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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워크 투 리멤버> 랜든의 삶, 영화 속 자연광, 제이미의 리스트

by borybory-click 2025. 9. 16.

영화 &lt;워크 투 리멤버&gt; 관련 사진

  • 개봉일: 2002. 06. 21.
  • 장르: 드라마, 멜로
  • 평점: 8.78
  •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 러닝타임: 102분
  • 감독: 아담 쉥크만
  • 주연: 쉐인 웨스트, 맨디 무어

 

1. <워크 투 리멤버> 속 제이미의 죽음 후 랜든의 삶

영화 <워크 투 리멤버(A Walk to Remember)>는 많은 사람들에게 첫사랑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단순한 청춘 로맨스를 넘어, 삶과 죽음, 믿음과 성장, 사랑과 헌신이라는 깊은 주제를 관통한다. 특히 영화 후반부, 제이미의 죽음 이후 랜든이 선택한 삶의 방식은 단지 영화적 장치를 넘어 현실 속 우리 삶의 방향성을 되묻게 만든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이후에도 삶은 계속된다. 중요한 것은 그 이후를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것이다. 랜든은 이별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고통 속에서도 성장하며, 자신의 인생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간다. 그 선택은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사랑의 기억과 영향을 기반으로 한 성숙의 결과였다.

처음 등장하는 랜든은 철없고 무책임한 고등학생이었다. 그는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친구들과 어울려 장난을 치며 책임감 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나 제이미와의 만남은 그에게 감정의 충격을 안겨주었고, 이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삶의 가치와 방향성을 일깨워 주었다. 제이미는 단순히 그의 연인이 아니라, 그의 내면에 깊이 뿌리내린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그녀는 자신이 가진 신념과 꿈을 온전히 지키며, 병약한 몸에도 불구하고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랜든에게 그 신념을 물려주듯 자신과의 짧은 사랑을 통해 그의 삶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제이미가 세상을 떠난 후, 랜든은 단지 아픔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그는 슬픔 속에서도 그녀가 꿈꾸던 세상을 살아가려 했다. 대학에 진학하고, 그녀가 존경하던 인물이 되기 위해 의대 공부에 매진한다. 이 모든 선택은 그녀가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방향이었다. 제이미는 자신의 곁에 머물렀던 짧은 시간 동안, 랜든의 시선을 바꾸고 마음을 넓혔으며, 결국 그의 삶 전체를 바꿔놓았다. 랜든은 제이미와 함께한 시간 동안 그녀가 품고 있던 가치와 철학, 그리고 믿음을 내면화했다. 그 내면화가 랜든의 새로운 삶의 태도로 이어졌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 아픔을 극복하지 못한 채 삶을 멈춰버리거나 후회와 자책 속에 머물게 된다. 하지만 랜든은 슬픔에 갇히지 않고 제이미의 존재를 삶의 이유로 삼았다. 제이미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그녀가 남긴 흔적은 랜든의 행동과 선택을 통해 계속해서 살아 숨 쉬었다. 특히 영화 마지막 부분, 제이미의 버킷리스트였던 “하늘을 잇는 망원경으로 별을 관찰하는 것”을 이뤄준 랜든의 모습은 상징적이다. 그는 제이미의 삶을 대신 살아주는 존재가 아니라, 그녀의 삶의 의미를 자신 안에서 실현하며 살아가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랜든의 변화는 단순히 감정의 결과가 아니다. 그는 자신이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고 있었고, 제이미 덕분에 그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깊이 자각하고 있었다. 이러한 자각은 그를 새로운 길로 이끌었다. 그는 과거와 단절하지 않았고, 제이미와의 시간 역시 아픔으로만 간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시절을 인생의 가장 값진 시간으로 인정했고, 그것이 곧 현재를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었다. 슬픔을 무기로 삼지 않고 삶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태도는, 이 영화를 보는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동기를 준다. 시간이 흐른 후, 랜든은 제이미의 아버지를 찾아와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이 장면은 단순한 인간관계의 복원이 아니라, 감정의 순환과 완성을 상징한다. 과거의 갈등은 남겨진 자의 용서와 받아들임 속에서 자연스럽게 해소되고, 사랑은 기억이라는 형태로 다시 살아난다. 랜든은 더 이상 과거에 머물러 있는 인물이 아니다. 그는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제이미가 남긴 가치를 되새기며, 자신의 삶으로 그녀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사랑은 사라지지 않았고, 형태만 바뀌었을 뿐이다. 그것은 기억이 되었고, 행동이 되었으며, 존재 방식이 되었다. 랜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는 ‘나를 위한 삶’에서 ‘누군가를 위한 삶’으로의 전환이다. 이전의 랜든은 충동적이고 자기중심적이었다. 그러나 제이미와의 시간은 그에게 헌신, 배려, 책임이라는 감정을 가르쳐주었다. 그는 타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자신보다 누군가의 마음을 더 생각하게 되었다. 이 변화는 단순히 제이미 한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앞으로 마주할 모든 인간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커다란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다. 제이미는 떠났지만, 그녀가 남긴 사랑의 흔적은 랜든의 삶 속에서 점점 더 넓게 퍼져나갔다. 실제로 영화는 관객에게 ‘사랑 이후의 삶’을 조명하며, 상실의 고통을 어떻게 성숙으로 전환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이별은 끝이 아니라 변화의 계기이다. <워크 투 리멤버>는 사랑이 끝나는 시점보다 그 사랑 이후의 삶이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영화가 끝났음에도 많은 관객들이 오랫동안 여운을 느끼는 이유는, 그 사랑이 단지 서사 속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에서도 가능한 태도이기 때문이다. 랜든처럼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사람이라면, 이별 후에도 그 사랑을 가슴에 품고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한다. 랜든이 선택한 삶은 누구나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아픔 앞에서 무너지거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감정을 닫는다. 하지만 그는 상처를 외면하지 않았고, 사랑의 기억을 부정하지 않았다. 대신, 그 감정을 고스란히 껴안으며 살아가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한 태도는 단순히 영화 속 감동적인 요소가 아니라, 우리가 인생에서 마주하게 되는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 참고할 수 있는 실제적인 삶의 자세이다. 감정은 사라지지 않지만,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간직하고 살아갈지는 오롯이 개인의 몫이다.

결론적으로, 제이미의 죽음 이후 랜든이 살아낸 방식은 단지 개인적 성장의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사랑이란 감정이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삶의 방향을 어떻게 재설계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아름다운 예다. 그는 제이미의 죽음에 주저앉지 않고, 그 사랑을 삶의 힘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 힘은 시간이 지나도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그의 삶을 밝혀주었다. 제이미가 떠난 후에도 그녀의 사랑은 살아 있었고, 그 사랑은 랜든이라는 한 사람을 통해 계속 이어졌다. 결국 사랑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더 넓은 세상 속에서 형태를 바꿔 계속 살아가는 것이다.

 

2. 로맨스 영화 속 자연광

로맨스 영화는 감정을 시각적으로 전달해야 하는 장르다. 인물 간의 사랑, 갈등, 이별, 희망 같은 복잡한 감정은 대사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영화 연출에서는 빛과 색, 프레임 구성, 음악, 카메라 움직임 등 다양한 시청각적 장치를 활용해 감정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그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요소가 바로 ‘자연광’이다. 자연광은 인위적인 조명보다 훨씬 섬세하고 감성적인 연출이 가능하며, 장면에 따뜻함, 쓸쓸함, 설렘 같은 정서를 더하는 핵심적인 장치로 기능한다. 많은 감독들이 로맨스 장르에서 자연광을 유독 많이 사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영화 <워크 투 리멤버>만 보더라도 자연광의 상징적 연출은 여러 장면에서 반복된다. 제이미와 랜든이 함께 하늘을 바라보는 장면, 병원에서 조용히 손을 잡고 있는 장면,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누는 장면 등에서 자연광은 단순히 ‘빛’ 이상의 역할을 한다. 따사로운 햇빛은 두 사람의 감정을 포근하게 감싸고, 노을빛은 서서히 다가오는 이별의 슬픔을 암시하며, 새벽빛은 희망과 재생의 이미지를 부여한다. 이처럼 자연광은 시간대에 따라, 계절에 따라, 감정에 따라 다르게 작동하며 장면의 의미를 풍부하게 만든다. 자연광의 연출은 기술적으로는 어렵다. 인공조명처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하루 중 특정 시간대만 촬영이 가능하거나, 기후 조건에 따라 스케줄이 좌우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과 촬영 감독이 자연광을 고집하는 이유는, 그 빛이 주는 진정성과 감성 때문이다. 햇빛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따뜻한 오전의 빛, 붉게 물든 노을, 희미하게 퍼지는 새벽의 푸른빛 등은 인물의 감정 상태를 시각적으로 직접적으로 전달하면서도, 관객에게는 무의식적으로 감정 이입을 유도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로맨스 영화에서 자연광은 가장 흔히 ‘사랑’의 감정과 연결된다. 인물들이 첫눈에 반하게 되는 순간이나,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 짓는 장면에는 반드시 따사로운 햇살이 함께 등장한다. 이는 인간의 경험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햇살 좋은 날은 기분이 들뜨고, 사람은 자연스레 더 긍정적인 감정 상태가 된다. 감독은 이러한 감정 상태를 관객과 인물 사이에 동기화시키기 위해 자연광을 활용한다. 특히 배경 전체를 채우는 자연광은 영화의 톤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노을빛은 이별과 후회의 감정을 상징한다. 해가 지는 시간대는 하루의 끝자락이며, 무언가가 끝나고 사라지는 이미지와 겹친다. 로맨스 영화에서 해지는 장면이 유독 많은 이유는, 그 시간이 감정적으로 가장 짙고 묵직한 분위기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붉게 물든 하늘 아래에서 나누는 작별 인사,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 마음속 진심을 고백하는 장면은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이때 자연광은 단지 배경이 아니라, 인물과 감정을 감싸며 그 순간을 감성적으로 포장해 주는 중요한 장치가 된다. 또한 새벽이나 아침빛은 새로운 시작을 상징한다. 하룻밤을 지나고 처음 맞이하는 아침은 희망의 이미지로 자주 사용되며, 인물의 감정 변화나 관계 회복의 신호로도 쓰인다. 새벽녘의 푸르고 차가운 빛은 인물 내면의 고요함이나 결심을 표현하기도 하고, 동트는 하늘 아래에서 나누는 포옹이나 키스는 다시 시작되는 사랑을 암시한다. 자연광은 이처럼 시간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감정의 이동과 정서를 섬세하게 표현해 준다. 자연광이 특히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이유는 ‘사실성’ 때문이다. 자연광은 현실 세계에서 익숙하게 접하는 빛이기 때문에 관객은 이질감 없이 장면에 몰입할 수 있다. 로맨스 장르에서는 인물 간의 감정선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이 감정이 현실처럼 느껴지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자연광은 감정의 진정성을 높이는 도구로 작용하며, 인위적인 세트나 조명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진솔한 장면 연출이 가능하다. 마치 실제로 그 공간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고, 인물의 감정을 더 깊이 있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준다. <비포 선라이즈>,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라라랜드>와 같은 로맨스 영화들도 자연광의 사용이 두드러진 작품들이다. 이들 영화는 각각 다른 배경과 서사를 가지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자연광을 통해 인물의 감정을 강화하고, 장면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예를 들어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햇살 가득한 이탈리아 시골 마을은 사랑이 싹트는 이상적인 공간으로 느껴지고, 그 빛 속에서 나누는 대사와 시선은 더욱 진하게 다가온다. 자연광은 배경을 살아 숨 쉬게 만들고, 인물의 감정을 배경과 하나로 이어주는 매개체로 작용한다. 또한 자연광은 관객에게 미적 쾌감을 제공한다. 아름답게 내리쬐는 햇빛, 그림자를 드리우는 나무,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빛줄기 등은 그 자체로 시적인 장면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장면은 SNS나 블로그를 통해 공유되며, ‘감성적’이라는 키워드와 함께 콘텐츠 소비의 트렌드가 된다. 로맨스 영화는 감정을 소비하는 장르이며, 자연광은 그 감정을 이미지로 정제해 주는 역할을 한다. 이는 영상미를 중시하는 현대의 콘텐츠 흐름과도 잘 맞아떨어지며, 영화 외적인 영향력도 넓힌다. 더 나아가 자연광은 시간성과 인물의 내면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다. 흐린 날의 부드러운 광선은 우울함, 불확실성, 망설임을 나타내고, 강렬한 태양은 결단, 열정, 고백의 타이밍을 의미하기도 한다. 어떤 장면에서 어떤 자연광을 활용하느냐에 따라 장면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감독은 이러한 자연광의 속성을 활용해, 인물의 심리 변화를 외적으로 드러내는 동시에 서사의 흐름을 보다 풍부하게 만든다. 빛은 대사보다 앞서 감정을 말하고, 음악보다 더 먼저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다.

감정의 진정성은 작은 디테일에서 완성된다. 로맨스 영화의 명장면은 대부분 아주 자연스럽고 사소한 감정 교류에서 비롯된다. 눈을 마주치는 순간, 어색한 침묵, 스쳐가는 손길.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을 완성하는 것은, 바로 그 공간을 채우는 자연광이다. 이 빛은 어떤 설명 없이도 그 장면의 분위기를 규정하며, 인물의 마음을 드러내는 거울이 된다. 자연광이 만들어낸 진짜 감정은 오래 기억되고, 장면의 여운은 빛의 여운과 함께 관객의 마음속에 남는다.

결국 로맨스 영화에서 자연광은 단순한 연출 기법이 아니라, ‘감정의 언어’다.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사랑의 떨림, 상실의 공허함, 희망의 따뜻함을 전달하는 데 있어 자연광은 가장 강력한 매체다. 관객은 자연광 속에서 인물의 눈빛을 더 오래 응시하고, 손짓 하나에도 더 깊이 빠져든다. 자연광이 만드는 감정의 무드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 움직임이 곧 영화의 진짜 힘이 된다.

 

3. <워크 투 리멤버> 속 제이미의 리스트

영화 <워크 투 리멤버(A Walk to Remember)> 속 제이미 설리반은 단순한 캐릭터가 아니다. 그녀는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과 내면의 단단함을 지닌 존재이며, 그 모든 감정과 철학은 ‘리스트’라는 구체적인 형태로 정리되어 관객 앞에 놓인다. 이 리스트는 단순한 버킷리스트 이상의 상징성을 지닌다. 생의 유한함 속에서 꿈꾸는 소망, 죽음을 앞둔 자의 평온한 수용, 그리고 사랑이라는 감정의 마지막 선물까지 이 리스트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영화가 제이미의 리스트를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은 단순한 목표 달성이 아니라, 인간의 삶과 죽음, 그 사이에서 피어나는 순간의 의미에 대한 깊은 성찰이었다.

제이미는 자신의 죽음을 알고 있다. 어린 나이에 백혈병을 진단받고,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면서도 그녀는 절망하거나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대신,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이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씩 적어 나간다. 그 리스트는 아주 소소한 바람에서부터, 누구에게도 쉽게 말하지 못할 깊은 소망까지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목록에는 별을 보기, 특정 장소에 가보기, 결혼해 보기 등 일반적인 청춘의 버킷리스트와 비슷해 보이는 것들이지만, 그 이면에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자각이 뚜렷하게 배어 있다. 리스트의 존재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서사적 장치로도 작용한다. 처음에는 제이미가 쓴 이 리스트가 관객에게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지만, 영화가 전개되면서 하나씩 그 항목들이 실현되는 과정을 통해 리스트의 내용과 의미가 점차 드러난다. 랜든이 그녀를 사랑하게 된 이후, 그는 그녀가 이루고 싶어 했던 것들을 함께 실현해 주기 시작한다. 그것은 단순히 ‘로맨틱한 행위’가 아니다. 그 과정은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과, 그 곁에 함께 서 있는 이가 만들어내는 삶의 마지막 조각들이며,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표현이기도 하다. 제이미의 리스트는 그녀가 살아 있음의 증거이자, 그녀가 어떻게 삶을 바라보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도구다. 사람들은 죽음 앞에서 삶의 의미를 되묻는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도 전에 시간이 지나가 버리곤 한다. 반면 제이미는 스스로의 삶을 주도적으로 정리하고, 짧은 시간이지만 의미 있게 채워가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그녀의 리스트는 관객에게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묵직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아직 시간이 있을 때,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정말로 내 인생에서 중요한 건 무엇인가. 이 영화는 그런 질문을 관객이 스스로 떠올리게 만든다. 이 리스트가 특별한 이유는 그 안에 담긴 ‘소망’이 단지 개인적인 욕망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제이미의 소망은 매우 순수하고 타인을 향해 있다. 자신이 이루고 싶은 것뿐 아니라, 그것이 누군가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기를 바란다. 예를 들어 별을 함께 보기, 특정 장소를 방문해 보기 같은 항목은 단순한 체험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의 공유된 시간, 나눔의 감정을 의미한다. 결국 제이미는 자신의 죽음조차 누군가에게는 의미 있는 기억으로 남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리스트는 이기적인 버킷리스트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빛나는 삶의 기억이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제이미의 리스트는 인간 존재의 유한성을 가장 아름답게 시각화한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죽음을 맞이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실제로 삶을 유한하게 느끼며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현대사회는 죽음을 밀어내고, 삶의 순간을 무한한 것처럼 소비하도록 유도한다. 그러나 제이미는 정반대의 삶을 보여준다. 그녀는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한다. 그 모습은 관객에게 큰 울림을 준다. 그 어떤 대사보다도, 그녀가 하나씩 리스트를 실현해 가는 모습이 더 진하게 감정을 전해준다. 또한 영화는 이 리스트를 단지 플롯을 위한 도구로 쓰지 않는다. 리스트는 인물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로 사용된다. 예를 들어, 초반의 제이미는 다소 신비롭고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처럼 묘사된다. 그러나 리스트를 통해 그녀가 현실적인 바람과 따뜻한 감정을 지닌 존재임을 알게 되면서, 랜든은 그녀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된다. 관객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지, 무엇을 꿈꾸는지를 리스트를 통해 직접적으로 마주하게 된다. 이는 캐릭터의 입체성을 더해주며, 그 인물이 단지 '아픈 소녀'로만 소비되지 않도록 만든다. 리스트를 함께 실현해 가는 과정은 랜든에게도 깊은 영향을 미친다. 그가 처음에는 단순히 제이미를 도와주려는 마음으로 시작했을지라도, 점점 그 리스트가 자신의 삶에도 중요한 의미로 다가오게 된다. 그는 점차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변모하며, 제이미와 함께한 시간이 그를 어떻게 성장시키는지를 보여준다. 결국 제이미의 리스트는 두 사람의 사랑을 연결하는 매개체이자, 랜든에게는 인생의 방향을 바꿔준 전환점이 된다. 리스트가 아니었다면 랜든은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제이미의 리스트는 영화 <워크 투 리멤버>에서 단순한 설정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삶의 방식에 대한 선언이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태도이며, 사랑이란 감정이 어떻게 기억으로 남는지를 보여주는 서사적 장치다. 제이미는 리스트를 통해 자기 삶을 정리했고, 관객은 그 리스트를 통해 삶의 본질적인 가치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어떤 말보다 진실한 감동은, 평범한 글자로 적힌 소망 하나하나가 실현되는 장면 속에서 피어난다. 그것이 바로 이 영화가 오랫동안 회자되는 이유이며, 제이미라는 캐릭터가 단지 극 중의 인물을 넘어 많은 이들에게 진심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현실에서도 사람들은 삶의 리스트를 만든다. 여행을 가보고 싶은 곳, 도전해보고 싶은 일, 만나고 싶은 사람. 하지만 많은 경우 그 리스트는 미뤄지고, 잊히고, 언젠가로 유예된다. <워크 투 리멤버>는 그 리스트를 ‘지금’ 실현하는 용기와 사랑의 힘을 보여준다. 시간이 없기 때문에 더 간절한 마음, 삶이 짧기 때문에 더 충실하게 살아가는 태도, 그리고 누군가와 함께 있기 때문에 가능한 소망의 실현. 제이미의 리스트는 관객에게 오늘의 삶을 다시 보게 하고, 당연했던 하루의 소중함을 다시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