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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모비딕> 기자 캐릭터, 인간의 눈, 피해자들

by borybory-click 2025. 5. 27.

영화 &lt;모비딕&gt; 관련 사진

 

  • 개봉일: 2011. 06. 09.
  • 장르: 드라마, 스릴러
  • 평점: 7.30
  •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 러닝타임: 112분
  • 감독: 박인제
  • 주연: 황정민, 진구, 김민희, 김상호

 

1. <모비딕>의 기자 캐릭터 분석

영화 <모비딕>은 겉으로 보면 스릴러 영화처럼 보일 수 있다. 음모가 있고, 추적이 있고, 위협이 있고, 끝내 밝혀지지 않는 진실이 있다. 그러나 이 영화가 보여주는 진짜 스릴은 ‘사람’에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누군가의 영웅이 되기를 꿈꾸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어쩌다 보니 ‘진실’이라는 단어에 엮여 고립되어 버린 사람이다. 주인공 이방우. 이 인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영화가 단지 진실을 파헤치는 기자 영화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이 영화는 국가와 권력이라는 시스템이 어떻게 한 인간을 ‘고독한 영웅’의 위치로 몰아가는지를 담담히 보여준다.

이방우는 열정으로 무장한 젊은 기자가 아니다. 그는 어느 정도 타협했고, 관성적인 삶을 살고 있으며, 삶에 큰 기대를 걸지 않는 현실적 인간에 가깝다. 그런 그가 어떤 제보를 받고, 호기심 반, 기자로서의 본능 반으로 취재를 시작한다. 사실 처음부터 대단한 정의감이 동기였던 건 아니다. 하지만 진실에 다가설수록, 그는 점점 빠져나올 수 없는 강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이것이 <모비딕>의 진짜 서사다. 자발적 영웅이 아닌, 비의도적 고독자. 바로 권력이 만든 또 하나의 ‘불편한 변수’다. 이방우는 단지 진실을 좇은 것뿐이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곧바로 체제 전체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진다. 국가 권력은 물리적 탄압보다 정서적 고립을 먼저 사용한다. 동료들은 하나둘씩 손을 놓고, 조직은 ‘너무 깊이 들어가지 말라’며 우회적으로 압박하고, 정보 제공자는 사라진다. 결국 그는 혼자 남는다. 그리고 영화는 이 혼자가 된 과정을 결코 과장 없이 묘사한다. 거대한 음모론을 둘러싸고 영웅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고립이 먼저 찾아오고, 그 안에서 사람은 변한다. 이방우 역시 그런 변화를 겪는다. 그의 고독은 단순한 외로움이 아니다. 그것은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점점 사라지는 구조적인 문제를 반영한다. 사회는 진실을 외치는 이들을 영웅이라 칭하지만, 정작 그들에게는 아무런 지원도, 이해도 주지 않는다. 오히려 ‘너는 왜 거기까지 파고들었느냐’는 냉소를 던진다. 이방우는 그래서 더욱 외롭다. 그를 몰아세운 건 조직이 아니고, 상사가 아니고, 제도도 아니었다. 그를 몰아세운 것은 방관과 외면이었다. 진실을 듣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다수. 바로 우리들이다. 이 영화가 특히 인상적인 점은 이방우를 단순한 정의의 화신으로 그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두려워하고, 흔들리고, 타협하려고도 한다. 때로는 무책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인간적인 면모가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와닿는다. 진실 앞에서 누구든 완벽할 수 없다. 누구든 지치고, 누구든 겁을 먹는다. 그러한 인간 이방우가 끝까지 진실을 포기하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야말로, 가장 ‘영웅적인’ 장면이다. 누군가를 구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끝까지 침묵하지는 않았다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그는 고독한 영웅이라 부를 수 있다. 이방우의 여정에는 끊임없는 침묵과 불신이 깔려 있다. 정보를 숨기는 자들은 많고, 말하려는 자는 드물다. 그리고 설령 말하려 해도, 말할 수 있는 자리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기자라는 직업조차도 더 이상 순수한 진실의 전달자라기보다는, 생존을 위한 직장인의 일환으로 전락해 있다. <모비딕>이 보여주는 기자는 이상적인 모델이 아니라, 냉혹한 현실에서 진실의 의미를 붙들고 있는 마지막 사람일 뿐이다. 그리고 이 마지막 사람조차도 무너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영화의 진짜 공포다. 국가는 이야기 내내 등장하지 않는다. 권력자도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권력의 무게’를 실감 나게 체감하게 만든다. 그것은 바로 이방우가 느끼는 불안, 혼자 남는 두려움, 그리고 점점 더 커지는 조용한 폭력 때문이다. 누가 지시하지 않아도, 사회는 그런 사람을 외면한다. 그리고 영화는 그 지점을 정확히 찌른다. '비판하지 않는 자는 공범이다'라는 말처럼, 아무 말 없이 그를 떠나는 동료들도 어쩌면 권력의 연장이 되어버린 셈이다. <모비딕>은 이방우라는 인물을 통해 우리에게 묻는다. 진실을 말하는 것이 왜 이토록 고립을 낳는가. 한 기자가 사회 구조 안에서 어떤 싸움을 해야 하는지를 너무나 현실감 있게, 고통스럽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 싸움은 단 한 번의 특종이나 폭로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끝도 없이 반복되는, 외롭고 무거운 싸움이다.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한, 다음 이방우는 또 등장해야 한다. 그리고 그도 똑같은 고독을 겪게 될 것이다.

결국 이 영화는 단지 ‘기자가 음모를 파헤치는 이야기’가 아니라, ‘어떤 시대에 기자가 존재할 수 있는가’를 묻는 작품이다. 지금 우리는 수많은 정보와 뉴스에 둘러싸여 살아가지만, 정작 ‘진실’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누구나 말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시대이기도 하다. 이방우는 그런 시대의 거울이다. 그는 더 이상 누군가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언론의 상징이고, 동시에 진실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마지막 불씨다. 고독한 영웅은 그래서 더 이상 ‘영웅’이 아니다. 그는 보통 사람이고, 당신이고, 나다. <모비딕>은 그 사실을 상기시키는 영화다. 시스템이 만든 침묵 속에서도 끝까지 말하려는 자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말이 닿지 않아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 그 한 사람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 영화는 잔잔하게,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게 말하고 있다.

 

2. 카메라보다 더 무서운 인간의 눈

 

감시는 이제 더 이상 CCTV나 도청 장치에 국한된 개념이 아니다. 감시는 일상이 되었고, 누구든 감시자가 될 수 있으며, 언제든 감시당할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하지만 영화 <모비딕>(2011)을 보고 나면, 카메라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눈'이다. 침묵 속에 모든 의미가 들어 있는 시선, 말은 하지 않지만 판단하고 있는 얼굴, 무관심한 듯 보이지만 사실은 모든 걸 보고 있는 눈. 이방우가 겪는 진짜 공포는 렌즈가 아니라 사람의 눈빛에 있다.

영화 <모비딕>의 주인공 이방우는 평범한 기자다. 하루하루 반복되는 취재와 마감 속에서 별다를 것 없는 삶을 이어가던 그는, 어느 날 군 내부 문서와 관련된 제보를 받는다. 진실을 좇는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그 여정은 단지 사건을 파헤치는 서사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시간이 갈수록 그는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감싸여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고, 동료들이 전처럼 대하지 않는 것 같으며, 일상적인 말과 행동 속에서도 묘한 긴장이 감돈다. 이방우가 처음으로 감시의 존재를 느끼는 것은 물리적인 것이 아니다. 그는 누군가가 자신을 따라오는 것을 목격하지도, 명확한 위협을 받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고, 눈빛은 날카로워지고, 주변 사람들의 말 한마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이방우의 심리 속에서 작동하는 ‘감시’는 전자적 기기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시선과 침묵, 무언의 태도에서 만들어진다. 특히 그가 동료와 상사에게 진실을 이야기하고, 그 진실의 조각을 공유하려 할 때 돌아오는 반응이 그러하다. 누군가는 눈을 피하고, 누군가는 침묵하고, 또 누군가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넘긴다. 그들은 공격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무관심이, 비폭력적이며 정제된 반응이 이방우를 점점 더 고립시킨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영화 <모비딕>은 감시를 기술이 아닌 사회적 심리로 풀어낸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감시자가 되고 있다는 말, 혹은 누군가의 침묵이 곧 감시의 기능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무엇보다 무서운 건, 그 감시가 도덕적 판단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그저 ‘알고 있다’. ‘알고 있지만 말하지 않는다’. ‘알고 있지만 움직이지 않는다’. 이는 단순한 방관을 넘어선다. 이방우는 자신이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사실보다, 그 사실을 말하는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훨씬 무겁고 고통스럽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 눈빛은, 마치 ‘네가 그런 걸 왜 말해?’, ‘우리 모두 알고 있지만 굳이 꺼내진 말자’는 듯한 무언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영화에서 중요한 모티프 중 하나는 바로 ‘지켜본다’는 행위다. 이방우가 진실을 말할수록, 그는 누군가의 시선 속에서 더 이상 자유롭지 못하다. 편집장도, 동료 기자도, 친구조차도 그의 말에 반응하기보다 시선을 보낸다. 때론 조용한 경계, 때론 명백한 경멸, 때론 숨겨진 동조. 이런 눈빛은 카메라보다 훨씬 더 오래 남는다. 그것은 한 번 찍히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이방우의 일상에 따라붙는다. 카메라는 적어도 기록이라는 기능을 한다. 누가 찍었는지, 무엇을 찍었는지가 명확하다. 하지만 사람의 눈은 그렇지 않다. 시선은 책임지지 않는다. 바라보고도 모른 척할 수 있고, 알고도 외면할 수 있으며, 심지어 거짓을 믿는 듯한 태도로 침묵을 이어갈 수 있다. 이방우가 느끼는 불안의 근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누가 감시자인지도 모르겠고, 누구에게 무엇을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는 상황. 그는 물리적 감시보다도 훨씬 더 피곤한, ‘사회적 감시’와 싸우고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모비딕>이 그리는 인간 심리의 민낯을 마주하게 된다. 진실을 알았을 때, 사람은 반드시 그것을 말해야 할까? 말하지 않는 것은 중립일까, 회피일까, 혹은 묵인일까? 이방우는 점점 그 경계 속에서 무너져 간다. 그는 혼자가 되고, 감정적으로 고립되며, 심리적으로 불안해진다. 물리적 위협 없이도 인간을 무너뜨리는 가장 강력한 감시는 바로 이 시선, 인간의 눈인 것이다. <모비딕>은 이런 무형의 감시를 너무도 섬세하게, 그러나 압도적으로 묘사한다. 별다른 음악이나 연출 없이도, 인물들의 침묵과 표정, 눈빛만으로 관객에게 불안과 공포를 전달한다. 이건 사실 영화 속 이야기만이 아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겪는 모든 감정적인 스트레스 역시, 누군가의 눈빛에서 비롯되곤 한다. ‘말하지 않았지만 무시당한 것 같다’, ‘내가 말한 걸 듣고 실망한 표정을 봤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나만 얘기했다’. 이런 감정은 감시 사회의 또 다른 증상이며, 감정적인 고립의 시작이다. 이방우는 누구에게도 보호받지 못한다. 말했기 때문에 더 위험해졌고, 말한 것을 들은 사람들에게서도 외면당한다. 그는 진실을 추적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시선을 견디는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싸움은 절대 혼자 이길 수 없다. 그는 고독하게 무너져간다. 그런 면에서, <모비딕>은 감시 시스템을 다룬 영화라기보다는, 감시하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그것은 결국 ‘어떤 사회가 사람을 침묵시키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카메라는 정지할 수 있다. 삭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의 시선은 그렇지 않다. 그것은 기억에 남고, 마음을 흔들고, 때로는 사람을 죽인다. <모비딕>은 이방우의 눈빛을 통해, 우리가 매일 지나치는 수많은 침묵과 눈빛이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보여준다. 침묵이 공범이 되는 순간, 감시의 본질은 렌즈가 아닌 인간이라는 사실이 명확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끝까지 잔상이 남는다. 고발, 폭로, 특종보다 더 무거운 이야기. 바로 인간의 시선.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감시라는 것을 <모비딕>은 단단하게 말하고 있다.

 

3. 주인공이 되지 못한 피해자들

영화 <모비딕>을 처음 접했을 때, 우리는 기자 이방우라는 인물에 집중하게 된다. 진실을 파헤치고, 시스템의 음모를 폭로하며,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드러내는 그의 움직임은 분명 이 영화의 중심 서사다. 하지만 조금만 더 깊게 들여다보면, <모비딕>은 이방우조차 완전히 다다르지 못한 세계를 조용히 담아내고 있다. 그것은 바로, 주인공이 되지 못한 자들의 이야기, 즉 ‘기록되지 않은 피해자들’의 역사다.

이방우는 군 관련 비밀문서를 입수하면서 커다란 국가 시스템의 그림자를 마주한다. 권력과 정보, 은폐와 조작, 침묵과 강요가 얽힌 이 사건의 중심에서 그는 분투한다. 하지만 그가 좇는 진실은 거대한 퍼즐처럼 너무 조각나 있다. 문서 속 익명, 보도에서 빠진 배경, 사라진 증언 속에는 분명히 사람이 있었다. 누군가는 고통을 받았고, 누군가는 목숨을 잃었으며, 누군가는 살아남았지만 말하지 못한 채 시간을 견뎌냈다. 그러나 영화는 이 피해자들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을 철저히 침묵 속에 남겨둔다. 이 침묵은 허구적인 장치가 아니다. 그것은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우리는 사건을 말할 때 ‘누가 주도했는가’, ‘어떤 배경이 있었는가’, ‘무엇이 밝혀졌는가’에 주목하지만, 그 안에서 가장 큰 고통을 겪은 사람은 쉽게 지워진다. 피해자는 대개 익명이며, 그들의 증언은 감정적이거나 신뢰할 수 없는 것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사건의 구조가 복잡할수록 피해자는 설명되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은 '있었던 사람'이 아닌 '기록되지 않은 사람'이 된다. <모비딕>에서 인상적인 건, 바로 이런 피해자들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 방식이다. 영화는 피해자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이방우가 추적하는 문서, 삭제된 파일, 음성 없는 영상들 속에 그들의 흔적을 남긴다. 이것은 단순한 서술 방식이 아니라, ‘기록의 결핍’이 어떻게 인간을 지우는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다. 피해자는 존재했지만, 이름을 남기지 못했고,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도 없었다. 이들은 그저 진실을 증명하는 부속물처럼 기능할 뿐이다. 더 무서운 건, 시간이 지날수록 이 침묵이 당연해진다는 점이다. 사건은 뉴스에서 사라지고, 관련자들의 기억에서 멀어지며, 마침내 사회 전체에서 잊힌다. 진실은 때때로 밝혀지더라도, 그 안에 포함되어야 할 개인의 고통은 빠져 있다. 구조는 드러났지만, 인간은 사라졌다. <모비딕>은 이 과정을 극적으로 연출하지 않는다. 오히려 냉정할 정도로 묘사하지 않음으로써, 관객 스스로 질문하게 만든다. '그 사람들은 누구였는가?', '지금 그들은 어디 있는가?' 이방우의 시선은 한계가 있다. 그는 기자로서 최선을 다해 진실에 접근하려 하지만, 그의 프레임은 결국 언론 시스템 안에 갇혀 있다. 어떤 이야기는 너무 민감해서 다룰 수 없고, 어떤 피해자는 너무 고립되어 있어 접근조차 어렵다. 때로는 피해자가 스스로 말하기를 거부하기도 한다. 그만큼 그 고통이 컸거나, 말한다고 해도 바뀔 것이 없다는 체념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침묵은 시간이 갈수록 구조화된다. 영화 후반부, 이방우는 많은 것을 밝혔지만, 동시에 깊은 무력감을 안고 있다. 그가 진실을 세상에 던졌지만, 그것이 얼마나 영향을 줄 수 있는지는 불투명하다. 그리고 그가 파헤친 구조 안에 있었던 사람들의 얼굴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피해자였지만 동시에 기록되지 않은 자들이었기에, 구조적 진실을 담는 프레임 안에서도 빠져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진실을 말하는 이들조차 어떤 진실을 외면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존재하는 것이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문제를 다룰 때, ‘피해자의 실명은 익명으로 처리합니다’라는 문장이 너무 익숙해졌다. 하지만 그 익명은 단순한 배려가 아니라, 사회가 책임지지 않겠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 실명이 기록되었다고 해서 그 삶이 존중받는 것도 아니다. 어떤 피해자는 자신이 피해자였다는 사실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살아간다. <모비딕>의 구조 안에 존재하는 피해자들처럼, 이름 없는 존재들이 현대 사회에 수없이 많다. 이 글을 읽는 우리는 이제 한 가지를 더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어떤 이야기에는 집중하면서, 어떤 이야기에는 눈을 감아왔는가? 우리는 사건을 통해 무엇을 알고, 무엇을 외면했는가? 시스템의 진실을 추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시스템에 짓눌렸던 사람들을 복원하는 시선도 필요하다. <모비딕>은 바로 이 부분을 조용히, 그러나 뚜렷하게 말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진실은, 어쩌면 말해지지 않은 그들의 기억 속에 있었던 것일지 모른다.

기록되지 않은 자들의 역사는 지금도 쓰이고 있다. 매일 뉴스에 등장하지 않는 사연, SNS에서 주목받지 못한 피해, 경찰 조사에서 누락된 증언, 법적 판단으로 구조되지 못한 삶들. 그들은 존재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가, 사회가, 제도가 그들의 이름을 되찾아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기록은 권력이고, 이름을 부르는 일은 존중이기 때문이다. 영화 <모비딕>은 그 진실을 폭로하는 영화가 아니라, 진실의 바깥에 남은 사람들을 기억하는 영화다. 이방우가 쫓지 못한 진실이 있다. 그 진실은, 바로 ‘주인공이 되지 못한 피해자들’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