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봉일: 2017. 09. 27.
- 장르: 드라마
- 평점: 8.44
-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 러닝타임: 119분
- 감독: 마이크 밀스
- 주연: 아네트 베닝, 엘르 패닝, 그레타 거윅, 루카스 제이드 주만, 빌리 크루덥
1. <우리의 20세기> 속 청춘 감정의 복원
영화 <우리의 20세기>(20th Century Women)는 흔히 말하는 '이야기가 확실한 영화'는 아니다. 기승전결이 분명하지 않고, 명확한 목표를 향해 달려가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 속에는 어떤 영화보다도 깊은 감정과 기억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이 영화는 1970년대 말 미국 캘리포니아, 샌타바버라를 배경으로, 한 중년 여성과 그녀의 아들, 그리고 주변 여성 인물들의 교차된 삶을 통해 청춘이란 시기의 복잡다단한 감정들을 조용히 복원해 낸다. 그 감정은 시간이 흘러도 바래지 않고, 오히려 지금 세대에게도 낯설지 않은 정서로 다가온다.
청춘이라는 단어는 늘 찬란하고 눈부신 시기로 묘사되지만, 실상은 그와 거리가 먼 경우가 많다. 영화 <우리의 20세기>는 청춘을 이상화하지 않는다. 도리어 그 시기의 혼란, 고독, 자아 탐색, 타인에 대한 오해와 기대, 그리고 실패하는 사랑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리고 바로 그 진솔함이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든다. 우리가 잊고 지냈던, 혹은 지나쳐버린 청춘의 감정들이 영화 속에서 조용히 복원되는 것이다. 이 영화는 감독 마이크 밀스가 자신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다. 주인공 제이미는 감독의 어린 시절 자아가 투영된 인물이며, 도로시아는 그의 어머니를 기반으로 구성된 캐릭터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전반적으로 자전적 회고록처럼 느껴진다. 특정 사건이 아니라 감정의 흐름이 중심이 되는 구성은 마치 오래된 사진첩을 넘기듯 관객을 영화 속으로 끌어들인다. 1970년대 미국은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여성운동이 확산되며, 사회적 전환기 속에 있었다. 그 시대는 문화적으로 자유로웠지만 동시에 가치관의 충돌이 심한 시기이기도 했다. 영화 속 인물들은 그 시대의 틀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청춘을 겪는다. 담배 연기, 라디오에서 흐르는 토킹 헤즈와 블론디의 음악, 폴라로이드 사진 같은 요소들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감정의 질감을 만들어내는 장치로 작용한다. 그런 점에서 영화는 단지 과거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감정 자체를 복원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영화를 보다 보면 그 시절의 청춘이 단지 나이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도로시아는 50대의 여성이고, 성인 여성인 아비와 줄리도 있다. 그러나 이들 모두 청춘적인 감정을 간직한 인물들이다. ‘청춘’이라는 단어가 생물학적인 시기뿐 아니라 감정의 상태이자 삶의 태도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영화는 바로 그 감정을 복원하는 영화다. 각 인물의 눈빛과 말투, 행동에 담긴 미묘한 감정들이 관객의 오래된 감정 기억을 서서히 자극한다. 영화 속에서 제이미는 열다섯 살이다. 그 나이는 사랑을 배우고, 세상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정체성을 찾아가는 복잡한 시기다. 그는 줄리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줄리는 친구로 남길 원한다. 이 관계는 단순한 짝사랑이나 실연으로만 볼 수 없다. 청춘의 감정이 얼마나 섬세하고 다층적인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줄리를 향한 감정은 열정과 동시에 혼란이고, 기대와 좌절이 뒤섞인 미완의 감정이다. 한편 도로시아는 그런 아들을 이해하고 싶어 하지만, 세대 차이와 감정의 표현 방식 때문에 점점 더 멀게 느껴진다.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아들을 사랑하지만, 그것이 제이미에게 온전히 닿지 않는다. 이 영화는 ‘사랑한다는 말’로도 전달되지 않는 감정들을 묘사하는 데 탁월하다. 이는 단순히 모자 관계를 넘어, 세대 간의 감정적 거리감을 섬세하게 드러낸다. 청춘은 종종 충돌과 오해, 그리고 불완전한 공감 속에서 형성된다. 우리의 20세기는 그런 감정들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아주 사적인 장면들로 표현한다. 한밤중에 나누는 대화, 함께 보는 영화, 같은 공간에 있으나 각자의 세계에 빠진 침묵의 순간들이 그것이다. 이 모든 장면이 청춘의 복잡한 감정을 구성한다. 그리고 관객은 그 안에서 자신이 지나온 시기를 떠올리게 된다.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 중 하나는,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흔히 청춘영화는 격정적인 대사와 갈등으로 감정을 드러낸다. 그러나 <우리의 20세기>는 말보다 여운을 남긴다. 어떤 감정은 말로 표현되지 않아야 더 오래 기억되는 법이다. 영화의 감정선은 매우 섬세하게 설계되어 있다. 이는 마치 잃어버린 감정을 다시 되찾는 듯한 느낌을 준다. 특히 음악의 사용은 감정 복원에 큰 역할을 한다. 블론디, 텔레비전 등 시대를 대표하는 밴드의 음악은 인물의 감정과 완벽하게 맞물리며, 청춘의 공기를 구성한다. 음악이 흘러나오는 장면에서 관객은 과거의 특정 기억과 감정에 접속하게 된다. 그리움, 외로움, 불안, 설렘과 같은 복잡한 감정들이 음악과 함께 되살아난다. 또한 영화 속 인물들의 움직임은 감정을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깊게 와닿는다. 예를 들어, 도로시아가 홀로 담배를 피우는 장면은 말없이도 그녀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청춘의 감정은 꼭 젊은 인물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삶 전체에서 반복되고 복원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우리의 20세기>는 잊혔다고 생각했던 감정을 다시 꺼내 보여준다.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 잊히는 것이 아니라, 마음 어딘가에 잠들어 있을 뿐이다. 이 영화는 그 잠들어 있던 감정들을 조심스럽게 깨운다. 사랑하고 싶었지만 방법을 몰랐던 시기, 이해받고 싶었지만 말하지 못했던 시간, 그리고 실패했지만 아름다웠던 기억들이 모두 이 영화 속에 있다.
청춘은 완성된 서사가 아니다. 오히려 끝없이 복원되고 다시 쓰이는 감정의 조각이다. <우리의 20세기>는 그 감정을 온전히 담아낸 영화다. 누군가는 청춘을 지나왔고, 누군가는 지금 그 속에 있고, 또 누군가는 아직 맞이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감정은 세대나 시대를 초월해 닿는다. 영화는 그것을 보여주고, 우리는 그 안에서 자신만의 청춘을 다시 만난다.
2. <우리의 20세기> 속 산타바바라
영화 <우리의 20세기>(20th Century Women, 2016)는 미국 캘리포니아 해안도시 ‘샌타바버라(Santa Barbara)’를 주요 배경으로 삼고 있다. 이 영화는 단순히 특정 시대와 인물의 이야기를 다루는 성장 서사를 넘어서, 공간이 주는 감정과 풍경의 힘으로 관객의 감정선을 촘촘히 자극한다. 그 중심에는 바로 샌타바버라라는 장소가 있다. 이 도시는 단순한 촬영지가 아니라, 영화 전체의 감정적 기후를 결정짓는 중요한 정서적 공간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이 <우리의 20세기>가 시간뿐만 아니라 공간까지 복원해 낸 영화로 평가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샌타바버라는 캘리포니아 남부 해안에 자리 잡은 작고 조용한 도시다. 따뜻한 햇살과 고요한 바다, 붉은 기와지붕의 건물들이 이어지는 그곳은 일반적인 대도시와는 다른 정서를 풍긴다. 마치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을 주며, 현실과 이상, 일상과 회상이 중첩된 공간처럼 느껴진다. <우리의 20세기>는 이러한 도시의 기운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인물들의 감정이 자연스럽게 펼쳐지고, 또 스며든다. 샌타바버라의 공간적 특징은 도심과 해안의 완벽한 균형에서 출발한다.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넓게 펼쳐진 바다가 있고, 조금만 들어가면 오래된 목재 건물과 단층 주택들이 줄지어 있는 구시가지가 이어진다. 이 도시는 변화보다는 고정성을 지향하는 듯한 느낌을 주며, 빠르게 흘러가는 도시적 리듬보다는 천천히 사유하게 만드는 공간적 여백을 제공한다. 영화는 이런 샌타바버라의 미묘한 정서를 정확히 잡아낸다. 주인공 제이미와 그의 어머니 도로시아가 살아가는 집은, 영화의 주요 배경이 되는 낡은 빅토리아풍 주택이다. 이 집은 단순한 거주공간이 아니라 인물들의 관계, 감정, 기억이 축적되는 상징적 공간이다. 그리고 그 집 바깥으로 나가면 바로 샌타바버라의 일상이 펼쳐진다. 학교, 시장, 서점, 바닷가,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길은 모두 실제 샌타바버라의 풍경 속에 존재하는 장소들이다. 특히 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오르는 장면, 바닷가를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 해가 질 무렵 빨갛게 물든 하늘 아래 앉아 있는 장면들은 이 도시의 풍경이 얼마나 영화의 분위기와 감정을 지탱해 주는지 보여준다. 고요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샌타바버라의 배경 속에서도 인물들은 혼란과 갈등, 정체성의 불안을 겪는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감정들이 샌타바버라의 아름다움 속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우리의 20세기>는 1979년이라는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이는 미국 사회가 급격히 변화하던 시기였고, 문화적으로도 과도기의 정서를 강하게 띠던 때였다. 이 시기를 배경으로 삼으면서도 영화는 특정 시대의 상징물에만 의존하지 않고, 그 시대의 분위기 자체를 복원하는 데 집중한다. 샌타바버라는 이런 영화의 연출 의도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도시다. 영화 속에서는 불필요한 현대적 장치들이 철저히 배제된다. 카펫이 깔린 거실, 자가 수리 중인 벽, 카세트테이프가 돌아가는 소리, 로터리 전화기, 노란색 주방 조명, 그리고 LP판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들이 그 시대를 상징하는 요소로 쓰인다. 이 모든 것이 샌타바버라의 공간 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관객은 이 도시를 보는 순간, 그 자체로 1970년대 말로 이동하게 된다. 샌타바버라는 관광지로서의 화려함보다는, 일상 속의 소박한 정서를 간직한 도시다. 그곳에는 빌딩숲도 없고, 복잡한 교통도 없다. 그래서 더욱 그 시대를 담아내기에 적절한 장소로 기능한다. 영화의 미장센은 도시의 조용한 풍경과 어우러져 정서적으로 안정적이고 깊은 울림을 준다. 1979년이라는 시대는 이제 많은 이들에게 과거가 되었지만, 영화는 그 시기를 샌타바버라의 공간을 통해 다시 눈앞으로 데려온다. 샌타바버라는 단지 배경이 아니라, 인물의 감정을 흡수하고 반영하는 유기적인 공간으로 작동한다. 도로시아는 종종 혼자 남겨져 생각에 잠긴다. 그녀가 앉아 있는 툇마루, 밤에 홀로 걷는 길, 해 질 무렵 마당에 퍼지는 붉은빛은 그녀의 외로움과 불안을 대신 표현해 주는 공간적 장치다. 영화는 그녀의 감정을 대사로 직접 표현하지 않는다. 대신 샌타바버라의 고요한 풍경 속에 그 감정을 녹여낸다. 이러한 연출은 현대 영화에서 드문 방식이다. 요즘 많은 영화들은 감정을 설명하고, 빠르게 전달하려 한다. 하지만 <우리의 20세기>는 샌타바버라라는 도시의 풍경을 통해 감정을 느끼게 만든다. 그 여백은 관객이 스스로 감정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샌타바버라의 하늘, 바람, 거리, 식물, 색감 하나하나가 인물의 감정을 구성하는 요소로 작동한다. 또한, 이 도시는 감정을 회피하지 않게 만든다. 공간에 여유가 있고, 시간의 흐름이 느리기에 인물들은 자신의 감정과 마주하게 된다. 줄리와 제이미의 대화, 아비의 갈등, 도로시아의 고독은 모두 이 도시의 고요함 안에서 부드럽게 드러난다. 샌타바버라는 감정을 자극하는 공간이 아니라, 감정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게 하는 공간이다. 그래서 영화는 감정이 격해지지 않아도 깊은 공감을 이끌어낸다. <우리의 20세기>는 샌타바버라라는 도시를 통해 정서적 서사를 완성한다. 이 도시는 단지 무대가 아니라, 기억이 머무는 장소이자 감정이 스며드는 공간이다. 샌타바버라의 햇빛, 바람, 하늘, 거리, 그 모든 요소들이 영화의 감정을 복원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 도시는 인물의 내면을 해석하고, 관객의 감정을 자극하며, 동시에 한 시대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아낸다.
영화를 보고 나면 샌타바버라라는 도시는 단지 ‘미국의 한 도시’가 아니라, 우리의 기억과 감정이 투사된 장소로 남는다. 이곳을 직접 가보지 않아도, 영화 속 풍경만으로도 충분히 그곳의 공기와 온도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각자의 20세기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공간이 감정을 움직이고, 풍경이 기억을 소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의 20세기>는 샌타바버라를 통해 증명해 낸다.
3. 가정에서 여성의 역할
영화 <우리의 20세기>(20th Century Women)는 다양한 세대의 여성들이 한 지붕 아래 살아가며 서로를 통해 배우고 변화해 가는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이 영화에서 가정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물들의 내면과 관계가 끊임없이 부딪히고 쌓이는 무대이자 중심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시대마다 달랐던, 또 세대마다 충돌하는 ‘여성의 역할’이라는 복잡한 층위가 존재한다. 가정이라는 공간은 역사적으로 여성의 대표적 영역으로 인식되어 왔다. 사회가 빠르게 변하는 동안에도 가정 안에서 여성에게 기대되는 역할은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이 영화는 1979년 미국 캘리포니아의 샌타바버라를 배경으로, 한 중산층 가정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지만, 영화 속 여성 캐릭터들을 통해 시대를 뛰어넘는 질문을 던진다. 여성은 가정에서 어떤 위치에 있었고, 또 있어야 했는가. 그리고 시대가 변할수록 그 역할은 어떻게 재정립되어야 하는가.
영화의 중심인물인 도로시아는 50대 초반의 싱글맘으로, 아들 제이미를 혼자 키우고 있다. 그녀는 세계대공황을 겪었고,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변화하는 미국을 살아온 인물이다.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자립한 여성으로서, 가정의 주체로 기능하고 있지만, 그녀가 체화한 여성의 역할은 그 이전 세대의 가치관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는 변화하는 시대에 뒤처지고 싶지 않아 한다. 그렇기에 젊은 여성 아비와 줄리에게 아들 제이미의 ‘성장’을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도로시아는 고정된 여성상에 갇혀 있지 않으려 하지만, 오히려 그러한 태도 자체가 그 시대 여성에게 주어진 모순적인 요구를 그대로 드러낸다. 일하면서도 완벽한 엄마이기를 바라는 사회, 개인으로서의 욕망을 표현하기 어려운 분위기, 자녀의 삶에 영향력을 미치되 간섭은 하지 않아야 하는 애매한 위치. 도로시아는 그런 사회적 기대와 현실의 갈등 속에서 ‘어떤 엄마여야 하는지’를 스스로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 영화는 도로시아의 내면을 고요하게 들여다보며, 그녀가 ‘가정’이라는 무대 위에서 얼마나 복잡한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야 했는지를 보여준다. 사랑과 독립, 통제와 신뢰 사이에서 그녀가 겪는 모순은, 수많은 여성들이 지금까지 겪어온 딜레마이기도 하다. 아비는 도로시아의 집에 세입자로 거주하며 함께 생활하는 20대 여성으로, 사진작가이며 자궁경부암을 앓고 있는 인물이다. 그녀는 펑크 문화를 소비하고, 정치적이며 성적으로 개방적인 태도를 지닌 인물로 그려진다. 아비는 여성 정체성에 대해 이론이나 논리로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삶과 몸, 관계를 통해 그 의미를 실천한다. 그녀의 존재는 영화 속에서 가장 급진적인 여성성의 표현이다. 하지만 아비 역시 자유롭지 않다. 사회는 그녀의 자유를 불안하게 바라보고, 그녀의 병은 생물학적으로 여성에게 부과된 숙명처럼 작용한다. 그녀는 자유로운 연애와 예술 활동을 추구하지만, 가정이라는 공간 안에서는 여전히 ‘딸’이자 ‘여성’이라는 전통적 규범에 부딪힌다. 도로시아는 아비의 삶을 존중하면서도, 동시에 그 삶이 자신의 아들에게 미칠 영향을 걱정한다. 여기서 세대 간 여성의 역할 인식 차이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아비는 도로시아가 말로는 이해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여성의 ‘다른 가능성’을 대표한다.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아비가 겪는 갈등은 단순한 성격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시대의 변화를 여성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그리고 받아들이지 못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충돌이다. 줄리는 제이미의 오랜 친구이며, 이웃에 살고 있는 17세 소녀다. 그녀는 심리적으로 어른이 되고 싶어 하고, 성적으로도 자유로운 선택을 하려 한다. 하지만 그녀의 이러한 선택은 종종 ‘문제 있는 여자아이’로 간주되며, 동시에 그녀 자신에게도 혼란을 안겨준다. 그녀는 제이미와의 관계에서 끊임없이 선을 긋지만, 정서적으로는 누구보다 의지하고 연결되어 있다. 이런 모순은 그녀가 처한 사회적 기대와 자아 사이의 충돌을 상징한다. 줄리는 여성에게 요구되는 ‘순결’과 ‘자율성’ 사이에서 균형을 찾지 못한다. 그녀는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고 싶지만, 그것이 가정과 사회의 이중적인 시선 속에서 언제든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 도로시아는 그녀를 걱정하고, 아비는 그녀를 이해하려 하며, 제이미는 그녀를 사랑한다. 하지만 줄리는 그 어느 누구와도 완전히 공감하지 못한 채, 혼란스러운 정체성을 안고 살아간다. 가정이라는 무대 안에서 줄리의 역할은 명확하지 않다. 그녀는 딸도, 엄마도, 연인도 아니며, 그저 한 명의 존재로서 삶을 경험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영화는 줄리의 혼란을 단순히 사춘기의 문제로 축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가 겪는 감정과 갈등을 통해 가정 내에서 여성 청소년이 얼마나 쉽게 정체성 혼란을 겪을 수 있는지를 조명한다. <우리의 20세기>는 명시적으로 여성주의를 선언하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여성 캐릭터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사회가 요구한 ‘여성성’에 저항하거나 수용하거나, 혹은 그 중간 어디쯤에서 균형을 잡으려 한다. 이 과정은 곧 가정이라는 공간 안에서 여성의 역할이 어떻게 형성되고 변형되어 왔는지를 되짚는 일이 된다. 과거에는 ‘가정을 책임지는 여성’이라는 이미지가 곧 여성의 이상적인 모습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런 관념이 얼마나 많은 감정적 비용과 정체성의 갈등을 요구했는지를 보여준다. 여성들은 가정 안에서만 존재하지 않고, 사회적 존재로서의 자기 삶을 살아가야 한다. 도로시아, 아비, 줄리는 서로 다르지만 모두 여성으로서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낸다. 가정은 더 이상 여성만의 공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여성 역시 ‘가정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로만 소비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20세기>는 세 명의 여성을 통해 가정 안에서 여성의 존재감이 어떻게 재정의될 수 있는지를 조용하지만 강하게 말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가정이라는 무대 위에서 여성은 더 이상 조연일 수 없다. 영화 <우리의 20세기>는 그 사실을 섬세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보여준다. 각기 다른 세대의 여성들이 하나의 공간 안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며 부딪히고, 상처받고,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드러나는 여성의 역할은 더 이상 고정된 것이 아니다. 시대와 함께 끊임없이 변하고, 그 안에서 각자의 선택과 감정이 더 중요해진다. 이 영화는 여성에게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답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어떤 삶이든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성은 가정의 배경이 아니라, 가정을 구성하고 이끄는 주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변화의 시작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