국 앨리스가 사랑을 먼저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그 사랑이 그녀를 다시 숨 쉬게 했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자존감, 감정의 메마름, 혼자가 되어버린 일상 속에서, 누군가와의 따뜻한 연결은 앨리스에게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해주는 열쇠였다. 이 영화는 그 선택이 결코 비이성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가장 인간적인 결단이라는 점을 조용히 설득한다. 그리고 그렇게 사랑은, 때때로 삶을 재건하는 데 가장 필요한 시작점이 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2. 정착이 아닌 재도약의 싱글맘

영화 <러브, 어게인>(Home Again)은 단순한 로맨틱 코미디로 분류되기에는 아까운 작품이다. 이혼 후 두 딸을 키우는 싱글맘 앨리스가 삶의 전환점을 맞이하며 겪는 감정적, 실질적 재정립의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 이 영화는 ‘정착’이라는 단어보다 ‘재도약’이라는 개념으로 읽을 때 비로소 그 진가가 드러난다. 여성의 삶이 중단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궤도로 옮겨가는 시점을 포착한 이 영화는 특히 현대 사회에서 독립을 선택하거나 어쩔 수 없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많은 여성들에게 깊은 공감을 선사한다.

앨리스는 더 이상 누군가의 아내도, 누군가의 딸도 아닌, 오롯이 자신으로서의 인생을 다시 설계해야 하는 시점에 서 있다. 남편과는 감정적으로 멀어졌고, 직업적인 야망은 오래전 접어두었던 채 두 아이를 위해 헌신해 온 시간들이 그녀를 지금의 자리에 세웠다. 이 영화는 그런 앨리스의 ‘현재’를 다정하게 들여다본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앨리스가 새로운 사랑이나 직업을 통해 기존의 삶을 대체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의 축을 옮기는 과정에 있다는 점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이 영화를 정착이 아닌 재도약의 이야기로 읽을 수 있다. 정착이라는 말은 듣기에 안정적이지만, 때로는 멈춰버린 삶을 정당화하는 구실이 되기도 한다. 앨리스는 이혼이라는 사건을 통해 기존의 정착지를 떠났지만, 무작정 어디론가 떠나려는 인물도 아니다.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을 무너뜨리는 대신, 그 위에 새로운 관계와 감정을 하나하나 쌓아간다. 동거하게 된 세 남자와의 관계는 연애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들은 그녀의 외로움을 메우는 로맨스 대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녀가 스스로를 새롭게 바라보는 거울이 된다. 젊고 꿈 많은 청년들이 보여주는 삶에 대한 열정과 모험심은 앨리스에게 다시금 에너지와 영감을 준다. 재도약의 핵심은 ‘내가 누구였는가’가 아니라 ‘이제 누구로 살 것인가’에 있다. 앨리스는 과거의 상처를 잊으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상처를 인정하고, 그 위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다시 설계한다. 영화 속에서 그녀는 남편의 복귀 제안을 냉정하게 거절한다. 아이들 아버지로서는 존중하지만, 다시 아내로 돌아가야 할 이유는 없다는 판단이다. 이 장면은 그녀가 감정적으로 더 이상 과거에 얽매이지 않으며, 새로운 삶의 지형도를 그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단지 한 여성의 독립선언이 아니라, 정서적 재도약의 출발점이다. 이러한 흐름은 직업적인 면에서도 나타난다. 앨리스는 영화감독이었던 아버지의 유산을 떠올리며 자신의 창작 욕구를 되살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동거 남성들의 프로젝트에 자연스럽게 참여하게 된다. 이들의 작업은 단순한 영화 제작이 아니라, 앨리스가 묻어두었던 ‘표현의 언어’를 회복하는 여정이다. 그녀는 다시 일의 재미를 느끼고, 자신의 재능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바로 이 순간이 그녀의 삶이 정착이 아닌 재도약을 향해 움직이고 있음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주목할 만한 것은 영화가 이 모든 변화를 극적이거나 비장하게 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앨리스는 천천히, 그리고 아주 현실적으로 변해간다. 아이들과의 생활은 여전히 고되고, 이성 관계도 완벽하지 않으며, 경력의 회복도 순탄치 않다. 하지만 그녀는 매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이 점에서 <러브, 어게인>은 성장 서사를 로맨틱한 환상이 아닌 현실적인 감정 곡선으로 설계한 작품이다. 그리고 그 곡선은 여성 관객에게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이 영화는 싱글맘이라는 키워드를 ‘결핍’이 아니라 ‘확장’의 의미로 사용한다. 앨리스는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엄마이자, 자신을 재정의하는 여성이며, 동시에 타인과 연결된 존재로서 살아간다. 그녀의 삶은 더 이상 가족의 형태나 결혼의 지속 여부로만 규정되지 않는다. 이혼 후에도 ‘가족’은 해체되지 않고, 오히려 다른 형태로 확장된다. 이 또한 재도약의 상징이다. 결혼이라는 제도에서 벗어나더라도, 관계는 계속될 수 있고, 새로운 의미로 재구성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영화는 자연스럽게 담아낸다. 또한 앨리스의 재도약은 단순히 ‘성공’이라는 결과물로 치환되지 않는다. 그녀는 스타 감독이 되지 않지만, 자신이 살아 있는 감정의 주체라는 확신을 얻는다. 연애 관계는 정리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 사람인지를 정확히 알게 된다. 다시 말해 이 영화가 말하는 재도약은 외적 성취보다 내면의 성장과 감정의 복원에 더 큰 방점을 찍고 있다.

<러브, 어게인>은 지금 이 시대, 정체되어 있다고 느끼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이야기다. 특히 경력 단절, 이혼, 육아라는 키워드를 경험하는 여성들에게 이 영화는 무언가를 다시 시작해도 된다는 조용한 위로를 전한다. 꼭 사회적 성취가 아니더라도, 감정의 흐름을 다시 느끼고, 관계를 새롭게 시작하고, 나만의 공간을 회복하는 것. 그것이 진짜 재도약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앨리스는 정착하지 않고 도약한다. 그녀는 과거로 돌아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영화는 그 여정을 특별하게 꾸미지 않지만, 바로 그 담백함 덕분에 더 깊은 울림을 남긴다.

 

3. <러즈, 어게인> 속 딸과 엄마의 감정적 연결

영화 <러브, 어게인>(Home Again)은 이혼한 여성의 새로운 삶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지만, 그 핵심에는 단지 주인공 앨리스의 연애나 재도약이 있는 것이 아니다. 보다 깊은 시선으로 영화를 들여다보면, 딸과 엄마의 감정적 연결이라는 중요한 서사가 수면 아래 흐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앨리스와 그녀의 두 딸, 그리고 앨리스와 그녀의 어머니가 만들어내는 세대 간 감정의 연결 구조는 단순한 가족 드라마를 넘어, 여성의 성장과 자아 재정립, 그리고 감정의 유산이라는 관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앨리스는 극 중에서 두 딸을 홀로 키우는 싱글맘으로 등장한다. 아이들과의 일상은 평범하고 때론 정신없이 흘러가지만, 그 안에는 그녀의 감정이 정직하게 담겨 있다. 특히 앨리스는 딸들에게 완벽한 엄마가 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주는 솔직한 여성으로 다가가려 한다. 아이들이 잠든 밤,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무너지는 모습도 보여주고, 때론 미처 정리되지 않은 감정 상태로 아이들과 대화에 나서기도 한다. 이러한 앨리스의 모습은 전통적인 어머니상과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바로 그런 모습이 아이들과의 감정적 신뢰를 만들어낸다. 특히 큰딸이지는 앨리스의 감정을 기민하게 읽어낸다. 어린아이지만, 엄마가 울고 있는지, 지쳐 있는지, 또는 혼란스러운지를 정확히 느끼고 그에 맞는 반응을 보인다. 영화는 이 장면들을 대사보다 표정과 시선으로 풀어낸다. 그로 인해 관객은 엄마와 딸 사이에 흐르는 언어 이전의 감정 연결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이는 피상적인 모녀 관계를 넘어서, 서로의 감정을 감지하고 수용하며 나누는 감정 공동체로서의 가족을 보여준다. 이런 감정 연결은 앨리스와 그녀의 어머니 리디아와의 관계에서도 유사하게 이어진다. 리디아는 영화의 초반부에서 딸의 독립적 선택을 존중하면서도 약간은 무심한 듯한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서사가 전개되며, 관객은 리디아 역시 앨리스의 감정 상태를 이해하고 있음은 물론, 그 속에서 자신의 과거와 교차되는 지점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리디아는 과거에 영화배우로서의 경력을 가졌고, 그 경험이 그녀의 세계관을 형성했다. 그녀는 딸이 남편과의 결혼 생활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을 두려움이 아닌 가능성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이 장면은 단순히 할머니와 엄마의 조언이 오가는 서사로 끝나지 않는다. 여기에는 여성이 여성에게 감정을 유산으로 남기는 방식이 숨어 있다. 리디아는 자신의 실패와 상처, 그리고 자부심까지도 앨리스에게 굳이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말 없는 지지와 관찰, 상황에 맞는 한두 마디로 감정을 건넨다. 이는 세대 간 여성 서사가 갖는 독특한 감정 공유 방식을 잘 보여주는 예다. 감정을 과하게 설명하거나 분석하기보다는, 서로의 상태를 ‘안다’는 느낌을 통해 유대감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는 앨리스가 딸들에게 전달하는 감정 방식과도 닮아 있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무조건적인 희생을 강요하지 않으며, ‘엄마니까 다 알아서 해야 한다’는 태도도 취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이들에게 자신의 실수나 혼란스러움을 고백하며, 그 안에서 함께 성장해 가려는 태도를 보인다. 이는 자녀에게 감정을 숨기거나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나누고 함께 이겨내는 방식을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교육적 관계로 발전한다. 딸과 엄마, 그리고 외할머니까지 세 세대에 걸쳐 구성된 여성의 서사는 <러브, 어게인>을 단순한 개인의 연애담에서 벗어나게 한다. 이 영화는 여성 캐릭터 간의 갈등이나 대립보다는 감정의 공감과 계승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확장시킨다. 리디아의 자유로운 세계관, 앨리스의 현실적 감정과 실수, 그리고 어린 딸들의 맑고 감각적인 반응이 하나의 서사로 연결될 때, 이 영화는 단지 ‘재혼’이나 ‘로맨스’가 아닌, 세대 간 감정 유산과 삶의 방식을 고민하는 영화로 격상된다. 감정 연결 구조의 완성도는 이 영화의 몇몇 중요한 장면에서 더욱 드러난다. 예를 들어, 앨리스가 큰딸에게 “지금 엄마도 많이 힘들어”라고 털어놓는 장면에서는, 모녀간에 권위나 책임보다 ‘감정 공유’가 우선시 되고 있는 걸 알 수 있다. 또 한편으로는, 리디아가 딸에게 특별한 충고 없이도 존재 자체로 지지가 되는 존재로 그려지는 점은, 나이 든 여성이 가족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감정적 버팀목이 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러브, 어게인>이 보여주는 감정 연결 구조는 단순히 ‘사랑받고 지지하는 가족’이라는 이상적인 메시지가 아니다. 이 영화는 오히려 감정의 어긋남, 혼란, 갈등조차 공유할 수 있는 관계야말로 진짜 감정 연결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런 감정 연결은 가족 내에서 가장 예민하고 복잡한 구조인 엄마와 딸 사이에서 가장 잘 발현된다. 아이들이 엄마의 감정을 읽고 이해할 수 있고, 엄마 역시 아이들 앞에서 강한 척하지 않으며 자신의 진짜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환경. 이것이 바로 이 영화가 제안하는 ‘감정 기반 가족’의 모습이다.

결국 <러브, 어게인>은 세대를 거쳐 이어지는 여성들의 감정 회로를 따라가며, 감정이 단절되지 않고 흐를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한다. 그것은 어떤 거창한 대사나 사건이 아니라, 식탁 위에 둘러앉아 함께 웃는 장면, 침대맡에서 속삭이는 말, 아이의 눈빛을 읽어내는 엄마의 미소 같은 사소한 순간들에 담겨 있다. 이 영화는 그 모든 순간을 정제된 방식으로 포착하면서, 딸과 엄마가 어떻게 감정을 통해 연결되고 지지하는지를 아름답게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