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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약> 관계의 유효기간, 재레미의 관점, 인지손상 이후 감정

by borybory-click 2025. 4. 3.

영화 &lt;서약&gt; 관련 사진

 

   기본 정보

  • 개봉일: 2012. 03. 14.
  • 장르: 드라마, 로맨스
  • 평점: 8.26
  • 등급: 15에 이상 관람가
  • 러닝타임: 104분
  • 감독: 마이클 수
  • 주연: 레이첼 맥아덤즈, 채닝 테이텀

 

1. <서약>속 관계의 유효기간은 감정인가 기억인가

영화 <서약(The Vow)>은 단순한 멜로드라마가 아니다. 기억을 잃은 아내와, 여전히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의 이야기를 넘어, 이 작품은 감정과 기억의 본질, 그리고 그것이 관계를 유지하는 힘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철학적이고 실존적인 물음을 던진다. 관계가 오랫동안 지속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감정인가, 기억인가. 혹은 그것들을 넘어서는 무언가, ‘의지’ 혹은 ‘선택’인가. 영화는 이 복잡한 물음에 대해 감정과 실천, 기억과 현재의 중첩을 통해 대답을 시도한다.

페이지는 사고 이후 남편 리오에 대한 기억을 잃는다. 그에게서 받은 사랑, 함께한 시간, 결혼까지 이어진 모든 과정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 채, 그녀는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리오를 대한다. 반대로 리오는 페이지와의 지난 시간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 그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으며, 그녀가 누구였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 지점에서 관계의 균형은 무너진다. 한 사람은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어 있는 상태고, 다른 한 사람은 과거의 단절로 인해 현재조차 어색한 상태에 놓여 있다. 기억은 인간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다.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했는지, 누구를 사랑했는지를 과거의 경험과 기억을 통해 규정한다. 누군가와의 관계 역시 그 축적된 시간의 기억 위에서 유지된다. 사소한 일상, 함께 보낸 계절, 주고받은 대화, 함께 나눈 눈빛 하나하나가 관계의 자산이 되고, 그 기억들은 다시 감정을 호출한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기억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은 단지 인지적인 상실이 아니라, 관계의 뿌리 전체가 뽑힌 것과도 같다. 그렇기에 페이지가 기억을 잃었을 때, 그녀의 감정도 함께 초기화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리오라는 인물은 그녀에게 낯선 사람일 뿐이고, 그 낯선 이가 ‘남편’이라 주장할 때조차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 심지어 그녀는 기억상실 이전에 연인이었던 제레미에게 더 많은 감정적 안정감을 느낀다. 이는 현재의 감정이 과거 기억에 의해 얼마나 크게 영향을 받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감정은 마치 기억에 뿌리를 둔 나무처럼, 그 기반이 흔들릴 때 쉽게 흔들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영화는 바로 이 지점에서 감정보다 깊은 무언가에 주목한다. 리오는 페이지가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그녀를 향한 감정을 놓지 않는다. 그는 다시 사랑받기 위해, 그녀의 신뢰를 얻기 위해,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움직인다. 그는 페이지가 자신과 함께했던 모든 기억을 잃었음에도, 그녀를 포기하지 않는다. 이때부터 영화는 감정과 기억의 역할을 넘어 ‘선택’의 영역으로 이동한다.

리오의 사랑은 감정의 결과가 아니라 선택의 결과다. 그는 매일 자신의 감정을 선택하고, 그 감정에 따라 행동하고, 다시 관계를 회복하려는 노력을 실천한다. 페이지가 자신을 떠나더라도, 그가 할 수 있는 건 그녀를 사랑하는 것뿐이다. 그는 그녀의 감정을 바꾸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녀가 새로운 감정을 다시 형성할 수 있도록 옆에서 천천히 기다린다. 이 기다림은 단순한 인내가 아니라, ‘사랑은 선택’이라는 명제를 실천하는 것이다. ‘사랑은 감정이다’라는 말은 낭만적으로 들리지만, 사실 감정은 시간과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반면 ‘사랑은 선택이다’는 말은 감정의 불안정성을 전제로 한다. 감정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지속하는 방식을 말하는 것이다. <서약>은 이 선택의 무게를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리오는 매일같이 페이지에게 다가가고, 새로운 대화를 만들고, 과거에 얽매이기보다는 현재의 순간에 집중한다. 과거가 없다면 현재를 통해 관계를 다시 세울 수 있다는 믿음으로 그는 움직인다.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리오가 그녀의 기억을 되돌리려 애쓰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는 과거를 상기시키려 하지 않고, 그녀에게 새로운 신뢰를 쌓아간다. 그것은 '기억의 회복'이 아닌 '관계의 재창조'다. 기억은 되돌릴 수 없지만, 감정은 다시 만들 수 있다. 선택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서 출발하기에, 그는 매일 페이지를 사랑하기로 선택한다. 페이지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그녀가 다시 사랑에 빠질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고 감정을 조율한다. 영화 후반부, 페이지는 리오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그녀는 그와 함께한 과거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현재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다시 감정을 느낀다. 이 감정은 과거에 기반하지 않으며, 철저히 현재에 근거한다. 이때 사랑은 더 이상 ‘회상’이 아닌 ‘지금 이 순간의 수용’으로 변한다. 그것은 기억보다 감정, 감정보다 선택, 선택보다 실천의 결과다.

<서약>이 전달하는 핵심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다. 사랑은 기억에 의존할 수도 있고, 감정에 좌우될 수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선택과 실천에 의해 유지된다. 과거의 기억이 없다면, 현재의 선택으로 관계를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그 선택이 반복되고, 감정이 쌓이고, 새로운 기억이 만들어지면, 우리는 또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이어갈 수 있다. 리오와 페이지의 이야기는, 사랑이란 감정의 일회성이 아니라 선택의 누적이며, 실천의 결과라는 사실을 조용하고도 강렬하게 증명한다.

 

2. 선택받지 못한 연인 제레미의 관점

영화 <서약(The Vow)>은 기억을 잃은 아내 페이지와 그녀를 다시 사랑하게 만들기 위해 애쓰는 남편 리오의 감정 여정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서사이다. 대부분의 관객은 자연스럽게 리오의 입장에 몰입하고, 그의 헌신과 인내에 감동하게 된다. 그러나 이 영화의 구조를 조금만 비틀어 보면 전혀 다른 감정선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페이지의 과거 연인이자, 기억을 잃은 그녀가 다시 처음으로 감정적 연결을 느끼게 되는 남성, 제레미의 시선이다. 그는 단순한 조연이 아니라, 페이지라는 인물과 그녀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중요한 감정의 한 축이자, 서사에 균열을 일으키는 감정적 진폭이다.

페이지가 기억을 잃고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감정은 놀랍게도 남편 리오가 아닌, 과거 연인이었던 제레미와의 기억이다. 그녀는 자신이 리오와 결혼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으며, 과거의 시간 속으로 돌아가려는 무의식적인 욕망에 사로잡힌다. 이 설정 자체가 영화의 갈등 구조를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장치이며, 리오와 제레미라는 두 남성의 대립은 단순한 삼각관계가 아닌, 기억과 현재, 감정과 선택의 대립으로 확장된다. 제레미는 기억 속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감정의 표지이며, 페이지가 과거의 자신과 연결되는 실존적인 통로였다. 제레미는 단순한 악역이나 서사의 방해자가 아니다. 그는 여전히 페이지를 사랑하고 있으며, 그녀가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다는 가능성에 기대고 있다. 그의 행동은 지나치게 집요하거나 질투심 어린 접근이 아닌, 한때 진심으로 사랑했던 사람에게 다시 손을 내미는 조심스러운 제안에 가깝다. 그는 페이지의 기억이 과거로 멈춰 있음을 이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가 혼란스러운 감정 속에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자신을 드러낸다. 이 점에서 제레미는 도덕적으로 흠결이 없는 인물이며, 관객에게도 그의 진심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하지만 페이지는 다시 그와의 관계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 선택은 단지 ‘리오가 더 낫기 때문’이 아니라, 과거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이 다르다는 점을 스스로 인지했기 때문이다. 기억을 잃은 그녀는 리오와 함께했던 시간은 잊었지만, 그 관계를 선택하게 된 본질적 이유와 감정의 성장 경로를 다시 경험하게 된다. 제레미는 과거의 페이지와 함께 머물러 있지만, 페이지는 이제 더 이상 그 과거 속 인물이 아니다. 그가 붙잡고 있는 감정은 진실하되, 더 이상 현재의 그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것은 잘못된 사랑이 아니라, 맞지 않는 시간대에 머물러 있는 감정이었다. 제레미의 존재는 영화 전체에서 서사적으로 중요한 균열을 만든다. 리오와 페이지의 사랑이 단지 감동적인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지 않도록 현실성과 복잡성을 부여하는 장치다. 관객은 리오를 응원하면서도 제레미의 입장에서 느끼는 상실감과 아픔을 외면할 수 없다. 그는 선택되지 않았지만, 결코 지워지지 않는 인물로 남는다. 사랑은 때때로 누가 더 오래 남아 있었는지가 아니라, 누가 함께 성장해왔는지를 통해 선택된다. 제레미는 그 성장의 여정을 함께하지 못했기에, 결국 페이지의 현재에 설 자리를 잃는다. 그의 감정은 끝내 결실을 맺지 못하지만, 그 감정은 리오의 헌신과 대비되며 더욱 선명한 의미를 갖는다. 사랑은 단지 함께한 기억이 많다는 이유로 지속되는 것이 아니다. 감정은 변하지만, 선택은 의지로 이루어지고, 관계는 그 반복된 선택으로 유지된다. 페이지는 자신에게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준 리오를 다시 선택하고, 그 과정에서 제레미는 한 발 물러나야 했다. 이 장면은 누군가의 승리와 누군가의 실패로 단순화할 수 없다. 사랑은 반드시 선택을 동반하고, 선택은 필연적으로 누군가의 배제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관객은 페이지의 결정을 응원하지만, 동시에 제레미의 상실을 통해 ‘선택되지 않는다는 감정’의 깊은 외로움과 그 감정이 영화 서사에 주는 잔잔한 비극성을 체감하게 된다. 영화는 그의 고통을 과장하거나 조롱하지 않는다. 오히려 조용히 물러나는 그의 뒷모습은 더 많은 여운을 남긴다. 그는 한때 누군가의 전부였지만, 시간이 흐르며 점점 배경이 되었고, 결국 하나의 기억으로 남겨졌다. 이 과정을 통해 관객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비대칭적일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비대칭 속에서도 여전히 진심은 존재할 수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서사적 관점에서 제레미는 ‘과거’라는 감정의 화신이지만, 그 존재는 단순히 회상이나 향수로 기능하지 않는다. 그는 현재를 다시 조율하게 만드는 감정적 자극이며, 페이지가 자신의 감정에 진지하게 귀 기울이게 만든 계기다. 그가 존재했기 때문에 페이지는 진짜 자신이 원하는 사랑이 무엇인지 돌아볼 수 있었고, 결국 과거의 연인이 아닌 지금의 자신이 맞는 사람을 선택할 수 있었다.

영화 <서약>은 제레미를 통해 진짜 사랑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관계란 얼마나 복잡하고 다층적인 감정의 축적 위에서 이루어지는지를 섬세하게 보여준다. 리오와 페이지의 사랑이 빛나기 위해서는 제레미의 그림자가 필요했고, 그 그림자는 단지 상실의 상징이 아닌 서사의 온전함을 위한 필요조건이었다. 선택되지 못한 연인의 서사는, 종종 선택받은 연인의 서사보다 더 많은 질문을 남긴다. 그리고 그 질문은 곧 관객 자신의 삶과 사랑에 대한 질문이 되며, 영화가 끝난 후에도 긴 여운을 남긴다.

 

3. 인지손상 이후의 감정 커뮤니케이션

영화 <서약(The Vow)>은 단순히 로맨스를 다룬 멜로드라마가 아니다. 이 작품은 감정과 기억, 그리고 그 사이에서 작동하는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에 대해 정면으로 다가간다. 한 사람이 사랑하는 상대를 완전히 잊었을 때, 그 사랑이 과연 다시 시작될 수 있는지에 대한 감성적 질문을 넘어, 인지손상 이후 인간 관계 속 감정 전달의 가능성에 대해 집요하게 탐색한다. 특히 리오와 페이지의 관계를 통해 영화는 언어, 기억, 신체 반응, 일상적인 행동 등 다양한 층위에서 ‘진심’이 어떻게 전달되는지를 보여준다.

페이지는 교통사고 이후 최근 몇 년간의 기억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로 깨어난다. 그녀의 현재는 과거의 연장선이 아닌, 과거로부터의 단절로 시작된다. 리오는 그녀의 남편이지만, 그녀의 머릿속에서 그는 아무런 정보도 담기지 않은 빈 인물일 뿐이다. 그녀가 떠올리는 사랑은 과거 연인이었던 제레미이며, 이는 영화 속 갈등 구조를 더욱 뚜렷하게 만든다. 관객의 시선은 리오의 헌신에 집중되지만, 이 영화의 진짜 주제는 리오가 어떤 방식으로 페이지에게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고 있는지, 그 감정이 어떻게 페이지에게 받아들여지고 변화하는지에 있다. 감정은 기억의 축적 속에서 생긴다. 함께한 시간, 공유한 경험, 나눴던 대화가 관계의 질감을 만들어간다. 하지만 그 기억이 완전히 사라졌다면, 감정은 어떻게 다시 자리를 잡을 수 있을까. 영화는 이 물음에 대해 언어 중심의 커뮤니케이션이 아닌, 비언어적 감정 소통과 일상에서의 감정 실천이라는 답을 내놓는다. 리오는 페이지에게 과거를 되돌려주려 애쓰기보다, 현재의 삶에서 그 감정을 다시 만들어간다. 아내가 자신을 전혀 모른다는 사실에 상처받으면서도, 그는 사랑의 진심이 강요가 아닌 기다림과 배려로부터 출발한다는 사실을 몸으로 보여준다. 리오의 방식은 매우 조용하지만 꾸준하다. 그는 페이지가 불편해하지 않도록 감정을 억제하고, 그녀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려 한다.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은 말로 하는 사랑의 고백이 아니라, 행동을 통한 무언의 서포트다. 그가 끓여주는 따뜻한 수프, 그녀가 불안해할 때 살며시 건네는 담요, 그리고 함께 조용히 걷는 산책길에서 나누는 침묵. 이 모든 것이 진심을 구성한다. 기억을 되살리기 위한 자극적 충격이 아닌, 반복과 일관성을 기반으로 한 감정의 ‘습관화’가 그 핵심이다. 인지손상을 경험한 사람에게 감정의 원천은 기억보다 ‘지금 이 순간의 경험’이다. 페이지는 리오를 보며 ‘이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이성적 판단보다는 ‘이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가’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리고 리오의 꾸준한 감정 표현은 결국 그녀의 신체 감각과 정서적 반응을 자극한다. 사랑은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느껴지는 것이라는 말처럼, 페이지는 어느 순간부터 리오의 존재를 불편한 낯선 이에서 편안한 존재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이러한 감정 전환은 일회적인 사건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끈기 있는 감정의 누적이 만들어낸다. 리오는 감정을 전하기 위해 설득하거나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페이지가 스스로 느끼고 선택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간다. 이것이 바로 감정 커뮤니케이션에서의 진심이 가진 힘이다. 감정은 결국 일관된 행동, 흔들림 없는 태도, 상대에 대한 진지한 존중에서 전달된다. 말로는 전할 수 없는 사랑이 때로는 손끝의 온기, 눈빛의 떨림, 표정의 흔들림 속에 담겨 있다. 페이지가 리오에게 마음을 열게 되는 과정은 기억의 회복이 아닌 감정의 재구성이다. 그녀는 여전히 그와의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의 행동과 태도를 통해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인식한다. 이것은 인지적으로 판단하는 과정이 아니라,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감정은 이성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반응한다. 그의 곁에 있을 때 느끼는 안도감, 그의 말투 속에 담긴 따뜻함, 그녀의 감각기관은 리오에 대한 새로운 ‘감정의 기억’을 생성하고 있다. 이러한 감정적 재구성은 단순히 감정 이입의 결과가 아니다. 리오의 진심이 단단하게 축적된 결과이며, 그의 사랑이 하나의 언어로서 기능하고 있다는 증거다. 언어는 때로 오해를 낳지만, 반복되는 행동은 오해를 지우는 힘이 있다. 리오는 말보다 더 강력한 언어로 페이지에게 다가간다. 그것은 진심을 기반으로 한 실천이다. 감정은 말이 아니라 실천에서 증명된다는 사실을 이 영화는 끊임없이 보여준다. 리오와 페이지의 관계는 결국 기억을 되찾은 결과로 회복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기억은 끝까지 돌아오지 않지만, 감정은 다시 피어난다. 이 점이 바로 영화 <서약>이 가진 핵심적 메시지다. 사랑은 기억이 아닌 실천으로 유지되며, 감정은 회상의 결과물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나의 태도와 상대의 반응 속에서 새롭게 형성되는 살아있는 구조다. 인지손상 이후의 감정 커뮤니케이션은 단순한 ‘기억의 회복’이 아닌, 감정의 재형성과 반복 학습을 통한 관계의 재건이라는 점에서 더 현실적이고, 더 성숙한 사랑을 보여준다.

<서약>은 그런 점에서 ‘사랑은 말로 하지 않는다’는 오래된 격언을 되살리는 작품이기도 하다. 리오의 방식은 인지손상을 겪은 상대에게 어떻게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정답은 아닐지라도, 감정의 본질을 고민하게 만드는 훌륭한 예시다. 그의 감정은 그저 전해지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감정이 다시 움틀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심이 가진 가장 큰 힘이다.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고, 기억하지 못해도 다시 살아나는 감정. <서약>이 전하는 감정 커뮤니케이션은 그래서 깊고 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