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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원더> 타인의 시선, 그 이후, 한국에 전학 온다면

by borybory-click 2025. 4. 16.

영화 &lt;원더&gt; 관련 사진

 

  • 개봉일: 2017. 12. 27.
  • 장르: 드라마
  • 평점: 9.35
  • 등급: 전체 관람가
  • 러닝타임: 113분
  • 감독: 스티븐 크보스키
  • 주연: 제이콥 트렘블레이, 줄리아 로버츠, 오웬 윌슨, 이자벨라 비도빅

 

1. <원더>가 우리에게 말하는 타인의 시선

영화 <원더(Wonder, 2017)>는 단지 외모에 콤플렉스를 가진 소년의 성장기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가 살아가며 마주하는 사회적 시선과 그것이 인간관계에 미치는 깊은 영향을 정면으로 조명하는 강력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 영화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타인의 시선’이라는 주제를 섬세하게 풀어내며, 누구도 예외 없이 그 시선 속에서 흔들리고 상처받고 성장한다는 진실을 드러낸다.

주인공 어기 풀먼은 태어날 때부터 안면기형을 갖고 태어난 아이로, 여러 차례의 성형 수술을 거친 후 비로소 일반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처음 학교에 들어서는 장면은 단순한 연출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낯선 공간에 첫발을 내디딜 때 느끼는 불안과 긴장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어기의 얼굴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시선은 곧 사회의 시선이며, 그것은 '다름'에 대한 두려움, 무지, 그리고 편견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화는 이 시선을 직설적으로 보여주기보다는 섬세한 연출을 통해 관객이 스스로 깨닫게 만든다. 우리는 흔히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타인의 외형이나 첫인상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는 부정할 수 없다. 어기는 그의 외모로 인해 누군가의 눈길을 받는 것 자체가 두려운 아이로 그려진다. 처음엔 같은 반 친구들도 그와 말을 섞는 걸 꺼리고, 급식 테이블에서도 고립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어기에게 가장 큰 고통을 주는 것이 단순히 외모 자체가 아니라, 그 외모를 바라보는 시선들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시선은 때로는 직접적인 조롱으로, 때로는 침묵과 회피로 나타난다. 타인의 시선이 얼마나 날카롭고 무의식적인 폭력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들이 이어지며, 관객은 자연스럽게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그런 시선을 보냈던 순간들을 떠올리게 된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관객 스스로를 반성하게 만들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원더>는 단지 타인의 시선을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 시선이 변화하고, 관계가 발전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가 충분히 더 따뜻한 사람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어기를 처음에는 불편해하던 친구 잭 윌이 그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된 후, 스스로의 행동을 반성하고 다시 손을 내미는 장면은 깊은 울림을 준다. 서머라는 여자아이가 처음부터 어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장면 역시, 타인의 시선이 편견이 아닌 존중과 관심으로 변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처럼 영화는 한 개인의 성장뿐 아니라, 사회가 어떻게 변화하고 성숙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단순히 어기가 용기를 낸다는 서사에서 끝나지 않고, 주변 인물들 또한 자신의 시선을 돌아보며 변해간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영화가 어기의 시선에만 머물지 않고, 언니 비아, 친구 잭, 심지어 괴롭히는 아이인 줄리안의 관점까지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 다양한 시점의 서사는 관객으로 하여금 ‘모두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언니 비아는 동생에게 집중된 부모의 관심 속에서 자기를 숨기고 살아간다. 아무리 어기를 사랑해도, 그녀 역시 부모의 사랑을 갈망하는 평범한 10대 소녀다. 하지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이기적인 딸’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고 산다. 이 부분에서 영화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도, 얼마나 많은 감정들이 시선 속에서 눌려 있는지를 섬세하게 표현한다. 또한 괴롭힘의 주체로 등장하는 줄리안이라는 인물도 단순한 악역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그 역시 부모의 영향 아래, 사회적 기준에 따라 성공과 정상성만을 추구하는 시선을 내면화한 아이일 뿐이다. 그의 행동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수 있지만, 그 배경에는 ‘정상’이라는 기준에 대한 강박과 압박이 존재한다. 영화는 이런 캐릭터의 입체적인 묘사를 통해, 단순한 선악구도를 넘어서 사회적 시선이 어떻게 사람을 만들어가는지를 묘사한다. <원더>의 가장 큰 미덕은 결국 ‘다름’을 인정하는 데 있다. 타인의 시선에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그 시선을 마주하면서도 자기 자신을 지켜나가는 여정을 보여준다. 어기가 점점 학교에 적응하고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며, 자신의 외모가 전부가 아님을 세상에 보여주는 과정은 단순히 감동적인 성장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주는 현실적인 조언이다. 현대 사회는 SNS를 통해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을 공유하고 소비하는 시대다. 우리가 무엇을 입었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심지어 무엇을 먹는지까지 타인의 평가를 받는다. 이 속에서 진짜 ‘나’는 점점 희미해지고, 우리는 자신이 아닌, 누군가가 좋아할 법한 버전의 자아를 만들어간다. <원더>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조용히 질문을 던진다. 진정한 나를 인정받기 위해, 우리는 누구의 시선을 바라보며 살아가야 하는가?

결국 영화 <원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단순하지만 강력하다. “우리는 모두 다르며, 그 다름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존중받아야 할 개성이다.” 그리고 타인의 시선을 바꾸는 첫걸음은, 나 스스로가 편견 없이 누군가를 바라보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세상의 시선이 변하길 바란다면, 먼저 내가 바라보는 시선을 바꿔야 한다. 이 작품은 단지 감동을 주는 영화 그 이상이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 꼭 필요한 따뜻한 시선, 그리고 치유의 시작점이 된다. <원더>는 ‘다름’이라는 단어에 담긴 불편함을 ‘이해’라는 단어로 바꾸는 법을 보여주는 영화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결국 ‘사람은 사람을 바꾼다’는 진리를 진심으로 믿기 때문이다.

 

2. 그 이후 어기의 고등학교 이야기

어기 풀먼의 이야기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한 아이가 겪는 세상의 벽에 마음이 아팠고, 그 벽을 넘어서는 용기에 깊이 감동했다. 영화 <원더(Wonder)>는 단순한 성장 영화가 아니라, ‘다름’이라는 단어에 갇힌 사람들의 편견을 부수는 따뜻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를 무사히 마친 어기가 고등학교에 진학했다면, 그의 삶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영화는 거기서 끝났지만, 우리는 모두 어기의 이야기를 조금 더 알고 싶어 한다. 그래서 오늘은 어기가 고등학생이 된 그 이후의 삶을 상상하며, 또 한 번 ‘타인의 시선’을 넘어서는 여정을 그려본다.

중학생이 된 어기는 어릴 적보다 조금 더 의연해졌을 것이다. 초등학교에서의 경험은 분명 그에게 큰 자산이 되었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사람들을 만났다는 사실은 큰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춘기에 접어든 어기에게 고등학교는 또 다른 시험대일 것이다. 이제는 누가 보기에도 또래 친구들과 크게 다르지 않게 성장했겠지만, 얼굴에 남은 흔적은 여전히 낯선 시선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게다가 고등학교라는 곳은 또래 집단 속에서 정체성과 소속감이 더욱 중요해지는 시기다. 단순히 외모의 차이뿐 아니라, 정서적인 변화와 내면의 갈등이 더 깊어지는 시점이다. 나는 어기가 문과냐 이과냐를 고민하면서, 좋아하는 과목이 생기고, 친구와 다투기도 하고, 누군가를 몰래 좋아하기도 하며, 아주 평범한 10대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평범함이 어기에게는 어쩌면 가장 큰 성취일 수 있다. 그동안 어기의 일상은 '다름'이라는 단어로 정의되어 왔지만, 고등학생 어기는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같은 한 명의 학생'으로 느끼길 원할 것이다. 그는 이제 '특별한 아이'라는 말보다는, 그냥 '어기'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걸 더 좋아하게 되었을지 모른다. 고등학교는 학업이라는 또 다른 경쟁의 세계다. 얼굴로 주목받던 시기를 지나, 이제는 성적, 진로, 비교와 기대 속에서 자신을 입증해야 하는 시점이다. 어기는 여전히 착하고 진지한 아이겠지만, 이제는 누군가의 시선보다 자신의 시선을 더 의식할 시기다. 나는 상상해 본다. 어기가 과학 동아리에 들어가 열정적으로 로봇을 만들고, 학교 방송반에서 목소리로 친구들을 감동시키고, 생물학 시간에 진지하게 손을 들고 질문하는 모습을. 어기의 얼굴이 아닌 그의 생각과 재능이 주목받는 시간, 그것이 어기에게 진정한 성장일 것이다. 고등학교의 어기는 어릴 적보다 훨씬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있을 것이다. 인터넷과 SNS 속에서 사람들의 시선은 더 다양하고, 때로는 더 날카롭다. 하지만 어기는 이제 그런 시선을 통과할 수 있는 단단한 내면을 가졌을 것이다. 아마도 그는 가끔 누군가의 무심한 눈빛에 상처를 받기도 하겠지만, 예전처럼 움츠러들기보다는 속으로 한번 웃고 넘길 줄 아는 법을 배웠을 것이다. 어쩌면, 어기는 누군가에게 조언을 해주는 입장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가진 후배에게 조용히 말을 건네며, “네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넌 그대로 충분히 멋진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나는 어기의 가족 역시 변해갔을 거라 믿는다. 언제나 어기를 품어주던 엄마는 이제 대학 진학을 걱정하며 조용히 자료를 검색하고 있을 테고, 아빠는 여전히 유쾌하게 어기의 하루를 묻는 단골 농담을 이어가고 있을 것이다. 언니 비아는 대학생이 되어 독립했을지도 모르지만, 여전히 동생 어기를 챙기며 영상통화로 웃고 있을 것이다. 가족은 그대로이되, 모두가 조금씩 어기에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자율성과 독립성을 응원해 주는 중이다. 그건 어기의 성장과 함께 가족도 함께 성장했다는 증거다. 무엇보다 어기의 고등학교 시절은, 어기의 시선이 세상을 향해 넓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는 이제 자신만의 이야기를 갖기 시작했을 것이다. 나처럼 생긴 사람들, 나와 다른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 다양한 삶의 형태를 접하며 어기는 점점 더 세상을 이해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을 것이다. 어릴 적에는 자신이 세상의 중심에서 시선을 견뎌냈다면, 이제는 그 시선을 다른 누군가에게 돌릴 수 있는 사람, 공감하고 이해하며 손을 내미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는 ‘나만 힘든 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래서 더 따뜻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원더>는 ‘친절함이 선택지 중 하나라면, 언제나 친절함을 선택하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나는 고등학생이 된 어기도 여전히 그 가르침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고 있으리라 믿는다. 아니, 오히려 세상의 복잡함을 더 알게 된 지금, 그 말의 무게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을 것이다. 어기의 고등학교 생활은 그 어떤 드라마보다도 감동적일 것이고, 그는 여전히 자기만의 속도로, 자기만의 방식으로 성장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이야기를 영화로 또 한 번 보고 싶다. 이번에는 초등학교가 아닌 고등학교라는 무대에서, 다시 한번 어기의 시선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어기였고, 누군가의 시선에 상처받았고, 또 그 시선을 넘어설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어기의 고등학교 이야기는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이 시대 청소년들이 겪는 수많은 고민과 성장의 축소판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3. 만약 어기가 한국에 전학 온다면

영화 <원더(Wonder)> 속 주인공 어기 풀먼은 외모로 인해 세상의 시선과 끊임없이 싸워야 했던 소년이었다. 선천적인 안면기형으로 인해 사람들 앞에 나서기조차 두려워했던 어기는, 가족과 친구들의 사랑, 그리고 스스로의 용기를 바탕으로 자신의 세계를 조금씩 넓혀갔다. 그가 초등학교를 다니며 겪었던 이야기는 우리에게 ‘다름’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선물했다. 그런데 문득, 다른 상상을 해본다. 만약 어기가 미국이 아닌 ‘한국’에 전학을 왔다면 어땠을까? 완전히 다른 문화, 강한 집단성, 외모 중심 사회, 낯선 언어와 규범 속에서 어기의 적응기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어기의 가족은 아버지의 직장 발령으로 인해 1년간 서울에 머물게 되었다. 영어권 국제학교가 아닌, 실제 한국 중학교로 전학을 결정한 이유는 어기 스스로의 의지 때문이었다. “이제는 더 많은 사람들과 부딪히며 살아보고 싶어요.”라고 말하며 어기는 자신 있게 결정했다. 그의 마음에는 이미 두려움을 넘어선, 성장에 대한 기대가 자리 잡고 있었다. 전학 첫날, 어기는 교복을 입고 낯선 복도에 선다. 학교 벽에는 교칙과 급훈이 빼곡히 붙어 있고, 한국어로만 이루어진 방송이 쩌렁쩌렁 울린다. 교실 문을 열자 수십 쌍의 눈이 동시에 그를 바라본다. 교사도 학생들도 그와 눈을 마주치지만, 그 시선은 궁금함과 불편함이 뒤섞여 있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그의 얼굴에 시선을 집중한다. 그 누구도 악의적인 표현을 하지 않지만, 말없이 느껴지는 낯섦과 거리감이 어기를 다시 움츠리게 만든다. 한국 사회는 외모에 대한 평가가 무의식적으로 빠르게 이뤄지는 문화다. 얼굴, 옷차림, 표정 하나하나가 타인의 평가 대상이 되며, 또래 집단 내에서 그 기준은 더욱 엄격하다. 특히 중학생 시절은 집단의 규범에 따르지 않으면 ‘이상한 애’, ‘불편한 존재’가 되기 쉬운 시기다. 어기의 얼굴은 한국 아이들에게 익숙하지 않고, 그는 한국어도 능숙하지 않다. 수업 시간엔 눈치를 보며 조용히 앉아 있고, 쉬는 시간엔 혼자 책을 읽는다. 급식 시간엔 자리를 찾지 못해 늦게 앉거나 그냥 급식을 포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기의 본질은 외모에 있지 않다. 그는 유머가 있고,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는 따뜻함이 있다. 시간이 조금씩 흐르면서 어기의 그런 점이 서서히 드러난다. 반 아이 중 한 명인 성진은 영어에 관심이 많다. 어느 날 영어 단어를 묻기 위해 어기에게 말을 걸었고, 둘은 그날을 계기로 급격히 가까워진다. 성진은 어기에게 한국어 단어를 가르쳐주고, 어기는 성진의 영어 숙제를 도와준다. 두 사람은 서로의 다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어간다. 어기의 유쾌한 면은 점차 다른 친구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발표 수업 시간, 어기는 자신의 얼굴에 대해 솔직하게 소개한다. “제가 좀 다르게 생겼죠? 근데 이건 저의 일부일 뿐이에요. 그리고 저를 더 잘 알게 되면, 그것보다 더 많은 걸 보게 될 거예요.”라는 말에 교실은 잠시 조용해진다. 이 장면은 어기의 전학 생활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이후 어기와 말을 트는 아이들이 하나둘 늘어나고, 아이들은 어기의 외모가 아닌 ‘사람 어기’를 보기 시작한다. 그러나 모든 일이 순탄한 건 아니다. 인기 있는 몇몇 아이들은 어기의 존재를 불편하게 여긴다. “왜 쟤는 특별 대우받아?”, “쟤가 불쌍해서 챙겨주는 거야?” 같은 말들이 돌고, 어기는 그 말들이 주는 무게를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 하지만 어기는 이제 예전의 어기가 아니다. 그는 도망치지 않고, 오히려 이 상황을 계기로 반 전체를 위한 활동을 제안한다. “내가 받은 시선을 이야기로 풀어보고 싶어요.” 그렇게 어기와 성진은 ‘시선’이라는 주제로 짧은 연극을 만든다. 연극은 감정적으로 호소하지 않는다. 대신 어기의 일상을 통해, 누군가를 ‘다르게’ 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조용히 질문을 던진다. 그 연극은 학급 발표회에서 큰 반응을 얻고, 교장 선생님은 어기에게 고맙다는 말을 건넨다. 친구들은 그제야 자신들이 무의식적으로 했던 시선과 반응을 되돌아본다. 어떤 학생은 어기에게 쪽지를 건넨다. “처음엔 널 잘 몰랐어. 근데 이제는 네가 진짜 멋진 사람이라는 걸 알아.” 어기는 그 쪽지를 천천히 읽으며 웃는다. 한국에서의 생활은 쉽지 않았지만, 그는 그만큼 더 단단해졌고, 새로운 사람들과의 연결고리를 스스로 만들어냈다. 어기의 부모 역시 많은 고민을 했다. 한국이라는 낯선 환경 속에서 아들이 또다시 외로움을 겪게 될까 봐 걱정했지만, 어기의 얼굴에는 이전보다 더 깊은 눈빛이 깃들어 있었다. 그 눈빛은 고통을 이겨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것, 그리고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고 세상을 향해 시선을 돌릴 수 있는 사람만이 품을 수 있는 것이었다.

만약 어기가 한국에 전학을 왔다면, 그는 분명히 다시 한번 성장했을 것이다. 그를 바라보는 이들이 어기 때문에 바뀌었고, 어기도 그들 덕분에 더 강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한국의 교실 안에서, 모두가 똑같은 교복을 입고 수업을 듣는 그 일상 속에서 어기는 ‘다름’을 껴안는 법을, 그리고 ‘다름’이 특별함으로 바뀌는 과정을 다시 한 번 증명했을 것이다. 어기가 남긴 말이 있다. “친절함이 선택지 중 하나라면, 언제나 친절을 선택하라.” 한국이라는 사회 속에서도 그 문장은 여전히 유효하고, 어기는 그 문장을 직접 살아낸 인물이었다. 단순한 영화 캐릭터를 넘어, 어기는 우리 모두가 닮고 싶은 한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