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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탠리의 도시락> 타인 배려, 음식과 교육, 빈곤의 눈물

by borybory-click 2025. 10. 2.

영화 &lt;스탠리의 도시락&gt; 관련 사진

  • 개봉일: 2012. 03. 08.
  • 장르: 드라마, 코미디
  • 평점: 8.28
  • 등급: 전체관람가
  • 러닝타임: 90분
  • 감독: 아몰 굽테
  • 주연: 파토르 A 굽테

 

1. <스탠리의 도시락> 속 타인 배려의 힘

영화 한 편이 마음을 울리는 순간은 단지 이야기 때문만이 아니다. 카메라에 담긴 시선, 인물 간의 숨은 감정, 무엇보다 장면 뒤에 깃든 ‘배려’의 의미가 관객의 내면을 건드릴 때, 우리는 그 작품을 오래 기억하게 된다. 영화 <스탠리의 도시락>은 겉보기엔 아이들의 도시락과 급식 이야기를 다룬 단순한 인도 영화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일이 왜 중요한지를 진심 어린 시선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주인공 스탠리는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유쾌한 초등학생이다. 그는 이야기하기를 좋아하고, 상상력이 풍부하며 교실 안팎에서 모두의 관심을 받는 존재다. 그러나 매일 점심시간이 되면 이상하게도 스탠리는 도시락을 꺼내지 않는다. 친구들의 식사 시간이 시작되면 그는 항상 자리를 피하거나 말로 얼버무리기 바쁘다. 이 작은 ‘회피’는 단순히 도시락이 없는 아이의 행동 이상으로, 그의 삶과 환경을 짐작하게 만드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스탠리의 도시락>은 인도식 도시락 문화라는 지역적 정서를 바탕으로, ‘먹는 시간’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감정적 순간인지를 보여준다. 도시락은 단순히 음식을 담는 상자가 아니라, 가정의 온도와 사랑, 돌봄이 담겨 있는 매개체다. 스탠리가 도시락을 가지고 오지 못한다는 사실은 그가 단순히 가난하다는 문제를 넘어서,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충분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사실을 관객에게 억지로 강요하지 않는다. 스탠리는 누구에게도 동정을 바라지 않는다. 그는 친구들과 웃고, 이야기를 만들고, 상상 속에서 세계를 누비며 살아간다. 이처럼 감독은 배경을 설명하는 대신, 인물의 행동을 통해 관객이 ‘배려의 시선’을 스스로 갖도록 만든다. 관객은 스탠리를 불쌍하게 여기기보다는, 그를 이해하고 도와주고 싶어지는 마음을 갖게 된다. 이는 타인을 향한 진정한 배려의 감정이다. 영화 속 친구들은 처음에는 스탠리의 도시락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그의 행동에서 이상함을 감지하게 되고, 누군가 먼저 도시락을 나누기 시작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아이들이 스탠리를 동정하거나 시혜적 태도로 접근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왜 도시락이 없냐’고 묻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반찬을 건네고, 함께 먹는 문화를 만들어 간다. 이 장면에서 관객은 자연스럽게 질문하게 된다. 나는 주변에서 이렇게 조용히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알아보고, 조건 없는 배려를 실천한 적이 있었던가? 영화는 이처럼 도덕 교과서처럼 교훈을 주입하지 않는다. 오히려 장면 하나하나가 관객 스스로 성찰하도록 유도한다. ‘눈치’로 타인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공감’으로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함을 깨닫게 한다. 이는 단순한 아동 영화의 메시지를 넘어선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사회적 문제, 예를 들어 학교 내 따돌림, 직장 내 배제, 또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무관심 등은 대부분 타인을 향한 시선의 부재에서 시작된다. <스탠리의 도시락>은 그런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않지만, 가장 근본적인 해결 방식인 ‘배려의 시작’을 자연스럽게 제시한다. 영화의 핵심은 스탠리의 친구들이 보여주는 작은 실천들이다. 반찬을 조금 나누어주는 것, 먼저 말을 걸어주는 것, 도시락을 함께 먹자고 자연스럽게 초대하는 것. 이 모든 행위는 아이들에게는 사소한 일이지만, 스탠리에게는 하루를 버틸 수 있는 큰 힘이 된다. 중요한 건, 이 배려가 어떤 특별한 교육이나 지시 없이 아이들 스스로 실천했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가 놓치기 쉬운 진실을 일깨운다. 배려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준비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타인을 이해하려는 마음만 있다면, 아주 작은 행동 하나로도 누군가의 하루를 바꿔줄 수 있다. 그리고 그 행동은 결코 과시적이거나 불편한 것이 될 필요가 없다. 친구처럼, 동료처럼, 자연스럽고 따뜻하게 다가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배려의 출발점이다. 이러한 메시지는 가정이나 학교, 직장, 사회 전반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서로의 사정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작은 관심과 온기가 전달된다면, 공동체는 훨씬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 영화는 이 점을 잔잔하게 강조하며, 스탠리와 친구들의 점심시간이 단순한 한 끼가 아니라 ‘함께 사는 법’을 배우는 수업임을 보여준다. <스탠리의 도시락>은 아이들의 이야기이지만, 어른들의 시선도 함께 담겨 있다. 특히 학교 내 일부 교사들의 태도는 이 배려의 부족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도시락을 나누는 아이들을 질책하고, 규칙을 내세워 스탠리를 점심시간에 교실에 남기려는 장면은 교육이 때때로 얼마나 비인간적일 수 있는지를 드러낸다. 이 장면은 단순히 특정 인물을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속에서 사람을 잊어버리는 순간, 교육이 어떻게 폭력으로 변할 수 있는지를 말하고 있다. 배려는 단지 개인의 성품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실천하는 배려를 어른들이 가로막고, 규칙이나 질서라는 명분으로 감정을 억누를 때, 교육의 본질은 퇴색된다. 영화는 교사들에게도 메시지를 전한다. 아이들의 행동을 가르치기 전에, 그들이 가진 감정과 상황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먼저 필요하다는 것을. 결국 배려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주는 시혜가 아니라, 수평적인 관계 속에서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는 자세다. 스탠리의 친구들은 그를 가엾게 여기지 않고, 평등한 한 명의 친구로 받아들이며 함께 식사한다. 영화는 이 과정을 통해, 배려의 본질은 ‘감정의 연대’에 있음을 조용히 이야기한다.

<스탠리의 도시락>은 작고 따뜻한 영화다. 극적인 사건이 없고, 화려한 연출도 없지만, 그 안에는 우리가 잊고 살았던 삶의 본질이 담겨 있다. 타인을 이해하려는 마음, 스스로 실천하는 작은 배려, 그리고 상대의 입장을 생각하며 조용히 다가가는 용기. 이 모든 요소는 이 영화가 단순한 어린이 영화가 아닌, 모든 세대를 위한 감정 수업임을 증명한다. 특히 요즘처럼 개인의 삶에만 몰두하고, 타인의 고통이나 외로움에 무감각해지기 쉬운 시대에 이 영화는 ‘함께 먹는 것’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밥 한 끼를 나누는 일이 얼마나 큰 위로와 힘이 되는지를 보여주며,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가 어떻게 더 나아질 수 있는지를 조용히 제안한다. 영화로 배운 배려는 일상 속에서 실천될 때 진짜 힘을 가진다. 오늘도 누군가가 말을 아끼고 있다면, 조용히 다가가 안부를 묻고, 당신의 도시락 반찬 한 조각을 나눌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스탠리의 도시락> 속 아이들처럼 배려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2. 음식과 교육

영화를 보며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은 늘 사소한 장면에서 찾아온다. 화려한 연출도, 극적인 반전도 없이 일상의 풍경 속에서 조용히 스며드는 감정. <스탠리의 도시락>은 그런 영화다. 이 영화는 단순히 인도 아이들의 도시락 문화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먹는 일’을 통해 ‘배우는 일’로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교육을 그려낸다. 그리고 그 안에는 가난, 차별, 연대, 존중, 자존감 등 수많은 사회적 이슈들이 담겨 있다. 이 글에서는 <스탠리의 도시락>이 보여준 ‘음식과 교육의 만남’이라는 관점에서, 어떻게 한 끼 식사가 교육의 본질을 바꾸고, 어떻게 아이들이 배움을 통해 성장해 가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영화 속에서 스탠리는 늘 도시락이 없다. 하지만 그는 항상 밝고 활기차다. 자신의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들려주며 웃고, 장난을 치고, 마치 아무 일 없는 듯 행동한다. 그러나 점심시간만 되면 그는 슬쩍 자리를 피하고, 친구들이 밥을 먹는 모습을 멀리서 바라본다. 도시락이 없는 아이의 하루는, 단순히 배고픈 것이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 함께하고 있다는 감각에서 소외된 경험이다. 우리가 어릴 적 도시락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반찬의 종류가 아니라, 도시락을 싸준 사람의 손길이다. 엄마가 새벽에 일어나 준비한 밥, 편지를 남긴 반찬 뚜껑, 때로는 김이 빠진 음료 하나에도 마음이 담겨 있다. <스탠리의 도시락>은 그 ‘음식에 담긴 기억과 정서’를 섬세하게 포착해 낸다. 스탠리는 도시락을 먹는 친구들을 부러워하면서도 티 내지 않는다. 하지만 관객은 안다. 그가 얼마나 ‘같이’ 먹고 싶어 하는지를. 그리고 친구들이 도시락을 나누기 시작할 때, 스탠리의 표정은 미세하게 달라진다. 그 변화는 어쩌면 영화 전체에서 가장 뚜렷한 ‘교육의 장면’ 일지도 모른다. 누구도 가르치지 않았지만, 음식 하나로 아이들은 나눔을 배운다. <스탠리의 도시락>은 인도 학교를 배경으로 한다. 하지만 그 학교는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교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칠판, 책상, 복도, 체벌, 규칙, 그리고 점심시간. 그러나 그 안에서 펼쳐지는 교육은 단지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통해 감정을 배우는 과정이다. 스탠리는 성적이 뛰어나지도 않고, 특별한 지위를 가진 아이도 아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만의 상상력을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친구들과 공감하며 교류하는 아이이다. 그는 ‘말’로 교육을 한다. 가르치려 하지 않지만, 자연스럽게 친구들의 생각을 열고, 창의성을 자극한다. 반면, 일부 교사는 규율과 통제를 강조한다. 도시락을 빼앗고, 친구들과 나누지 말라고 지시하며, 도시락이 없는 스탠리를 점심시간에 교실 밖으로 내보낸다. 여기서 영화는 명확하게 묻는다. 교육은 무엇인가? 규칙을 따르게 하는 것인가, 아니면 함께 사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인가? 스탠리의 존재는 그 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아이들은 스스로 배려를 배우고, 도시락을 나누며 함께하는 법을 익힌다. 이 장면은 학교라는 공간이 단지 공부를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삶을 배우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스탠리의 친구들은 그가 도시락을 들고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처음엔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점차 그가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걸 감지하고, 질문하지 않고 행동으로 답한다. 반찬을 건네고, 먹던 도시락을 살짝 그의 앞에 밀어주고, 스탠리를 자연스럽게 식사 자리로 초대한다. 그들은 그를 ‘결핍된 존재’로 대하지 않는다. 동등한 친구로서 존중하며 배려한다. 이런 나눔의 실천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다. 아이들은 그 과정에서 타인을 이해하고,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며,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그것은 교과서에 적힌 정의가 아니라, 생활 속에서 몸으로 익히는 윤리다. 이 영화는 나눔이 단지 좋은 일이 아니라, 교육의 본질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에서 도시락은 사랑의 상징이다. 그리고 그 도시락을 나누는 아이들의 행동은 교육이  어떻게 실천되는지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예이다. 이는 우리가 사회에서 놓치고 있는 교육의 방향성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경쟁과 성과 중심의 교육에서 벗어나, 관계 중심의 교육, 감정 중심의 교육으로 나아가야 할 필요성을 조용히 일깨운다. 스탠리는 어느 날 교사에게 심하게 혼나고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 친구들은 그가 왜 결석했는지 알지 못한 채 걱정한다. 그 후 스탠리가 돌아오고, 친구들은 그에게 다시 도시락을 함께 먹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그날, 스탠리는 자신의 도시락을 처음으로 가져온다. 그 도시락은 먹을 것보다도, ‘나도 함께할 수 있다’는 감정의 상징이 된다. 이 장면에서 영화는 음식이 단지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자존감을 회복시키고 사회적 관계에 참여할 수 있는 힘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동시에, 교육이란 그 사람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격려하고, 다시 함께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일이라는 것을 다시 강조한다. 스탠리의 도시락은 단순히 배려의 대상이었던 아이가, 이제 스스로 배려의 주체가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전환점이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우리는 교육의 궁극적 목표를 본다. 누군가를 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자기 힘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옆에서 기다려주는 것.

<스탠리의 도시락>은 큰 소리로 정의나 도덕을 외치지 않는다. 그저 아이들이 웃고, 먹고, 함께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장면들은 교과서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교육이란 무엇인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우리는 어떻게 타인을 대하고 있는가. 이 영화는 ‘교육이 따뜻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다. 그리고 ‘음식이 배려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진실도 함께 전한다. 바쁘고 경쟁에 치인 우리의 일상에서, 밥 한 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 그것이 바로 <스탠리의 도시락>이다. 학교에서, 가정에서, 사회 곳곳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가르치려’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말한다. 가르치기 전에 먼저 ‘함께 먹자’고 말하라고. 그 한마디가 때로는 수십 권의 교재보다 더 큰 교육이 될 수 있다고. 이 작은 영화가 전하는 그 큰 메시지는, 오늘 우리의 교육과 삶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3. <스탠리의 도시락> 빈곤의 눈물

영화를 보며 가슴이 시려오는 순간은 큰 사건이 터질 때가 아니다. 오히려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눈을 피하고, 장난으로 감정을 숨기려 할 때, 우리는 그 안에서 더 깊은 아픔을 느끼곤 한다. 영화 <스탠리의 도시락>은 그런 방식으로 관객의 마음을 건드린다. 이 영화는 아이들의 일상을 통해 가난이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는지를 보여주지만, 그것을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빈곤을 설명하지 않고, 증명하지 않으며, 다만 있는 그대로 ‘살아가는 아이’의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스탠리는 밝고 유쾌한 소년이다. 친구들과 함께 웃고, 자신만의 이야기 세계를 만들어내며, 선생님들 앞에서도 유머로 상황을 넘긴다. 겉으로 보기엔 결코 가난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유독 점심시간이 되면 그의 행동이 달라진다. 도시락을 챙기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그는 빈손이고, 식사 시간이 시작되면 어딘가로 사라진다. 그는 말로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지 않는다. 누가 묻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그 사실을 드러내고 싶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아동의 심리 안에 숨어 있는 빈곤의 상처를 섬세하게 포착해 낸다. 단순히 '가난한 아이가 불쌍하다'는 식의 감정 자극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스탠리를 통해, 아이들이 어떻게 사회적 결핍을 감정적으로 감당하는지를 조용히 들여다보게 된다.

많은 영화들이 빈곤을 다룰 때, 장면을 과장하거나 설정을 뚜렷하게 강조한다. 예를 들면 슬럼가 배경, 너저분한 집, 울고 있는 가족 등 시각적인 연출로 관객의 동정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스탠리의 도시락>은 전혀 다른 길을 택한다. 이 영화는 가난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그것을 ‘피하는 행동’으로 보여준다. 말 대신 몸짓, 회피, 침묵, 그리고 눈빛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스탠리는 아무도 모르게 학교에 오기 전 우체국에서 물을 마시고, 물티슈 없이 얼굴을 손으로 닦으며, 점심시간에 책상에 기대어 자는 척을 한다. 겉으로 보기엔 그냥 조용한 행동일 뿐이지만, 그 안에는 ‘남들과 같은 척’하고 싶다는 마음이 담겨 있다. 아이는 ‘자신이 가난하다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견딘다. 이 감정은 단순한 배고픔이나 결핍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다름’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거리감 때문이다. 이러한 연출은 빈곤을 피해로만 보지 않고, 아이가 자신의 상황을 감추기 위해 얼마나 많은 감정 노동을 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단지 경제적인 고통이 아니라, 심리적인 고립감과 자존감의 흔들림이다. 영화는 그런 아이의 복잡한 내면을 감정적으로 강요하지 않고, 조용히 따라가며 우리가 스스로 느끼게 만든다. 영화 속 어른들은 대부분 스탠리의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하거나, 알아도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몇몇 선생님은 그의 유쾌한 성격에 웃음을 보이지만, 그가 점심시간마다 사라지는 일에 대해 의심하거나 살펴보려는 시도는 없다. 오히려 일부 교사는 도시락을 나누는 아이들을 꾸짖고, 규율을 내세우며, 스탠리의 처지를 더 불편하게 만든다. 이는 단지 영화 속 설정이 아니라, 현실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구조적 무관심을 반영한다. 빈곤은 감추려고 하고, 사회는 그것을 보기 싫어한다. 학교에서 가난한 아이가 있다고 해서 교사가 모든 걸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문제는 관심의 부재다. 어떤 징후를 보고도 ‘그럴 수도 있겠지’라며 넘기고, 아이가 스스로 도움을 요청하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는 일이 많다. 스탠리는 바로 그런 틈에서 살아가는 아이이다. 그는 배고픔보다도, ‘드러나는 것’이 더 두렵다. 그래서 더 열심히 웃고,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지어내며, 자신의 감정을 감춘다. 그리고 친구들이 자신을 걱정할까 봐, 도시락이 없다는 사실을 농담처럼 넘긴다. 이런 아이의 마음속에는 ‘도움이 필요하다’는 말을 꺼낼 수 없는 구조적인 침묵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심리는 단지 인도 사회의 모습만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도 스탠리 같은 아이는 존재한다. 이름도, 얼굴도, 사연도 다르지만, 똑같이 침묵하고 웃으며 하루를 견디는 아이들. 그들이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괜찮은 것은 아니다. 그 침묵을 들여다보고, 먼저 다가가는 것이 진짜 ‘어른의 역할’이라는 것을 이 영화는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스탠리의 도시락>을 통해 가장 크게 다가오는 메시지는 바로 ‘자존감’에 대한 이야기다. 아이에게 도시락은 단지 밥을 먹는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가정의 온기이자, 공동체의 일부로서 참여할 수 있는 ‘초대장’과도 같다. 친구들이 도시락을 꺼낼 때, 자신도 그 자리에 함께할 수 있다는 감각은 아이의 자존감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하지만 도시락이 없는 스탠리는 매번 그 자리에서 밀려난다. 그가 느끼는 것은 단지 배고픔이 아니다. 그는 '나는 뭔가 부족한 존재인가?'라는 질문을 자기 안에 품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말이 아닌 ‘회피’로 표현한다. 이는 곧 아동의 자존감이 경제적 조건에 의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영화 속에서 친구들이 도시락을 나누기 시작하면서 스탠리의 표정이 변한다. 그것은 음식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누군가 가 ‘너도 괜찮아’라고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그 따뜻한 한마디는 아이의 자존감을 다시 세워주는 힘이 된다. 그리고 이 지점이야말로 이 영화가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교육적 장면이다. 사회는 흔히 자존감을 성취로부터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시험을 잘 보거나, 인정을 받거나, 뭔가를 이룬 다음에야 자존감을 갖게 되는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아이에게 자존감이란, ‘누군가 나를 이해해 준다’는 감각에서 시작된다. <스탠리의 도시락>은 그것을 음식이라는 아주 작은 소재를 통해 정확히 보여준다.

<스탠리의 도시락>은 아동 빈곤이라는 민감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과장하지 않고 감정에 호소하지 않는다. 대신 아이의 일상적인 행동 하나하나를 통해, 심리적으로 어떤 압박을 받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관객이 그 감정을 따라가며 ‘내가 놓치고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를 스스로 묻게 만든다. 이 영화는 사회가 만든 불평등 구조를 직접적으로 고발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의 내면을 보여줌으로써, 관객에게 더 깊은 울림을 전한다. 우리는 스탠리의 모습을 보며, 단지 한 명의 아동이 아닌, 수많은 ‘이름 없는 아이들’을 떠올리게 된다. 진짜 문제는 ‘가난’ 그 자체가 아니다. 가난하다는 것을 들킬까 봐 스스로를 감추고, 그 안에서 자존감이 무너지고, 도움을 요청할 수 없도록 만들어지는 구조가 더 큰 문제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도 모른 척하는 어른들의 침묵이 더 아프다. <스탠리의 도시락>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이 아이를 알아차렸는가? 그리고 그 아이가 내민 말 없는 손을, 외면하지 않았는가? 이 질문에 정직하게 답할 수 있다면, 우리는 더 따뜻한 사회를 향해 한 걸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