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정보
- 개봉일: 2023. 03. 15.
- 장르: 드라마
- 평점: 7.97
-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 러닝타임: 124
- 감독: 민용근
- 주연: 김다미, 전소니, 변우석
1. <소울 메이트> 삶의 선택
영화 <소울메이트(2023)>는 단지 "감동적인 여성 우정 영화"라는 수식어로 설명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이 작품은 여성 간의 감정 서사를 표면에 두되, 그 아래층에는 훨씬 복잡하고 심화된 ‘삶의 선택’이라는 핵심 철학적 질문이 뿌리처럼 놓여 있다. 우리가 사랑하는 관계, 소중하게 여기는 감정조차도 결국은 삶의 방향과 선택에 따라 분기될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이면서도 잔혹한 통찰을 보여주는 영화. 그리고 그 모든 전개는 극적 사건보다 감정의 미세한 변화, 선택의 갈래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미소와 하은. 두 여성은 같은 시공간에서 성장하고 서로를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는 듯 보인다. 유년기의 강렬한 감정, 사춘기의 혼란, 청춘기의 열정—all of these는 서로의 삶 안에서 공유된다. 그들은 처음에는 마치 ‘한 사람의 양면성’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소울메이트>는 독창적인 감정 구조를 선보인다. 이 영화는 우정을 중심으로 시작하지만, 이야기의 중반부터는 ‘삶의 선택’이라는 감정적 분기점을 드러낸다. 하은은 안전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삶의 경로를 선택한다. 대학, 진로, 직장, 결혼. 그 선택은 흔히 말하는 ‘성공의 경로’처럼 보인다. 반면 미소는 예술가로 살아가기 위해 규범적 경로를 벗어난다. 안정보다는 자기 표현을, 타인의 인정보다는 감정의 충실함을 택한다. 이 지점에서 두 사람은 명확히 갈라지지만, 그 갈라짐은 외형적인 것이 아닌 내면의 균열로 작용한다. 영화 <소울메이트>가 탁월한 이유는 바로 이 삶의 선택이 감정 구조까지도 분리시킨다는 점을 섬세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단지 물리적 거리가 아니라, 선택의 철학이 감정의 언어와 실천 방식까지 다르게 만든다. 하은은 관계에서 안정과 예측 가능성을 추구한다. 감정을 말보다 묻고, 행동보다는 책임으로 감싸려 한다. 그녀의 선택은 감정의 억제와 조절을 통해 이루어진다. 반면 미소는 감정이 말보다 먼저 나가고, 생각보다 행동이 빠르다. 감정을 ‘살아내는 것’으로 여긴다. 이처럼 같은 감정을 경험하더라도 해석하고 실행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둘은 감정이 어긋났다고 느낀다. 그러나 사실은 감정 자체가 어긋난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을 받아들이고 처리하는 ‘삶의 태도’가 달랐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선택’이 관계를 분리시키는 방식이다. 그리고 이러한 설정은 여성 중심 관계 서사에서는 매우 드물고, 정교하다. <소울메이트>는 단순히 삶의 선택이 ‘다름’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 영화의 정점은, 선택이 어떻게 관계를 구성하고 해체하며, 다시 재구성하는지를 감정의 흐름으로 서술하는 데 있다. 미소와 하은은 본격적으로 충돌하지 않는다. 그러나 갈등이 없는 것이 아니라, 표현되지 않는 갈등, 감정의 불일치, 감정의 도착 지점이 다름이 그들 사이에 쌓여간다. 그리고 이 갈등은 기존 드라마처럼 폭발하지 않는다. 대신, 서로를 향한 ‘침묵’과 ‘오해’, ‘거리두기’로 이어진다. 특히 영화는 침묵의 연출, 장면 전환의 단절, 감정 없는 시선 교차 등을 통해 관계의 균열이 실제로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정서적으로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이러한 관계 서술 방식은 에마 스미스, 질 볼트 테일러 등의 감정 심리학 이론에서 말하는 “감정의 단절은 감정의 소멸이 아니라 감정 전달 방식의 변형”이라는 개념과 맞닿는다. 즉, 둘은 여전히 서로를 향한 감정을 갖고 있지만, 그것을 더는 같은 방식으로 나눌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처럼 영화는 감정의 윤리를 ‘감정의 방식’을 선택하는 문제로 풀어낸다. 흥미로운 건, <소울메이트>가 관계가 ‘끝났다’고 선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둘의 갈등이 아닌, 갈등 이후에도 감정이 지속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하은은 미소의 그림을 통해 자신의 기억을 복원하고, 미소는 하은의 감정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상태로 다시 등장한다. 이 장면은 단순한 재회가 아니라, 삶의 선택 이후에도 감정이 지속될 수 있음을 말하는 강력한 시적 선언이다. 중요한 건, 감정이 과거로 회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감정은 변화했고, 깊어졌고, 때로는 상처받았지만, 여전히 존재한다는 그 ‘지속성’이 관계를 다시 잇는 실마리가 된다. 이러한 구조는 <소울메이트>가 단지 "우정의 회복"이 아니라 ‘선택 이후의 감정 윤리’를 이야기하는 영화임을 보여준다. 즉, 선택이 우리를 갈라놓을 수는 있지만, 감정을 없애지는 못한다는 통찰이다.
<소울메이트>는 감정 중심 영화이지만, 더 본질적으로는 선택 중심 영화다. 특히 이 작품이 강렬한 이유는, 여성이 삶에서 내리는 결정—직업, 사랑, 진로, 감정 표현 방식 등—이 우정을 포함한 관계 구조 전체를 바꿔놓는 과정을 정직하게 그려낸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감정을 지워버리는 게 아니라, 감정을 재정의하는 방식으로 완성된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묻는다. “누군가와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다고 해도, 서로 다른 삶을 택하면 그 감정은 여전히 같은 것일까?” 그리고 답한다. “감정은 같을 수 없다. 다만,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감정의 성숙이다.” 이는 단지 영화적 메시지가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인간관계에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 감정 윤리이기도 하다.
2. 감정 이동- '떠나는 자'와 '남는 자'
2023년작 영화 <소울메이트>는 단순한 여성 우정의 이야기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작품은 관계를 형성하고 해체하는 힘의 근원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탐구한다. 특히 주목할 것은 ‘움직임’이라는 개념이다. 미소는 떠나고, 하은은 머문다. 이 이동성과 정주성의 대비는 단지 행동의 차이가 아니라, 감정을 실현하는 방식, 관계를 받아들이는 태도, 그리고 인생을 살아가는 리듬 그 자체다.
우리는 흔히 감정을 ‘느끼는 것’으로 정의하지만, 영화 <소울메이트>는 감정을 ‘움직이게 하는 힘’으로 바라본다. 미소의 감정은 가만히 머무르지 않고 언제나 방향을 가진다. 그녀는 무언가를 사랑하면 그 감정을 따라 그림을 그리고, 슬픔이 찾아오면 그 자리를 떠나고자 한다. 그녀의 감정은 정체된 상태로는 감당될 수 없는 에너지로 작용하며, 결국 그녀는 공간을 옮기고 사람을 떠나는 쪽을 선택한다. 반면 하은의 감정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녀는 움직이지 않음으로써 감정을 받아들이고, 오래 품으며 정리한다. 즉, 감정을 ‘내면화’하는 정주적 태도다. 하은은 변화하는 것보다 유지하고 지키는 것에 가까우며, 그녀의 감정은 행동보다는 기억, 시선, 기록이라는 형태로 유지된다. 이러한 대비는 곧 관계 구조의 균열을 초래한다. 감정의 흐름이 같더라도 그것을 실현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지점이 점차 줄어든다. 이 갈라짐은 극적인 사건이 아닌, 감정의 방식이 만든 자연스러운 거리감이다. 영화는 이 분기점을 폭력적으로 그리지 않고, 조용한 시간 속에서 전개되도록 설계한다. 바로 그 점에서 <소울메이트>는 관계 서사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다. 미소는 어릴 적부터 ‘떠나는 자’로 설계된 인물이다. 그녀는 제주라는 섬에서 자라지만, 섬이라는 폐쇄적 공간이 주는 억압감을 참지 못하고, 바깥을 꿈꾼다. 그녀는 감정이 고조되거나 일상이 무의미해질 때마다 자리를 옮긴다. ‘감정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이자, ‘감정을 향해 스스로를 이동시키는 주체’다. 이러한 움직임은 단순한 행동이 아니라, 자기 감정에 대한 능동적 반응 방식이다. 영화에서 미소는 종종 도망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문제로부터의 회피라기보다는, 자신의 감정이 더 이상 자랄 수 없는 공간을 벗어나는 것이다. 그녀는 타인의 기준에 맞춰 정리된 감정보다, 스스로의 감정이 안내하는 방향을 따라 삶을 구성한다. 이러한 태도는 ‘떠나는 자’가 가진 자유와 동시에 고통을 내포한다. 미소는 감정적으로는 가장 자유로운 인물이지만, 바로 그 자유 때문에 가장 고립된 인물이 되기도 한다. 그녀의 이동은 감정의 확장이지만, 동시에 관계의 단절로 이어진다. 영화는 떠난 자의 삶이 단순히 ‘용기’로 포장되는 것을 경계하며, 자유의 대가로서 상실의 정서를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하은은 ‘남는 자’로서의 감정 구조를 대표한다. 그녀는 자리를 지키고, 가족의 기대를 어긋나지 않게 수용하며, 자신의 감정을 즉각적으로 반응하기보다 오랫동안 안에 품는다. 그녀는 감정에 이끌리기보다, 감정을 해석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진정성을 찾는다. <소울메이트>에서 하은의 정서는 시간에 따라 깊어진다. 미소가 떠난 이후에도, 하은은 그의 흔적을 정리하지 않고 남겨둔다. 그녀는 감정을 버리지 않기 때문에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그 감정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갖는다. 이처럼 남는 자는 감정의 응시자이자 수용자로 설정된다. 그녀의 선택은 물리적으로는 ‘정지’에 가깝지만, 감정적으로는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는 존재다. 영화는 이러한 하은의 감정을 외형적인 서사보다 정적인 이미지와 반복된 일상, 그리고 무언의 표정으로 표현한다. 이는 '감정을 폭발적으로 드러내는 미소'와 대조되며, 감정의 미학이 폭발성과 깊이 중 어느 쪽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인물의 감정 윤리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시각화한다. <소울메이트>는 인물 간의 감정 차이를 시간 구조 속에 정교하게 녹여낸다. 이 영화에서 감정은 ‘같은 시점에 동시에 일어나는 것’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오히려 미소가 무언가를 깨닫는 순간, 하은은 이미 감정을 지나고 있다. 하은이 편지를 보낼 때, 미소는 그것을 너무 늦게 받는다. 이러한 설정은 단지 극적인 장치가 아니라, 감정의 비동시성(emotional asynchrony)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한 내러티브 전략이다. 비동시적 감정 구조는 현실의 관계에서도 자주 발생한다. 우리는 종종 “나는 이제야 이해했는데, 그는 이미 떠나 있었다”는 말을 한다. 이는 감정의 깊이보다 더 복잡한, 감정의 시간차로 인한 관계의 어긋남이다. <소울메이트>는 이런 구조를 활용해, 단지 오해나 갈등이 아니라, 감정의 시간적 불일치 자체가 관계를 깨뜨릴 수 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특히 이 영화는 그 불일치를 대사로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플래시백, 그림, 편지, 카메라 앵글 같은 영화적 장치를 통해 관객이 감정의 어긋남을 '느끼게' 만든다. 이것은 매우 섬세하면서도 고난도의 연출로, 단지 감정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경험하게 하는 방식이다.
<소울메이트>는 미소와 하은이라는 두 인물을 통해 같은 감정이 어떻게 서로 다른 리듬과 방향으로 구현되는지, 그리고 그 차이가 관계를 어떻게 갈라놓는지를 보여준다. 떠나는 자는 감정에 의해 움직이고, 남는 자는 감정을 견뎌내며 정주한다. 둘 다 옳지도, 틀리지도 않다. 그저 삶의 결이 다를 뿐이다. 그리고 영화는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이야기한다. “우리는 같은 감정을 느낀다 해도, 그것을 같은 방식으로 살아내지 않는다.” 이 선언은 <소울메이트>가 여성 서사 영화로서 특별한 이유다. 이 영화는 여성 간의 관계를 도식적 감정에 가두지 않고, 삶의 방식, 감정의 철학, 선택의 윤리로 확장한다. 관계란 함께 있는 시간이 아니라, 서로 다른 길을 걸으면서도 상대의 감정을 받아들이는 능력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말이다.
3. 감정의 억제
감정은 일직선으로 흐르지 않는다. 특히 인간 관계 속 감정은, 서로가 다르게 느끼고, 다른 타이밍으로 받아들이며, 때로는 비가시적인 방식으로 어긋난다. 영화 <소울메이트>(2023)는 이러한 감정의 복잡성을 정면으로 다룬다. 이 작품은 여성 우정의 아름다움을 전면에 내세우는 듯하지만, 실은 단절, 상실, 오해, 침묵, 그리고 그 이후의 용서와 재회를 탐구하는 감정 서사 실험이다. 특히 이 영화는 흔한 갈등-화해 구조 대신, 감정이 단절된 시간 속에서 관계의 회복 가능성을 어떻게 시적으로 구성할 수 있는가라는 깊은 질문을 던진다.
대부분의 영화는 인간 관계의 단절을 극적인 사건이나 갈등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소울메이트>는 그와는 다른 방식을 택한다. 이 작품에서 미소와 하은의 관계는 분명히 단절되지만, 그 원인은 폭발적인 갈등이나 명확한 트리거가 아니다. 대신 영화는 ‘감정의 리듬’이 서로 달라지는 과정을 조용히 따라간다. 하은은 안정된 미래를 택하고, 미소는 감정 중심의 삶을 택한다. 이 선택은 단순히 진로의 차이를 뜻하지 않는다. 서로의 감정을 이해하고 맞추는 방식 자체가 달라지면서, 감정은 비가시적으로 틀어지기 시작한다. 중요한 점은, 이 단절이 "끝"을 선언하는 방식으로 그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화는 서서히 변화하는 거리감,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해 애매하게 멀어지는 감정의 상태를 섬세하게 조망한다. 말로 직접 표현되지 않은 감정, 해소되지 않은 오해, 끝내 건네지 못한 말들. 이것이 바로 이 영화의 ‘단절’이다. 서서히 멀어지는 감정은, 갈등보다 더 날카롭고 현실적이다. 전통적인 우정 서사에서는 갈등 이후의 재회는 감동적인 화해의 순간으로 귀결되곤 한다. 하지만 <소울메이트>는 그러한 공식을 거부한다. 미소와 하은은 다시 만난다. 그러나 그 재회는 눈물과 포옹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이들의 재회는 감정의 고백이 아니라, 감정의 ‘재구성’을 기반으로 한다. 미소는 하은의 삶 속에 다시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하은도 과거의 감정을 그대로 되살리려 하지 않는다. 두 인물은 ‘이제는 달라진 자신’으로 서로를 다시 만난다. 여기서 재회는 단절 이전으로의 회귀가 아니라, 감정의 ‘새로운 형태’로의 전환이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단순한 관계 회복이 아닌, 감정적 성숙이라는 윤리적 결론을 제시한다. “우리는 다시 친구가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보다, “우리는 이제 서로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에 더 집중한다. 이 접근은 <소울메이트>를 단순한 드라마가 아닌, 감정 윤리의 탐구 영화로 승화시킨다. 이 영화에서 ‘용서’는 누군가의 사과나 책임 고백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누구도 명시적으로 용서를 구하지 않고, 용서한다는 말도 하지 않는다. 대신 영화는 시선과 침묵, 일상적인 행동을 통해 감정의 변화를 드러낸다. 예컨대 미소는 하은의 아이를 만나면서, 하은의 삶의 일부를 조용히 수용한다. 하은은 미소의 그림을 통해 과거의 자신을 다시 마주하고, 그 그림 속에서 미소가 자신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러한 순간들은 직접적인 용서의 언어는 없지만, 감정이 재정렬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는 심리학적으로도 매우 정교한 접근이다. 감정 심리학에서는 용서를 ‘기억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기억을 새로운 정서적 맥락에서 받아들이는 과정으로 본다. 바로 이 점에서 <소울메이트>는 감정을 다루는 방식에 있어 깊은 현실성을 갖는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이 영화가 ‘시간의 작용’을 감정적으로 해석한다는 점이다. 미소와 하은이 멀어진 시간 동안, 그들의 감정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형태가 바뀌어 보관되었다. 미소는 여전히 하은을 그리워했지만, 그 감정을 예전처럼 표현하지 않았다. 대신 그림 속에 녹였고, 편지 속에 묻어두었다. 하은은 미소를 원망하지 않았지만, 미소의 부재 속에서 자신을 지켜내야 했다. 그래서 더 조용해졌고, 더 단단해졌다. 영화는 이처럼 시간의 흐름을 감정적 거리의 누적으로 보여주며, 재회의 순간이 단순히 과거의 감정을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감정을 새롭게 이해하고 수용하는 순간임을 강조한다. 이것이 바로 <소울메이트>가 보여주는 감정의 시간성(time-consciousness)이다.
<소울메이트>는 용서와 재회를 중심에 두고 있지만, 그것을 뻔한 서사 구조로 연출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예전처럼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또 다른 방식의 감정 계약이다.” 이 영화에서 재회는 감정의 회복이 아니라, 변화된 정체성 위에서 이뤄지는 새로운 이해의 합의다. 이러한 구조는 단절된 관계를 다시 돌아보는 모든 이들에게 중요한 질문을 한다. 용서는 왜 필요한가? 재회는 반드시 ‘과거로의 회귀’여야 하는가?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가, 아니면 다른 모습으로 남는가? <소울메이트>는 이 질문들에 대해 정답을 주지는 않는다. 다만, 그 감정을 정직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이 영화가 가진 가장 큰 미덕이자 위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