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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빠가 되는 중> 돌봄과 책임, 배우는 삶, 아이의 힘

by borybory-click 2025. 4. 21.

영화 &lt;아빠가 되는 중&gt; 관련 사진

 

  • 개봉일: 2021. 06. 18.
  • 장르: 코미디
  • 평점: 9.06
  •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 러닝타임: 109분
  • 감독: 폴 웨이츠
  • 주연: 케빈 하트, 알프리 우다드, 릴렐 호워리, 드완다 와이즈

 

1. <아빠가 되는 중>을 통한 돌봄과 책임

현대 사회에서 '성숙한 남성'이란 어떤 의미일까. 능력 있는 가장, 경제적 책임을 다하는 사람, 혹은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감정을 절제하는 인물일까. 오랫동안 우리는 남성성에 대해 강함과 냉정함, 책임감 같은 키워드를 중심으로 정의해왔다. 하지만 영화 <아빠가 되는 중>은 이 익숙한 남성성을 뒤흔든다. 돌봄이라는, 오래도록 여성의 역할로만 여겨졌던 영역 안으로 한 남성을 끌어들이며, 그는 점차 진짜 성숙의 순간을 맞이한다. 이 글에서는 영화 속 주인공을 통해 현대 남성이 어떻게 성장하고, 무엇을 통해 진정한 성숙을 경험하게 되는지를 천천히 들여다본다.

<아빠가 되는 중>의 주인공은 아이를 갖기로 한 지인의 출산 이후 갑자기 아이를 떠맡게 된다. 혈연적 관계도, 법적인 보호자도 아닌 그는 우선 ‘임시 보호자’일 뿐이다. 하지만 아이를 돌보는 하루하루가 쌓이면서, 그는 점차 ‘아빠’라는 정체성을 체화해 간다. 이 과정은 물리적으로는 짧지만, 감정적으로는 매우 깊은 여정이다. 그는 처음엔 당황하고 두려워하며 아이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한다. 하지만 반복되는 돌봄의 리듬 속에서 서서히 변화가 시작된다. 이러한 전환은 단순한 부모 역할 수행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나’ 중심의 삶에서 ‘너’ 중심의 삶으로 넘어가는 경험이다. 아이의 울음소리에 반응하고, 아이가 필요한 것을 먼저 생각하며, 자신의 일정보다 아이의 상태를 우선시하는 과정 속에서, 그는 처음으로 누군가를 위해 삶을 재조정하게 된다. 그 순간, 그는 단순히 ‘아이를 맡은 사람’이 아닌 ‘누군가의 보호자’가 된다. 이 전환이야말로, 현대 남성이 진짜 성숙해지는 첫 단추라 할 수 있다. 영화는 말보다 시선, 행동, 공백을 통해 감정을 전한다. 주인공 남성 역시 말로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다. 무뚝뚝하고, 표정 변화도 적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 동안 그의 행동은 변한다. 아이가 잠든 얼굴을 오래 바라보는 장면, 젖병을 들고 서툴게 먹이는 모습, 아이가 아플까 불안해하며 잠 못 드는 밤. 이런 모습들은 이전에는 그가 몰랐던 감정의 언어다. 현대 남성들은 오랜 시간 ‘감정을 숨기는 것이 남자다’라는 사회적 규범 속에 자라왔다. 울지 말고,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논리적으로 행동하라는 말은 익숙하다. 하지만 감정을 억제하는 것이 성숙함일까? 영화 속 주인공은 돌봄을 통해 ‘감정과 연결되는 것’이야말로 진짜 어른의 모습임을 체득한다. 그는 아이를 통해 자신도 돌봄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이는 그에게 따뜻한 손길을 요구하고, 자연스레 그의 내면을 열게 만든다. 이 감정의 교류는 말이 필요 없다. 함께 시간을 보내고, 눈을 맞추고, 손을 맞잡는 그 순간이 바로 성숙의 순간이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남자가 아이를 ‘떠맡은 것’에서 ‘지키기로 결정하는 것’으로 전환하는 순간이다. 그는 아이의 생물학적 아버지도 아니고, 누구도 그에게 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다. 처음엔 잠시 돌봐달라는 부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는 자발적으로 아이를 지키기로 한다. 이는 의무가 아닌 ‘결단’이다. 현대 사회에서 많은 남성들은 책임을 ‘떠맡는다’고 느낀다. 결혼이 그렇고, 육아가 그렇고, 가장의 역할도 그렇다. 하지만 영화 속 주인공은 그 반대다. 그는 자발적으로 책임지기를 택한다. 누구의 강요도 아닌, 아이와 함께한 시간 속에서 느낀 감정과 관계의 무게를 통해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다. 이 선택은 무겁지만, 그 속에서 그는 더 이상 ‘어른 흉내를 내는 남자’가 아닌, 진짜 어른으로 성장한다. 이러한 선택은 우리의 일상에서도 적용된다.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거나 돌보는 일을 스스로 선택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자아를 넘어선 감정과 존재를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진짜 성숙이다. 영화는 이 과정을 억지스럽게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조용히, 아주 자연스럽게 삶의 리듬 안에 스며들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더 깊게 와 닿는다. 우리는 흔히 모성애는 본능이고, 부성애는 노력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단순한 구분도 넘어서려고 한다. 주인공은 처음엔 아이에 대해 무관심했고, 아이가 그의 삶에 개입하는 것을 거북하게 여겼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아이의 눈빛, 울음, 체온, 존재 자체에 익숙해지고, 애정을 느끼게 된다. 그 감정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천천히 피어난 것이다. 이것은 남성에게도 감정이 ‘길러질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타고난 것이 아니라, 환경과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것. 따라서 부성애 역시 학습되고, 경험되고, 성장되는 감정이다. 영화는 바로 그 ‘성장’을 기록한 작품이다. 말로 하지 않아도, 강하게 드러나지 않아도, 이 잔잔한 감정은 오히려 더 강력하게 전달된다.

<아빠가 되는 중>은 조용한 영화다. 하지만 그 안에는 아주 큰 성장이 담겨 있다. 그것은 단지 아이를 키우는 이야기가 아니라, 남성이 누군가를 돌보며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이야기다. 경제력이나 권위가 아닌, 감정과 책임, 그리고 자발적인 선택이 만든 성숙이다. 현대 남성들이 놓인 현실은 복잡하다. 전통적인 역할은 변화했고, 새로운 기준은 아직 자리를 잡지 못했다. 그 사이에서 길을 찾는 모든 남성들에게 이 영화는 말한다. “진짜 어른이 된다는 건, 누군가를 지켜야겠다는 마음이 생겼을 때 시작된다.” 그 마음 하나가 사람을 바꾸고, 삶을 바꾸며, 결국 진짜 남성성을 재정의하게 만든다. <아빠가 되는 중>은 그 과정을 너무도 섬세하고 진정성 있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이 영화가 오래 기억될 이유다.

 

2. 아이를 키우는게 아닌 아이에게 배우는 삶

우리는 흔히 아이를 ‘키운다’고 말한다. 부모가 가르치고, 보호하고, 올바른 길로 이끌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하지만 과연 우리가 아이에게 주기만 하는 존재일까? 영화 <아빠가 되는 중>은 그 전통적인 시선을 조용히 흔들어 놓는다. 이 작품은 부모가 아이를 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이를 통해 어른이 삶의 본질과 감정, 그리고 책임을 배워나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글에서는 ‘아이에게 배우는 삶’이라는 시선으로 영화를 분석하고, 그것이 현대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를 함께 되짚어보고자 한다.

영화 <아빠가 되는 중>의 주인공은 어느 날 갑자기 한 아기를 맡게 된다. 그는 법적인 아버지도 아니고, 준비된 보호자도 아니다. 말 그대로 ‘당황한 어른’이다. 그에게 육아란 낯설고 불편한 것이며, 아기는 감당해야 할 대상일 뿐이다. 하지만 영화는 처음부터 이 남성이 ‘아이를 키우는 존재’라고 단정 짓지 않는다. 오히려 관객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가 ‘아이에게 배우는 사람’임을 점점 더 깨닫게 된다. 그가 배운 것은 단순한 육아 스킬이 아니다. 아이가 무언가를 요구할 때 즉각 반응하지 못하는 자신의 무심함, 아이의 울음소리에 당황하며 손발을 떨던 모습, 기저귀 하나도 제대로 갈지 못하는 손놀림 속에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성인’이 얼마나 미숙한 존재인지 여실히 드러난다. 그는 아이 앞에서 유능한 어른이 아니라, 누군가를 돌보는 법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설정은 우리의 자화상을 비추는 거울과 같다. 나이를 먹었다고, 사회적 역할이 있다고, 우리가 진짜 어른이 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보호가 필요한 존재인 아이 앞에서야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미숙하고 감정적으로 억눌려 있었는지를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영화는 그 진실을 무겁지 않게, 그러나 깊게 보여준다. 현대인의 삶은 빠르다. 무엇이든 효율적으로 처리하고, 감정보다는 논리를 앞세우며, 쉬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미덕처럼 여겨진다. 그런 삶의 리듬 속에서 아이는 방해물처럼 느껴질 수 있다. 울고, 토하고, 기다리게 하고,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 하지만 바로 그 ‘예측 불가능함’이 어른의 삶에 틈을 만든다. 멈추게 만들고, 관찰하게 하며, 결국 느끼게 만든다. 주인공 역시 아이 때문에 할 일을 못하게 되고, 계획이 어긋나며, 때로는 일상을 포기해야 한다. 하지만 그 속에서 그는 처음으로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기 시작한다. 아이가 잠든 얼굴을 바라보고, 한 번의 웃음에 마음이 흔들리고, 아이가 무사히 숨 쉬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감정. 이 모든 것은 바쁘게 살던 그가 절대 경험하지 못했을 감정들이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비효율적이다. 하지만 바로 그 비효율성 속에 진짜 삶의 감각이 깃들어 있다. 아이가 시간을 천천히 흘러가게 만들고, 삶을 복잡하게 하지만 동시에 생생하게 만든다. 우리는 아이 덕분에 ‘내가 지금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그것이야말로 아이가 어른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 아닐까. 아이와 함께 있는다는 건 단순히 돌보는 시간이 늘어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세상을 다시 배우는 과정이다. 아기는 말을 하지 않지만, 몸짓과 표정, 울음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주인공은 처음엔 그 신호들을 읽지 못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는 아이의 작은 행동에 민감해진다. 눈빛 하나, 움직임 하나에도 의미를 두기 시작한다. 이 과정은 결국 ‘공감’이라는 감정의 성장을 의미한다. 어른들은 너무 많은 정보를 접하며 감정에 무감각해진다. 하지만 아이는 감정을 가장 원초적인 방식으로 드러낸다. 숨기지 않고, 꾸미지 않고, 그대로 드러낸다. 그런 아이의 옆에 있으면 어른 역시 감정에 반응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는 어른의 감정을 깨우고, 메말랐던 마음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영화의 주인공은 결국 아이를 통해 감정에 다시 연결되고, 세상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모든 것이 새롭고, 소소한 일상이 특별해진다. 커피 한 잔을 편하게 마시지 못하는 아침이 불편함을 넘어선 ‘같이 있는 시간’으로 변하고, 울음을 달래기 위해 걷는 밤길이 고요한 명상처럼 느껴진다. 아이는 세상의 속도와 빛, 감정을 다시 느끼게 하는 감각의 통로인 셈이다.

<아빠가 되는 중>은 단순히 육아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성장하지 못한 어른이 아이를 통해 조금씩 감정과 관계, 책임을 배우는 이야기다. 아이는 가르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어른을 변화시킨다. 그리고 그것이 진짜 교육이며, 진짜 관계다. 우리는 종종 ‘아이에게 뭘 가르쳐야 할까’를 고민한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아이에게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다. 존재의 소중함, 감정의 섬세함, 지금 이 순간의 충만함. 아이는 말로 하지 않지만, 늘 삶의 본질을 가르치고 있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어른만이 진짜 어른이 된다. <아빠가 되는 중>은 그렇게 말한다. 아이는 키우는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며 배워야 할 존재라고. 그리고 그 태도야말로 진짜 어른이 되는 시작이라고.

 

3. 존재만으로 변화시키는 아이의 힘

사람은 언제 변화하는가. 커다란 사건을 겪었을 때, 누군가의 죽음이나 성공, 혹은 사회적 전환 앞에서 우리는 변화한다. 하지만 가끔은 너무도 조용하게, 아주 작고 여린 존재가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기도 한다. 영화 <아빠가 되는 중>은 그런 순간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주인공의 삶에 불쑥 들어온 아이는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어떤 요구도 하지 않지만, 그 존재만으로 한 남자의 감정을 움직이고 삶의 방향을 바꾸게 만든다. 이 글에서는 ‘존재만으로 변화시키는 아이의 힘’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아이는 태어나 말이 없다. 영화 속 아기도 마찬가지다. 울거나 웃는 것으로 감정을 표현할 뿐이다. 하지만 그 표현은 때때로 어떤 말보다 강력하게 어른의 마음을 흔든다. 주인공은 아이와 처음 마주했을 때 낯설고 불편해한다. 어떻게 안아야 할지, 무엇을 먹여야 할지 모른다. 모든 것이 서툴고 불편하며, 아이의 울음은 그에게 곤혹스러운 신호로 다가온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그 울음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어떤 울음은 배고픔이고, 어떤 울음은 불편함이며, 또 어떤 울음은 단순한 관심의 표현임을 알아간다. 아이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그의 울음은 남자의 감정선에 미묘한 파장을 일으킨다. 말 없는 아이가 그의 마음을 읽고, 그는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는 그 과정 자체가 관계의 시작이다. 우리는 어른이 되면 말을 많이 하게 된다. 논리적으로 설득하고, 이성적으로 설명하고, 감정을 단어로 치환한다. 반면 아기의 세계는 다르다. 감정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며, 그 감정은 듣는 이로 하여금 본능적으로 반응하게 만든다. 아이의 존재는 말이 아니라 ‘느낌’으로 다가오고, 그 느낌은 사람을 무장해제시킨다. 영화 속 남자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살아간다. 정해진 루틴, 익숙한 공간, 제한된 인간관계. 하지만 아이가 들어오면서 그 모든 일상이 균열을 일으킨다. 밤마다 울음에 잠을 설치고, 출근 전에 기저귀를 갈며, 길거리에서 아이의 분유를 챙기느라 일상이 느슨하게 틀어진다. 처음엔 그 틈이 불편하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삶은 피곤하고 번거롭다. 하지만 그 틈이야말로, 감정이 들어설 여백이 된다. 어느 날, 그는 아이를 안은 채 정류장에 앉아 있다. 아이는 조용히 그의 품에서 잠들고, 그는 아이의 체온을 느낀다. 아무 말도 없는 시간, 아무 사건도 없는 장면. 하지만 바로 그 순간, 그는 변한다. 돌봐야 할 존재의 체온이, 무심했던 하루에 온기를 만든다. 아이의 존재는 그렇게 한 사람의 ‘생활’을 바꾸고, 곧 ‘감정’을 바꾸며, 결국은 ‘삶’을 바꾸게 만든다. 이것은 단지 육아를 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다. 누구든 누군가의 체온을, 누군가의 무게를, 누군가의 ‘의존’을 받아들이는 순간 변화한다. 그리고 그 변화는 누군가의 존재를 온전히 받아들일 때 비로소 가능하다. 아이는 요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존재만으로 모든 것을 움직인다. 많은 부모들은 아이를 키우며 “사랑하게 됐다”라고 말하지만, 그 시작은 대개 ‘돌봄’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영화 <아빠가 되는 중>은 거꾸로 이야기한다. 돌봄 이전에 ‘존재’ 자체가 먼저 감정을 건드린다고. 주인공이 처음으로 아이에게 애정을 느끼는 장면은 거창한 사건이 아니다. 아이가 그를 보며 잠시 웃었을 때, 아이가 울음을 멈추고 그의 품에 안겼을 때, 아주 작은 변화가 그의 감정을 뒤흔든다. 이러한 순간은 누구나 경험할 수 있다. 조카나 이웃 아이, 혹은 유기동물을 돌볼 때도 마찬가지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마음을 건드리고, 그때부터 책임과 애정이 시작된다. 아이의 힘은 바로 거기 있다. 가르치지 않아도, 설득하지 않아도, 그저 ‘있음’만으로 사람을 변하게 만든다. 심리학적으로도 ‘애착’이라는 개념은 감정의 상호작용이 아닌, 신체적 존재감과 안정감에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아이의 체온, 울음, 웃음, 그리고 그저 가만히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사람을 움직인다. 그것은 이성으로 해석되는 것이 아니라 감각으로 경험되는 것이다.

<아빠가 되는 중>은 육아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변화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 변화는 커다란 사건이 아니라, 조용한 ‘존재’에서 시작된다.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지만, 그 존재 자체로 사람을 성장하게 만든다. 우리는 종종 무언가를 해야만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만히 옆에 있어주는 것, 아무 말 없이 함께 있는 것,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 아이는 그것을 가장 순수하게 보여주는 존재다. 그리고 영화는 그 진실을 너무도 조용하고 깊이 있게 보여준다. 진짜 변화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작고 여린 존재 하나가, 당신의 감정을 바꾸고, 일상을 뒤흔들며, 결국 삶의 태도까지 바꾸게 만든다. 그 존재의 힘은 바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