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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셜네트워크> 페이스북의 탄생, 계약서, 상식의 몰락

by borybory-click 2025. 7. 16.

영화 &lt;소셜네트워크&gt; 관련 사진

  • 개봉일: 2010. 11. 18.
  • 장르: 드라마
  • 평점: 8.58
  •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 러닝타임: 120분
  • 감독: 데이비드 핀처
  • 주연: 제시 아이젠버그, 앤드류 가필드, 저스틴 팀버레이크, 아미 해머

 

1. <소셜 네트워크> 페이스북의 탄생

영화 <소셜 네트워크>(The Social Network)는 단순히 세계 최대 SNS인 페이스북의 창업기를 그린 전기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하버드라는 공간에서, 철저히 남성 중심적인 엘리트 문화 안에서, 경쟁과 욕망, 인정욕구가 어떻게 거대한 플랫폼의 탄생으로 이어졌는지를 날카롭게 조망한다. 이 작품은 기술의 혁신 그 자체보다는, 그 기술을 만든 사람들—특히 사회적 지위와 성별 권력 구조 속에 놓인 이들이 어떤 정서와 욕망을 기반으로 제품을 만들었는지를 면밀히 추적한다. 페이스북은 창의성, 기술력, 기획력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회적 구조의 산물이기도 하다. 이 플랫폼은 소통과 연결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그 기저에는 ‘배제’와 ‘위계’가 놓여 있었다. <소셜 네트워크>는 그 탄생 배경을 하버드라는 특권적 공간과, 남성 중심의 경쟁 문화, 그리고 성적인 서열화가 지배하는 캠퍼스 현실 안에서 풀어낸다. 즉, 페이스북의 기원은 단순한 혁신이 아닌, 사회 구조적 문법의 연장선이었던 셈이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하버드는 단순한 대학교가 아니다. 그것은 미국 엘리트 사회의 심장부이자, ‘누가 진짜 주인공인가’를 구분 짓는 상징적 공간이다. 마크 저커버그는 하버드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 능력을 인정받지만, 그는 하버드 내 상류 계급 네트워크—즉, 클럽, 사교 모임, 집단적인 유대감에서 철저히 배제된 인물이다. 그가 페이스매시(Facemash)를 만든 계기는 그의 내면에 자리한 분노와 인정욕구에서 비롯된다. 여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받고, 동시에 사교적 위계에서 밀려난 현실을 마주한 그는, 복수와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회적 인정을 얻고자 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그의 첫 프로젝트가 ‘여학생의 얼굴을 비교 평가하는 웹사이트’였다는 사실이다. 이는 하버드라는 공간이 성적 위계, 외모 평가, 남성 주도적 관음 문화 속에 얼마나 깊이 잠식돼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문화는 단순히 개인적 불만에서 비롯된 일탈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남성들이 여성의 외모를 재단하고, 서로 비교하며, 그 위에 자기들만의 질서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이 위계적 문화는 곧 페이스북이라는 플랫폼의 설계 논리 속으로 옮겨진다. 페이스북의 초기 설계는 친구 맺기, 프로필 열람, 좋아요, 댓글 등의 기능으로 구성되지만, 이 모든 요소는 사용자의 ‘자기 증명’과 ‘자기 과시’를 중심으로 설계된다. 즉, 사람들이 누가 누구와 친구인지, 어떤 클럽에 속했는지, 어떤 사진을 올렸는지를 드러내는 것이 핵심이었으며, 이는 곧 하버드 캠퍼스의 위계와 연결된다. 누가 더 잘 나가는 사람인지, 누가 더 인기 있는 사람인지 보여주는 것이 페이스북 초창기의 주된 기능이었다. 영화에서 마크 저커버그는 끊임없이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에 시달린다. 그는 지적인 우월감을 가지고 있지만, 하버드 내에서 진정한 사회적 유대를 갖지 못한다. 이러한 외로움과 소외감은 기술을 통한 새로운 사회 구조를 만들고자 하는 욕망으로 이어지고 다. 그러나 그 욕망은 포용적이기보다는 배제적이다. 초기에 페이스북은 하버드 학생만 사용할 수 있었고, 이후 아이비리그, 상위 명문대로 확장됐다. 즉, ‘선택된 자만 쓸 수 있는 소셜 네트워크’였던 셈이다. 이는 정보 기술이 본래 가지고 있어야 할 개방성과는 거리가 멀다. 페이스북은 시작부터 배타적이었고, 그것은 하버드라는 공간이 가진 위계질서를 그대로 복제한 결과였다. 마크가 페이스북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것은 단순한 소통의 장이 아니라, 자신이 소속되지 못했던 그 권력 구조를 재설계해 스스로 중심에 서려는 시도였다.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성공담은 종종 ‘혁신’, ‘도전’, ‘열정’ 같은 단어로 포장된다. 그러나 <소셜 네트워크>는 그 이면의 문화적 문법을 들춰낸다. 그것은 여전히 백인 남성 중심의 문화이며, 그 안에서 여성은 주변 인물이거나 대상화되는 존재로 등장하고 있다. 영화 속 여성 캐릭터들은 대개 남성 주인공의 감정 소비를 위한 인물들이며, 서사에 중심을 두고 주도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심지어 숀 파커가 등장하면서 그 분위기는 더욱 확실해진다. 숀은 성공과 파티, 여자와 명성을 중요시하는 인물로 묘사되며, 그의 영향력 아래에서 마크의 회사 운영 방식도 급격히 바뀐다. 감정이 사라지고, 비즈니스적 판단만 남는 이 흐름은 결국 에두아르도와의 관계 파탄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러한 변화의 과정 속에서 여성은 한 번도 권력의 중심에 놓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페이스북의 성장 과정은 명백히 ‘남자들끼리’의 게임이었다. 아이디어, 결정, 전략, 갈등—all 남성들 간의 문제로 수렴된다. 이는 테크 업계의 구조적 한계를 그대로 보여주며, ‘천재 남성이 모든 걸 만든다’는 식의 신화를 더욱 강화시킨다. 아이러니하게도, 전 세계 사람들을 연결하는 SNS의 시작은, 가장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공간에서 시작되었다. 하버드의 클럽 문화는 자신들의 구성원만 공유하는 정보를 더 가치 있게 여기며, 외부인을 철저히 차단한다. 페이스북은 처음 이 모델을 그대로 가져갔다. 초대받은 사람만 들어올 수 있고, 학번, 이메일, 소속이 검증되어야 했다. 이는 현재의 페이스북이 추구하는 ‘열린 커뮤니케이션’과는 정반대의 출발점이었다. 기술적으로는 연결을 지향했지만, 그 동기는 분열과 배제를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 이 구조는 결국 마크 저커버그 자신의 심리적 동기와도 맞닿아 있다. 인정받지 못했던 사람이 인정받기 위해 만든 연결망. 하지만 그 연결망은 실은 자신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새로운 위계 구조였다. <소셜 네트워크>는 이 지점을 냉철하게 보여준다. 그 안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간관계는 해체되고, 상처받고, 외롭게 남는다. 즉, 이 영화는 SNS 창업이라는 빛나는 서사 속에 숨겨진 고립과 권력, 위계와 배제의 논리를 낱낱이 드러낸다. 그리고 그 기저에는 ‘엘리트 남성 중심 사회’라는 커다란 구조적 맥락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페이스북은 단순한 기술의 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하버드라는 엘리트 공간, 남성 중심의 경쟁 문화, 성적 위계와 배제의 구조 속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소셜 네트워크>는 이 지점을 정면으로 조명한 드문 영화다. 이 영화는 영웅담이 아니라, 시스템과 욕망, 권력 구조가 만들어낸 결과물을 분석하는 작업이다. 마크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수많은 사람을 연결했지만, 정작 자신은 누구와도 연결되지 못한다. 그리고 그가 만든 시스템은 철저히 하버드 캠퍼스의 논리를 닮았다. 이 점에서 볼 때, <소셜 네트워크>는 단지 창업 신화를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회 구조 속에서 어떤 기술을 만들고, 그것이 어떤 문화를 재생산하는지를 되짚는 중요한 문화적 텍스트이다.

 

2. <소셜 네트워크>에서 계약서가 중요한 이유

영화 <소셜 네트워크>(The Social Network)는 단순한 테크 기업의 성공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친구’ 사이에서 시작된 작은 아이디어가 어떻게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고, 그 과정에서 신뢰와 관계, 법적 책임이라는 무게가 어떻게 창업자들을 갈라놓는지를 냉정하게 보여주는 한 편의 교훈서다. 특히 이 작품은 창업 초기에 계약서 없이 구두로만 약속한 결과가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올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많은 창업자들은 열정 하나로 시작한다. 아이디어가 넘치고, 함께 하는 사람이 친구이거나 가까운 지인이면 더욱 그렇다. 이 과정에서 사업 파트너십은 비공식적으로 흘러가고, 구체적인 지분, 역할, 책임 등에 대한 합의 없이 일단 시작해 보자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소셜 네트워크>에서 마크 저커버그와 에두아르도 사베린의 관계도 그랬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러한 '신뢰 기반 구두 약속'은 수천억 달러 가치의 기업이 되면서 심각한 법적 분쟁으로 이어졌다.

영화 초반, 마크는 에두아르도의 초기 자본으로 페이스북을 개발하고 확장하기 시작한다. 에두아르도는 공동창업자로서의 지분 34%를 가진 것으로 알고 있었고, 초창기 광고 유치와 자금 지원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공식적인 계약서 없이 진행된 이 사업은, 나중에 실리콘밸리로 본사를 옮기고, 숀 파커가 경영에 개입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게 된다. 문제는 ‘주식 희석’이라는 방식으로 일어난다. 마크와 투자자들은 에두아도의 지분을 서류상으로 희석시키는 구조를 설계했고, 아무것도 모르던 에두아도는 결국 자신의 지분이 0.03%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는 곧 법정 싸움으로 이어진다. 이 장면은 모든 예비 창업자에게 아주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친구든 가족이든, 어떤 형태로든 동업을 시작할 때에는 법적으로 명확한 계약서를 작성하고, 모든 권리와 책임을 명문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감정적 유대만으로 시작한 비즈니스는, 기업이 성장할수록 감정이 아닌 숫자와 지분, 법률로 관리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린 친구니까” 또는 “우린 믿고 시작했어”라는 말을 한다. 실제로 창업자들 사이에서는 돈보다 신뢰를 더 강조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사업은 감정으로 운영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여도, 그 아이디어를 실제로 구현하고 시장에서 확장시킬 수 있으려면 자본, 인력, 기술, 그리고 무엇보다도 명확한 역할 분담과 지분 구조가 필요하다. 에두아도는 ‘공동창업자’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가 보유한 실제 계약 문서에는 그의 권리를 보호해 줄 조항이 거의 없었다. 이는 곧 권리를 주장할 근거가 부재했다는 뜻이다. 단순히 같이 시작했다고 해서, 기업이 성장한 이후에도 동일한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니다. 중간에 계약을 갱신하거나, 새로운 투자자가 들어올 때 기존 계약 내용이 어떻게 바뀌는지에 대한 조항이 없었다는 점에서, 에두아도는 ‘친구’로서가 아닌 ‘소외된 투자자’로 전락하게 된다. 결국 그가 마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문서가 없으면, 아무리 정당한 기여를 했더라도 인정받지 못한다. 계약이 곧 증거이며, 계약이 곧 권리다. 창업 초기에는 사업 아이디어에만 집중하다 보니, 투자 구조나 지분 배분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일단 돈을 넣고, 나중에 어떻게 되면 얘기하자”는 식이다. 하지만 이런 접근 방식은 매우 위험하다. 초기 투자자는 단순 투자자인지, 공동창업자인지, 경영 참여자인지에 따라 권한과 책임이 완전히 달라진다. 에두아르도의 경우, 그는 단순한 초기 투자자가 아니었고, 마크의 친구로서 공동창업자였으며, CFO 역할까지 수행했다. 하지만 이런 역할은 문서상 명확히 규정되어 있지 않았고, 경영에 직접 참여하지 못하는 구조로 전환되면서 사실상 '투자자 이상의 역할을 하되, 권리는 없는 상태'로 남게 되었다. 이는 매우 흔한 실수이자, 실제 스타트업 업계에서 종종 벌어지는 현실이다. 스타트업에서는 1%의 지분도 수억 원, 수십억 원의 가치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초기 계약의 중요성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게다가 시간이 지나면 사람의 생각도 바뀌고, 방향성도 바뀌기 때문에 초기에 확정 지어야 할 요소들은 명확하게 문서로 정리해 두어야 한다. 창업 초기에 자주 나오는 말 중 하나는 “그때 그렇게 얘기했잖아”라는 것이다. 하지만 말은 사람마다 다르게 기억되기 마련이고, 수년이 지난 후에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도 불가능해진다. 이런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 법적 효력이 있는 계약서가 존재하는 것이다. <소셜 네트워크>에서도 에두아도는 “내가 공동창업자였다”는 사실을 주장하지만, 마크나 투자자들은 그의 실제 역할을 폄하하거나, 단순 투자자로 간주하려 한다. 결국 문제는 증거였다. 말보다 문서가 우선이고, 법정에서는 감정보다 증거가 중요하다. 이 점에서 계약서는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당신의 권리를 지키는 방패가 된다. 특히 창업자 간 신뢰가 좋을수록 “계약서 쓰자”는 말을 꺼내기 어려워하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더 명확한 합의가 필요하다. 진짜 신뢰는 문서로 보장받을 때 더욱 단단해진다. 구두 약속은 감정으로 시작되지만, 계약서는 법으로 마무리되기 때문에, 스타트업을 준비하는 누구든 이 교훈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소셜 네트워크>는 마크와 에두아도 사이의 감정선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보여주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메시지는 ‘감정’은 사업을 지탱하는 힘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우정, 신뢰, 희망은 사업을 시작하게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사업을 지속시켜 주는 요소는 아니다. 실리콘밸리든, 한국의 스타트업 씬이든, 중요한 건 계약이고 구조다. 기업이 커질수록 지분은 곧 권력이며, 결정권이고, 금전적 가치다. 창업자의 역할도 분화되고, 투자자와의 관계도 복잡해진다. 이런 과정에서 가장 먼저 부딪히는 문제가 바로 초기 계약의 허술함이다. 나중에 법적 분쟁으로 이어지는 대부분의 사건들은, 초기에 서면 계약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소셜 네트워크>는 많은 스타트업 창업자들에게 ‘기회’의 상징이자, 동시에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이다. 그 안에서 벌어진 지분 갈등, 배제, 소송은 현실에서도 반복되는 이야기이며, 우리가 반드시 배워야 할 실수다. 창업을 준비하는 이라면, 아이디어보다 중요한 것이 계약서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문서화된 계약은 관계를 보호하고, 역할을 분명히 하며, 기업이 성장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수많은 문제를 예방하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감정이 아닌 법으로 준비하는 창업, 그것이 성공의 첫걸음이다.

 

3. 에두아르도가 상징하는 상식의 몰락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영화 <소셜 네트워크>는 단지 페이스북의 창업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다. 이 작품은 ‘성공’이라는 단어가 실제로 어떤 사회적 힘, 감정적 상처, 구조적 불균형 위에서 형성되는지를 낱낱이 드러낸다. 그 중심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인물은 아이러니하게도 주인공 마크 저커버그가 아니라, 에두아르도 사베린이다. 그는 이 거대한 이야기 속에서 ‘상식’을 상징하는 인물이자, 몰락하는 윤리의 대변자로 묘사된다. 세상이 ‘성과’와 ‘속도’만을 기준으로 판단하게 되었을 때, 그 속도에 휘말리지 못한 인물은 어떤 결말을 맞게 되는가. <소셜 네트워크>는 이 물음을 에두아르도를 통해 던진다. 그리고 그 질문은 오늘날 창업과 성공, 스타트업 신화 속에서 우리가 너무 쉽게 무시하고 있는 정석적인 인간관계와 신뢰, 도리와 의리에 대한 성찰로 확장된다.

에두아르도는 마크 저커버그와 하버드 시절부터 친한 친구였고, 페이스북의 창업 멤버이자 초기 유일한 자금 조달자였다. 그는 1000달러라는 적지 않은 금액을 친구에게 기꺼이 투자하며, 신뢰를 바탕으로 동업을 시작한다. CFO로서의 역할도 분명히 수행했고, 외부 광고주들과의 접촉, 서비스 확장 전략에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그는 사업을 믿고, 친구를 믿었으며, 무엇보다 기본적인 상식에 따라 움직였다. 투자자에게는 계약서를 요구하지 않고, 파트너에게는 감정적인 신뢰를 보이며, 사업이 성장하면 함께 크는 구조를 기대했다. 하지만 영화는 이 믿음이 어떻게 철저하게 무너지는지를 보여준다. 그가 실리콘밸리로 가지 않고 뉴욕에 머무르며 광고 영업을 한다는 이유로, 숀 파커의 등장을 반기지 않는다는 이유로, 점차 의사결정 과정에서 소외되고, 결국 지분 희석이라는 방식으로 회사에서 쫓겨나게 된다. 말 그대로, 정석대로 일한 인물이 가장 먼저 도태되는 비극적인 역설이 영화의 중심을 이룬다. 현대 자본주의 시스템, 특히 스타트업 문화는 속도와 혁신, 그리고 리스크를 감수하는 능력을 최우선 가치로 둔다. 이런 문화에서는 ‘상식’보다는 ‘효율’, ‘신중함’보다는 ‘돌파력’이 존중받는다. 에두아르도는 페이스북이 급속도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이 문법에 적응하지 못한 인물이다. 그는 안정적이고, 전통적인 방식으로 사업을 운영하고자 했으며, 숀 파커처럼 과감한 투자 유치나 모험적 사업 확장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냈다. 즉, 그는 하버드에서 배운 정석을 실무에도 적용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실리콘밸리에서 이 정석은 비효율로 간주되었고, 결국 배제의 이유가 되었다. 마크와 숀은 기술 중심의 판단을 우선시했고, 에두아르도의 의사와 상관없이 회사를 운영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구조는 곧 지분 구조의 재편, 법적 계약의 수정, 에두아르도의 배제를 가져왔다. 이 과정은 단지 인간관계의 배신이라기보다, 상식이 철저하게 무시되는 구조적 선택의 과정이었다. 에두아르도의 몰락은 단지 그 개인의 무능함 때문이 아니다. 그는 능력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상식적인 태도’를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다. 그는 친구를 믿었고, 자신의 자금이 회사의 기반이 된다는 사실에 대해 자부심을 느꼈으며,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존중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스타트업 세계에서는 계약이 없는 신뢰는 아무 의미도 없다. 영화에서 에두아르도가 서명한 계약 문서가 그의 지분을 0.03%로 희석시킨 뒤에야 그는 자신이 어떤 함정에 빠졌는지 깨닫는다. 이 장면은 단순히 한 사람의 몰락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세상은 신뢰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선언처럼 느껴진다. 또한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마크는 여전히 페이스북 페이지를 새로고침하면서, 과거 여자친구의 요청을 기다리고 있다. 그는 수십억 달러의 자산을 가졌지만, 정작 한 사람과의 관계를 회복하지 못한 외로운 인물로 남는다. 반면, 에두아르도는 비록 회사에서 쫓겨났지만, 그가 보여준 진심과 인간성은 많은 관객의 공감을 얻는다. 영화 <소셜 네트워크>가 주는 가장 큰 메시지는 어쩌면 이것일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너무나 빠르게 달리고 있어서 사람을 보고 갈 여유가 없다는 것. 에두아르도는 과거 우리가 지켜야 한다고 배웠던 가치들—정직, 의리, 공정성—을 끝까지 지키려 했지만, 그 결과는 잔인했다. 이런 상식의 몰락은 비단 영화 속 이야기만이 아니다. 실제 창업 현장, 회사 조직, 사회 전반에서 도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오히려 뒤처지고, 관계보다 계약이 우선하며, 인간보다 성과가 더 중요해지는 현실이 반복되고 있다.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에두아르도를 잃었고, 너무 많은 마크 저커버그들을 배출해 왔다. 결국 이 영화는 묻는다. 정석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결국 뒤처지는 사회는 과연 건강한가? 영화 속에서 에두아르도가 보여준 태도는 시대에 뒤처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더 이상 실천하지 않는 당연한 태도였을지도 모른다. 페이스북의 성공 이후, 수많은 청년들이 스타트업에 도전하게 되었고, 실리콘밸리는 하나의 문화 아이콘처럼 자리 잡았다. 혁신, 도전, 젊음, 속도, 스케일업—이 단어들은 새로운 성공의 상징처럼 쓰인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에두아르도 같은 이들의 몰락과 상실이 존재한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관객들은 종종 마크의 성공에 경외감을 느끼지만, 정작 가장 인간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인물은 에두아르도다. 그는 울분을 토했고, 자신의 이름이 빠진 계약서를 찢었으며, 오랜 친구에게 "너는 나를 배신했다"라고 소리친다. 그 장면은 단순한 분노가 아니라, 사람 사이의 약속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대의 증언이다.

에두아르도 사베린은 페이스북이라는 거대한 제국에서 밀려났지만, 그가 상징하는 것은 결코 패배나 무능이 아니다. 그는 우리가 외면한 ‘상식’을 끝까지 붙들고 있었던 인물이며, 이 영화는 그런 그를 통해 현대 사회가 어떤 가치를 버리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비즈니스는 속도와 기술로 움직이지만, 인간은 여전히 관계와 신뢰로 움직인다. 에두아르도는 바로 그 인간적인 가치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관객의 마음에 오래 남는 인물로 자리 잡는다. <소셜 네트워크>는 마크의 성공기를 그리면서도, 에두아르도의 몰락을 통해 우리에게 말한다. "정석대로 살아가는 것이 바보 같은 시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가는 사람이 진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