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릴리와 찌르레기>에서는 릴리와 잭이 딸 케이티를 낳고 행복하게 살던 중 케이티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유아 돌연사 증후군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큰 슬픔을 견디기 힘들었던 잭은 정신병원에 입원해 스스로를 가두게 되고 홀로 남은 릴리는 케이티의 유품과 가구들을 정리하기로 한다. 그러다 마당 나무에 둥지를 튼 찌르레기 새가 날아와 자신의 새끼를 지키기 위해 릴리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본 글에서는 영화가 시의 구조와 유사한 형태로 전개되는 점을 분석해 보고, 고대 신화와의 관계를 탐구해 본다. 그리고 영화를 다중 우주론적 관점에서 살펴보도록 한다.
1. 한 편의 시 같은 영화
영화 <릴리와 찌르레기>는 단순한 서사를 넘어 한 편의 시(詩)처럼 흐르는 작품이다. 화면 속에서 펼쳐지는 감성적인 장면, 반복되는 이미지와 상징, 대사보다는 분위기로 감정을 전달하는 연출 방식은 마치 한 편의 서정시를 감상하는 듯한 경험을 선사한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어떻게 시의 구조와 유사한 형태로 전개될까? 본 글에서는 <릴리와 찌르레기>를 서정시적 관점에서 분석하여, 영화의 미학적 특징을 새롭게 조명해보고자 한다. 서정시는 종종 운율과 리듬을 통해 감정을 표현한다. 이 영화에서도 특정 장면들이 마치 시의 연속된 행처럼 배치된다. 예를 들어, 릴리가 숲 속을 거닐며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바라보는 장면, 찌르레기의 날갯짓 소리가 울려 퍼지는 장면, 창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응시하는 장면 등은 별개의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정서적 흐름을 형성한다. 이러한 장면들은 마치 반복되는 시의 구절처럼 영화 전체에 걸쳐 등장하며, 서사의 연결보다는 감정의 공명을 만들어낸다. 또한 영화는 특정한 이미지들을 의도적으로 반복하여 운율을 형성한다. 이를테면 "거울 속 반영된 릴리", "어둠 속에서 빛나는 작은 불빛", "날아오르는 찌르레기" 같은 상징적인 장면들이 끊임없이 등장하는데, 이는 시에서 동일한 단어나 구절이 반복됨으로써 강조되는 효과와 유사하다. 이러한 반복은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서정적으로 만들 뿐만 아니라, 관객이 자연스럽게 특정 감정을 떠올리도록 유도한다. 영화 <릴리와 찌르레기>는 불필요한 설명을 배제하고 이미지와 상징으로 이야기를 전달한다. 이는 마치 시에서 직접적인 서술 대신 은유와 상징을 활용하여 독자가 스스로 해석하도록 만드는 기법과 닮아 있다. 릴리의 감정은 대사가 아닌 미묘한 표정 변화, 손끝의 떨림, 그리고 주변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표현된다. 예를 들어, 그녀가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빛을 바라보는 장면은 그녀의 내면적 갈망과 상실감을 직관적으로 전달한다. 시에서도 종종 "바람이 지난다"는 식의 간결한 표현이 "시간의 흐름"이나 "이별의 순간"을 암시하는 것처럼, 영화의 연출도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강한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특히, 영화는 많은 장면에서 침묵을 활용한다. 인물 간의 침묵, 새소리만 들리는 순간, 공허한 방 안에서 느껴지는 정적 등은 마치 시의 행간처럼 관객이 그 의미를 채워 넣도록 유도한다. 이는 일본 하이쿠(俳句)나 한국의 한시(漢詩)에서 중요한 미학적 요소인 ‘여백의 미’를 떠올리게 한다. 일반적인 영화는 기승전결의 서사를 따르는 경우가 많지만, <릴리와 찌르레기>는 선형적인 이야기 구조보다는 감정의 흐름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시에서 특정한 서사를 따라가기보다는 감각적 이미지와 정서적 여운을 남기는 방식과 닮아 있다. 예를 들어, 영화는 릴리의 과거와 현재를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고 교차시키며,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몽환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다. 이러한 방식은 전통적인 극영화보다는 서정시가 연상되는 구성 방식이며, 관객이 논리적으로 이해하기보다는 감각적으로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마치 시의 마지막 행처럼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릴리가 먼 곳을 응시하는 장면, 찌르레기가 창공을 가로지르는 순간, 그리고 그녀의 표정 속에서 감도는 복합적인 감정은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않은 채 관객에게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남긴다. 이는 열린 결말을 가진 서정시가 독자의 감정 상태에 따라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한 편의 서정시처럼, 각자의 감정과 경험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여지를 남긴다. 릴리가 바라본 하늘,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그리고 날아오르는 찌르레기의 모습은 마치 시의 마지막 행처럼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관객의 마음속에서 새로운 의미로 완성된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릴리와 찌르레기>는 기존의 이야기 중심 영화와는 다른, ‘영화적 시’라는 독창적인 예술 형식을 탐구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를 감상하는 것은 마치 한 편의 시를 읽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 시의 마지막 줄은, 관객이 영화를 떠올릴 때마다 새롭게 쓰일 것이다.
2. 고대 신화의 관계
영화 <릴리와 찌르레기>는 표면적으로는 한 여성의 내면적 여정을 다룬 듯하지만, 그 이면에는 오랜 신화적 요소들이 스며들어 있다. 이 영화는 단순한 현대적 서사가 아니라, 고대 신화의 구조와 상징을 현대적으로 변주한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신화 속에서 반복되는 이야기 구조, 변신과 초월의 모티프, 자연과 인간의 관계 등은 <릴리와 찌르레기>에서도 중요한 서사적 장치로 작용한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어떤 신화적 요소를 품고 있으며, 그것을 현대적으로 어떻게 재해석하고 있을까? 많은 신화는 특정한 서사 구조를 따른다. 조지프 캠벨이 제시한 "영웅의 여정" 이론에 따르면, 신화 속 주인공들은 일상의 세계에서 출발하여 모험을 경험하고, 변화를 겪은 후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돌아온다. <릴리와 찌르레기> 역시 이러한 구조를 따르고 있다. 릴리는 평범한 삶을 살다가 예상치 못한 사건을 통해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며, 내면적 성장과 변화를 겪는다. 그녀가 경험하는 갈등과 도전들은 단순한 현실적 문제를 넘어선, 마치 신화 속 주인공들이 신비로운 시련을 겪으며 성장하는 과정과 유사하다. 특히 영화 후반부에서 그녀가 직면하는 결정적인 순간들은, 신화 속에서 신들이 인간에게 내려주는 시련과 비슷한 양상을 띤다. 이러한 구조는 단순한 영화적 장치가 아니라, 인류가 오랜 세월 동안 반복해 온 신화적 이야기 방식과 닮아 있다. 릴리의 여정은 곧, 우리가 신화에서 보아온 인간의 본질적 탐색과 성장의 과정이다. 고대 신화에서 새는 신들과 인간을 연결하는 존재로 자주 등장한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신들이 새로 변신하는 이야기가 많고, 북유럽 신화에서도 까마귀는 오딘의 지혜를 상징하는 신성한 존재로 묘사된다. 한국의 단군 신화에서도 곰이 인간으로 변하는 것처럼, 동물과 인간의 경계가 흐려지는 이야기는 신화에서 자주 발견된다. <릴리와 찌르레기>에서 찌르레기는 단순한 동물이 아니다. 그것은 릴리의 감정, 혹은 내면의 한 부분을 상징하는 존재일 가능성이 크다. 찌르레기의 등장은 그녀가 변화하는 순간과 맞물려 있으며, 새의 날갯짓과 릴리의 감정적 해방이 동시에 그려지는 장면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신화 속에서 새는 종종 죽음과 재생, 혹은 영혼의 자유를 의미한다. 찌르레기가 릴리의 앞에 나타나는 순간들은 마치 신화 속에서 신이 인간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순간과 닮아 있으며, 그녀가 결국 찌르레기를 따라가는 듯한 모습은 일종의 초월적 경험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고대 신화에서는 자연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신과 인간이 소통하는 신성한 공간이었다. 샤머니즘적 신화에서는 숲, 강, 하늘과 같은 자연 요소들이 신과 인간이 연결되는 매개체 역할을 하며, 특정 장소는 신성한 의미를 가진다. <릴리와 찌르레기>에서도 자연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영화 속에서 숲은 릴리가 자기 자신을 마주하는 공간이며, 하늘을 날아가는 새는 그녀의 감정적 변화를 상징한다. 이는 고대 신화에서 숲이 깨달음을 주는 공간으로 등장하는 것과 유사하다. 예를 들어, 켈트 신화에서는 신비로운 숲 속에서 인간이 신비한 존재를 만나고 변화를 겪는 이야기가 많다. 일본 신화에서도 숲 속에서 요괴나 신적인 존재를 만나는 설정이 자주 등장하며, 자연과 인간의 경계가 모호하게 표현된다. <릴리와 찌르레기>에서 릴리가 자연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발견하는 과정은 이러한 신화적 요소들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릴리와 찌르레기>가 신화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단순히 옛이야기를 재현하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는 신화적 요소들을 현대적으로 변형하고, 열린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고대 신화에서는 인간이 신과 만남을 경험하고, 신의 뜻에 따라 삶이 변화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현대적인 해석에서는 신과 인간의 관계가 더 복합적이며, 신이 아닌 스스로의 선택을 통해 변화하는 방식으로 변주된다. 릴리 역시 찌르레기라는 존재를 통해 변화하지만, 궁극적으로 그녀가 자신의 길을 결정하는 것은 신이 아닌 ‘자신’이다. 이는 현대적인 관점에서 신화적 요소를 변주하는 방식이다. 즉, 신화의 구조를 차용하면서도 인간의 자율성과 내면적 탐구에 더 집중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릴리와 찌르레기>는 신화적인 색채를 띠면서도, 전통적인 신화와는 다른 새로운 감각을 전달한다. 결국 신화는 한 시대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새로운 방식으로 변형되며 이어진다. 그리고 <릴리와 찌르레기>는 바로 그러한 신화적 이야기가 현대적으로 변주된 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고대의 이야기 방식을 빌려오되, 현대적인 감각과 철학을 담아 새로운 신화를 창조하고 있다.
3. 다중 우주론적 해석
영화 <릴리와 찌르레기>는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않는 열린 구조를 가지고 있다. 릴리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이 필연적인 운명이었는지, 혹은 다른 가능성이 존재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영화의 서사를 다중 우주론(Multiverse)적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다중 우주론이란, 현실이 단 하나의 결정된 경로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마다 다양한 가능성이 존재하며 서로 다른 현실이 공존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이 글에서는 <릴리와 찌르레기>의 서사를 다중 우주론적 관점에서 재해석하며, 릴리의 선택이 필연적이었는지, 혹은 다른 가능성이 존재했을지를 탐구해 보고자 한다. 릴리는 영화 속에서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녀가 특정한 행동을 할 때마다, 관객은 그 선택이 그녀의 운명을 결정하는 요소인지, 아니면 이미 예정된 경로를 따라가는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다중 우주론의 관점에서 본다면, 릴리의 선택 하나하나는 각기 다른 우주를 만들어내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 즉, 그녀가 A라는 선택을 한다면 A의 우주가, B라는 선택을 한다면 B의 우주가 생성되며, 각각의 우주는 독립적으로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영화 속에서 릴리의 과거와 현재가 모호하게 교차되며, 그녀가 실제로 어떤 경험을 했는지 명확하지 않게 표현된다는 점과도 연결된다. 이는 곧, 하나의 현실이 아니라 여러 개의 가능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다중 우주의 개념과 맞닿아 있다. <릴리와 찌르레기>는 환상과 현실이 혼재된 서사를 통해 다중 우주론적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그중에서도 몇 가지 주요한 요소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영화에서 릴리는 같은 장소를 여러 번 방문하거나, 비슷한 상황을 반복해서 경험하는데, 이때마다 미묘하게 다른 선택을 하거나 다른 결과가 발생한다. 이는 단순한 플래시백이 아니라, 마치 서로 다른 우주 속 릴리가 각기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예를 들어, 그녀가 숲 속을 걸으며 찌르레기를 바라보는 장면이 여러 번 반복되는데, 어떤 장면에서는 찌르레기를 따라가고, 어떤 장면에서는 주저하는 모습을 보인다. 만약 이 장면이 다중 우주론적 관점에서 해석된다면, 각각의 장면은 서로 다른 평행 세계에서 릴리가 다른 선택을 한 결과일 수 있다. 영화의 결말은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릴리가 마지막에 어떤 운명을 맞이했는지, 그녀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관객의 해석에 맡겨진다. 이는 곧, 영화 속의 이야기가 단 하나의 결말로 수렴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중 우주론에서는 모든 가능성이 존재하며, 관찰자가 어떤 우주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현실이 달라진다고 본다. <릴리와 찌르레기> 역시 관객이 어떤 관점을 취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있는 열린 구조를 가지고 있다. 릴리는 자신이 스스로 결정을 내린다고 믿지만, 영화 속에서 그녀의 선택이 마치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조종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는 신화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운명론적인 요소와 유사하다. 다중 우주론적 관점에서는, 우리가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선택조차도 이미 존재하는 여러 개의 가능성 중 하나로 작용할 뿐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즉, 릴리는 선택을 하고 있다고 믿지만, 실상은 그녀가 놓여 있는 우주에서 가능한 경로 중 하나를 따라가고 있을 뿐일 수도 있다. 영화에서 찌르레기는 중요한 상징으로 등장한다. 이 새는 릴리를 특정한 방향으로 이끌기도 하고, 그녀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는 듯한 역할을 한다. 찌르레기는 단순한 새가 아니라, 다른 가능성을 제시하는 존재일 수도 있다. 다중 우주론적 해석에서는, 찌르레기가 다른 우주의 릴리 혹은 또 다른 차원의 존재로 볼 수도 있다. 만약 찌르레기가 다른 우주에서 온 릴리의 또 다른 모습이라면, 영화의 이야기는 완전히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된다. 이러한 해석은 영화의 열린 결말과도 조화를 이루며, 관객으로 하여금 릴리의 운명이 과연 정해진 것이었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만든다. 그녀가 선택한 길이 유일한 현실인지, 혹은 그녀가 선택하지 않은 또 다른 길이 어딘가에서 펼쳐지고 있을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결국, 릴리는 단 하나의 현실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무한한 가능성 속에서 다양한 선택을 하고 있으며, 관객 역시 그 선택을 함께 목격하며 또 다른 해석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 역시 릴리처럼, 지금 이 순간에도 무수한 가능성의 갈림길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결론
<릴리와 찌르레기>는 한 편의 시처럼 감상할 수 있는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장면들이 반복적으로 리듬을 이루고, 대사보다 이미지와 감성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며, 구체적인 서사보다는 여운을 중시하는 방식은 시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 <릴리와 찌르레기>는 개인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인류가 오랜 세월 동안 반복해 온 신화적 서사와 상징이 숨어 있다. 릴리의 여정은 전형적인 신화적 구조를 따르고 있으며, 찌르레기는 고대 신화에서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새의 역할을 현대적으로 변주한 존재일 가능성이 크다. 또한, 이 영화를 우주론적으로 해석하면, 영화의 서사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넘어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철학적 탐구로 확장된다. 릴리가 했던 선택들은 단 하나의 필연적인 결과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현실 속에서 또 다른 릴리가 다른 선택을 했을 가능성을 열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