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봉일: 2015. 05. 14.
- 장르: 드라마, 코미디
- 평점: 7.65
- 등급: 15세 이상 관람
- 러닝타임: 79분
- 감독: 노아 바움백
- 주연: 벤 스틸러, 나오미 왓츠, 아만다 사이프리드, 아담 드라이, 찰스 그로딘
1. <위아영> 속 늙지 않는 법에 대한 현대인 욕망
노아 바움백 감독의 영화 <위아영(While We're Young)>은 단순한 세대 갈등을 다룬 드라마를 넘어, 현대 사회에서 누구나 한 번쯤 마주하게 되는 중요한 화두를 던진다. 바로 '늙지 않는 법'이다. 이 영화는 중년 부부가 20대 커플을 만나면서 겪게 되는 정서적 혼란과 가치관의 충돌, 그리고 내면의 진짜 욕망을 직면하게 되는 과정을 통해, 우리가 왜 늙음을 두려워하고 젊음을 욕망하는지를 아주 섬세하게 파고든다.
현대 사회는 유례없이 '젊음'을 숭배하는 문화 속에 있다. 그 젊음은 단지 나이가 아닌, 감각, 유행, 속도, 유연성 같은 키워드와 맞물려 끊임없이 소비된다. 문제는 나이가 들수록 이 젊음의 문화로부터 소외된다고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조시(벤 스틸러)와 코넬리아(나오미 왓츠)는 그런 불안의 정점에 선 인물들이다. 겉으로는 문화적으로 풍요롭고, 비교적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지만, 내면에서는 나이 듦과 정체된 관계, 삶의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어느 날 이들은 우연히 제이미(아담 드라이버)와 다비(아만다 사이프리드)라는 20대 부부를 만나게 된다. 제이미는 젊고 열정적인 다큐멘터리 감독 지망생이고, 다비는 유기농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아티스트다. 이들의 삶은 마치 '요즘 젊은이'를 대표하는 듯 보이며, 조시 부부에게는 새로운 자극으로 다가온다. 그들은 제이미 부부와 어울리며 옛날 LP판을 듣고, VHS 테이프를 모으고, 자전거를 타고, 거리에서 갑자기 춤을 추는 등의 행동을 따라 해 보며 점차 '젊음의 에너지'에 빠져든다. 하지만 영화는 이러한 젊음의 모방이 실은 현실 도피일 수 있다는 점을 날카롭게 짚는다. 조시가 집요하게 집착하던 다큐멘터리 프로젝트는 수년째 진전이 없고, 제이미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세워 빠르게 성공을 향해 나아간다. 이 모든 과정에서 조시는 묘한 열등감과 박탈감을 느끼고, 자신이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더욱 강하게 반응한다. 이 장면들이 보여주는 건, 단지 나이에 대한 불안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더 이상 주목받지 못하는 세대'가 되어가는 사람들의 깊은 정서다. ‘늙지 않는 법’이라는 키워드는 단지 외적인 미용이나 건강 관리로 환원할 수 없다. 그것은 자기 정체성의 유지, 사회적 활력의 유지, 시대 트렌드에 대한 감각 등 복합적인 감정의 결과다. 조시가 제이미의 삶을 흉내 내는 것은 곧 자기 삶의 불확실성을 감추려는 방어기제다. 그래서 그는 제이미를 통해 잊고 지냈던 창의성과 자극을 다시 느끼지만, 그것이 진짜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도 서서히 깨닫게 된다. 또한, 제이미가 실제로는 자신이 만든 이야기의 줄거리를 조작하고, 현실을 왜곡하는 인물이라는 점이 드러나면서 이 영화의 핵심 메시지는 더욱 또렷해진다. 조시가 갈망했던 젊음이란 결국 조작된 이미지였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젊음은 그런 이미지에 현혹되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을 전달한다. 이 장면은 관객들에게 강한 아이러니와 자각을 안긴다. 진짜 젊은이는 외모가 젊거나 최신 트렌드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 진실과 진정성을 붙잡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코넬리아 역시 처음에는 다비의 순수함과 감성적인 삶에 끌렸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과 자신의 차이를 인식하게 된다. 그녀는 오히려 친구들과 함께 나이 듦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편이 더 건강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제이미 부부와의 관계에서 한 발 물러선다. 이 변화는 많은 중년 관객들에게 깊은 공감을 준다. 나이 듦을 거부하는 대신, 자신의 속도대로 살아가는 용기를 얻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늙지 않는 법’은 곧 ‘스스로를 젊다고 믿는 마음’이라기보다는, 변화하는 삶의 국면을 자연스럽게 수용할 수 있는 태도에 가깝다. 현대 사회는 개인에게 계속해서 젊음을 강요한다. 몸도 젊어야 하고, 생각도 빠르고 유연해야 하며, 유행에도 뒤처지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기준은 어느 시점부터 억압이 되고, 결국 정체성의 혼란을 야기하게 된다. 이 영화는 그 혼란을 정면으로 다룬다. 조시와 코넬리아는 젊음을 흉내 내다가 오히려 더 낯선 자신을 보게 된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입양이라는 선택을 통해 그들은 처음으로 미래를 마주하는 결단을 내린다. 이 선택은 단지 ‘가족을 꾸리는’ 것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것은 자신들의 삶을 인정하고, 이제는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의 리듬으로 살아가겠다는 선언이다. 현대인의 ‘늙지 않으려는 욕망’은 인간 본연의 불안과 연결되어 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소속감을 잃을까 하는 걱정, 더 이상 쓸모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영화 <위아영>은 이런 불안을 숨기거나 억지로 극복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결국에는 그 불안을 통해 인간이 더 성숙해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젊음’이라는 이미지는 오늘날 더 이상 나이로 구분되지 않는다. SNS에서는 20대보다 더 트렌디한 40대가 있고, 반대로 나이와 상관없이 시대에 소외된 청년도 있다. <위아영>은 이런 시대의 변화 속에서 ‘젊음’과 ‘늙음’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현실을 담담하게 조명한다. 결국, 우리는 모두 늙는다. 그리고 그 늙어가는 과정이 결코 비극이 아님을, 영화는 조용히 그리고 단단하게 말해준다. 진짜 중요한 것은 나이를 거스르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그 나이에 걸맞은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일이다. ‘늙지 않는 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늙어가는 법’을 배울 수 있고, 그 배움 속에서 진짜 어른이 되어간다.
이처럼 <위아영>은 단지 중년을 위한 영화가 아니다. 청춘을 보내고 있는 젊은 세대에게도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꿈꾸는 젊음은 정말 당신의 것인가, 아니면 만들어진 환상인가?” 누구나 언젠가는 중년이 된다. 그리고 그 시점이 되었을 때,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되돌아보게 된다. 이 영화는 그런 삶의 진정성을 묻는 거울과 같다.
2. <위아영>의 주인공들이 말하는 관계 리셋법
살다 보면 문득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내가 지금 맺고 있는 인간관계는 진짜 내 모습으로부터 나온 걸까?” 혹은 “이 관계는 계속 유지해도 되는 걸까?”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고, 그 안에서 끊임없이 균형을 맞추려 애쓴다. 그런데 가끔은 그 관계들이 나를 소진시키거나, 아니면 나 스스로도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게 만든다. 영화 <위아영(While We're Young)>은 그런 ‘관계의 진짜 얼굴’과 마주하게 해주는 작품이다. 특히 이 영화는 나이 듦과 함께 오는 ‘관계의 리셋’이라는 개념을 중심에 두고, 인간관계에 대한 재정비를 아주 흥미롭고 섬세하게 풀어낸다.
영화의 중심에는 조시(벤 스틸러)와 코넬리아(나오미 왓츠)라는 중년 부부가 있다. 이들은 오랜 시간 함께 살아왔고,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가 없는 채로 수년을 보내며 둘 사이에는 미묘한 거리감과 정체감이 생겼다. 사랑이 식은 것도 아니고, 갈등이 폭발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더 무섭고 애매한 상태다. 자연스럽게 흘러왔지만, 그 안에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듯한 감각’이 깃들어 있다. 그런 조시와 코넬리아 앞에 제이미(아담 드라이버)와 다비(아만다 사이프리드)라는 젊은 부부가 등장한다. 처음에는 이들이 가져다주는 신선함과 생기, 자유로운 삶의 태도가 조시 부부에게 자극이 된다. 제이미 부부는 꾸미지 않은 듯한 감성, 복고적인 취향, 창조적인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 조시와 코넬리아는 이들과 함께하며 자신들이 잊고 살았던 무언가를 되찾은 기분이 든다. 어쩌면 자신들이 놓쳤던 ‘젊음’이 이들에게 있다고 느낀 것이다. 하지만 이 새로운 관계는 금방부터 조시와 코넬리아의 삶에 균열을 만든다. 제이미와 다비는 처음에 순수해 보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어딘가 부자연스럽고 계산적이라는 인상이 강해진다. 특히 제이미는 조시의 영화 프로젝트에 접근하며 교묘하게 조시를 이용하고, 그의 인간적인 순수함마저 의심하게 만든다. 조시는 어느 순간 제이미가 자신을 단지 ‘중년 남성’으로 소비하고 있었음을 알아차린다. 젊은 감각을 가진 어른, 인맥이 있는 선배, 거절 못 하는 성격의 동업자. 이 모든 역할을 조시는 스스로 만들어냈고, 제이미는 이를 자연스럽게 활용했다. 여기서 중요한 전환이 일어난다. 조시는 처음에는 제이미와의 관계를 통해 젊음을 되찾고 싶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오히려 이 관계를 통해 ‘자기 자신을 얼마나 잃어왔는지’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제이미라는 타인을 통해 유지되던 관계를 ‘스스로의 기준’으로 재정비하게 된다. 그는 관계를 맺는 기준을 ‘필요’가 아닌 ‘진정성’으로 되돌려 놓는다. 그렇게 조시는 관계를 리셋한다. 관계를 리셋한다는 것은 단순히 사람을 끊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자기 내면의 기준을 다시 세우는 작업이다. 조시는 제이미와의 관계를 정리하면서도, 그 경험을 통해 자신의 미숙함과 외로움도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감정들을 숨기지 않고 아내에게 공유하며, 관계를 투명하게 만들고자 한다. 코넬리아 역시 다비와의 관계에서 한동안 감성적인 동질감을 느꼈지만, 어느 순간 ‘나는 이 사람들과 다른 리듬으로 살아가는 사람이구나’라는 자각을 한다. 그 자각은 자연스럽게 물러나는 태도를 만들어낸다. 억지로 맞추지 않고, 맞지 않음을 인정하는 용기. 이게 바로 관계를 리셋하는 첫걸음이다. 이 영화에서 특히 인상적인 대사는 조시가 코넬리아에게 말하는 부분이다. “그들은 우리를 신기하게 본 게 아니라, 그냥 필요해서 접근한 거야. 우리가 새로워서가 아니라, 유용해서.” 이 말은 단순한 배신감 이상의 깨달음을 담고 있다. 타인에게 자신을 맞추고, 그 관계 안에서 의미를 찾으려 했던 조시의 긴 여정이 끝나는 지점이다. 그리고 이제 그는 관계의 기준을 ‘나’로 다시 가져온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조시와 코넬리아가 서로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선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너무 익숙해서 무뎌졌던 상대방의 특성이, 오히려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더 명확해진다. 제이미 부부처럼 자유분방하진 않아도, 조심스럽고 책임감 있는 삶의 태도. 그 속에서 서로에 대한 존중이 다시 자라난다. 아이를 낳지 못해 서로에게 느꼈던 묵은 감정도 서서히 풀어지며, 그들은 새로운 가족의 형태—입양—을 진지하게 고민한다. 관계가 무너진 것이 아니라, 형태를 바꿔가며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관계를 리셋한다는 것은 결국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일에서 시작된다. 내가 원하는 관계는 어떤 모습이며, 어떤 감정을 통해 그것을 유지하고 싶은지를 고민해야만 한다. <위아영>은 그런 의미에서 관계의 본질을 묻는 영화다. 젊음을 갈망했던 이유가 사실은 ‘잊고 지냈던 자기 자신’을 되찾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걸, 영화는 조용히 보여준다. 요즘 우리는 너무 많은 관계를 동시에 유지한다. SNS 친구, 회사 동료, 온라인 커뮤니티 멤버, 부모, 자식, 배우자. 이 모든 관계가 때로는 피곤하게 느껴지고, 나를 지우는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그런 시대일수록 ‘관계를 리셋할 수 있는 감각’이 중요해진다. <위아영>은 그 리셋의 기준이 단절이 아니라, 자각과 정직함이라고 말한다. 끊어내는 용기보다는, 맞지 않음을 인정하고 자연스럽게 놓는 연습. 억지로 붙잡는 관계보다 중요한 건, 스스로를 잃지 않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조시와 코넬리아는 공항에서 입양 대기 아기를 만난다. 그들은 더 이상 제이미 부부처럼 젊은 감성으로 세상을 살아가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들의 삶의 리듬대로, 현실적이고 진정성 있게 새로운 관계를 만들 준비를 한다. 그것은 제이미처럼 보여주는 삶이 아니라, 진짜로 함께 살아내는 삶이다.
우리는 모두 관계 속에서 살고, 때론 관계로부터 상처를 입는다. 그리고 또다시 그 관계 안에서 회복을 경험하기도 한다. <위아영>은 그런 모든 과정을 하나하나 차분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중년의 위기, 젊음에 대한 동경, 진짜 관계의 본질까지. 이 영화는 단지 나이 많은 주인공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오히려 20대, 30대의 우리에게도 깊이 있는 메시지를 전해준다. “당신이 맺고 있는 관계는, 진짜 당신의 감정에서 시작된 것인가요?” 이 질문에 정직하게 대답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관계를 리셋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리셋은 곧 내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된다. 위아영의 주인공들은 그렇게, 관계를 놓고 다시 시작한다. 겉으로는 실패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내면에서는 그 누구보다 성숙하게 성장한 것이다. 관계를 리셋하는 용기, 그것이야말로 이 영화가 우리에게 조용히 전하는 가장 강한 메시지다.
3. 나이의 상대성
‘나이’라는 개념은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우리는 보통 생일을 기준으로 몇 살이라는 나이를 매기고, 그에 따라 자신이 살아야 할 방식이나 해야 할 일을 정한다. 20대엔 도전하고, 30대엔 안정되고, 40대엔 책임지고, 50대엔 정리하고, 이런 식으로. 하지만 정말 나이는 그렇게 선형적으로 작용할까? 영화 <위아영(While We’re Young)>은 이 질문에 대해 매우 흥미로운 방식으로 접근한다. 이 영화는 단순히 중년이 청춘을 동경하는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점점 나이의 상대성, 즉 시간에 대한 인식과 개인적 성장의 속도에 관해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주인공 조시(벤 스틸러)는 40대 중반의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오랜 시간 공들인 프로젝트는 마무리되지 못한 채 지지부진하고, 친구들은 육아와 가정을 이야기하며 ‘인생의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아내 코넬리아(나오미 왓츠) 역시 비슷한 감정을 공유한다. 이들 부부는 어느 날 우연히 젊은 커플인 제이미(아담 드라이버)와 다비(아만다 사이프리드)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들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들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처음에는 그 젊은 커플의 삶이 너무나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제이미는 감각적이고 자유롭다. 그는 옛날 LP판을 수집하고, 타입라이터를 쓰며, 비정형적인 방식으로 영화를 만든다. 그의 아내 다비는 유기농 아이스크림을 직접 만들어 판매하고, 명상과 요가를 즐긴다. 조시와 코넬리아는 그들에게서 젊음의 활기를 느끼고, 자신들도 그 감각을 다시 되살릴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를 품는다. 하지만 영화는 이들의 동경이 점점 깨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신선 함이었던 모든 것이 어느 순간부터는 어색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조시는 제이미를 통해 자신의 젊은 시절을 되돌아보지만, 그 시절에는 지금과는 또 다른 고민과 결핍이 있었다는 사실도 동시에 떠오른다. 즉, 제이미가 사는 방식이 꼭 더 낫거나 정답이라는 보장은 없는 것이다. 이때 우리는 ‘나이’라는 것이 단순히 시간의 흐름만으로 정의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흔히 말하지만, 현실에서는 그 숫자가 무의식적인 기준이 되곤 한다. “내 나이에 이걸 해도 될까?”, “이제는 너무 늦었지 않을까?” 같은 말들. 하지만 <위아영>은 이런 질문에 대해 단호히 선을 긋는다. 영화는 각자의 속도와 시기, 그리고 삶의 방향성 자체가 전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제이미는 젊지만 어딘가 피상적이고, 자기 연출에 능하며, 때때로 이기적인 모습을 보인다. 반면 조시는 나이 들었지만 경험을 통해 사람의 본질을 보는 시야를 갖고 있다. 젊다고 성숙한 것도 아니고, 늙었다고 무기력한 것도 아닌 것이다. 특히 조시가 제이미에게 점점 실망해 가는 과정은 단지 개인적인 배신 때문만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그토록 동경했던 ‘젊음’이 결국 환상이었음을 깨닫는다. 제이미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해 이야기를 조작하고, 사람들을 이용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그의 방식은 신선해 보이지만, 동시에 비윤리적이고 자기중심적이다. 조시는 그런 그를 통해 오히려 자신의 가치관을 더욱 또렷하게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그 인식은 ‘나는 더 이상 젊지 않다’는 자각이 아니라, ‘나는 나만의 속도로 나이 들고 있다’는 긍정적인 수용의 시작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나이 듦이 어떤 모습일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나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있다. 조시와 코넬리아는 제이미 부부와의 만남을 통해 처음에는 동요하고 흔들렸지만, 결국에는 자기 자신을 다시 정의하는 기회를 갖게 된다. 이 과정은 단순한 교훈이나 깨달음으로 마무리되지 않는다. 그들은 실제로 행동에 나선다. 입양을 고민하고, 새로운 가족의 형태를 준비하며, 더 이상 과거를 붙잡지 않고 미래를 향해 열린 결정을 내린다. 이것이야말로 성숙한 나이 듦이다. 우리는 보통 나이를 먹는다는 것을 잃어가는 과정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젊음, 열정, 체력, 가능성 같은 것들이 줄어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위아영>은 이와는 정반대의 메시지를 준다. 나이는 오히려 선택의 기준이 명확해지고, 인간관계의 진실이 보이며,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향을 분명하게 알아차릴 수 있는 시기라는 것이다. 즉, 나이는 어떤 것을 잃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을 더 많이 이해하고 정제하는 시간일 수 있다는 관점이다. 또한 이 영화는 세대 간의 차이와 유사성도 함께 보여준다. 제이미 부부 역시 완전한 ‘젊음’의 상징은 아니다. 그들도 혼란스러워하고,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며, 안정된 기반을 갈망한다. 결국 인간은 나이와 상관없이 불안과 욕망을 공유하는 존재라는 점을 영화는 은근히 말해준다. 그렇기에 조시와 제이미는 결코 완전히 다른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단지 다른 시기에 있는 것일 뿐이다. 영화 후반부에 조시가 보여주는 모습은 많은 관객에게 위로가 된다. 그는 더 이상 제이미처럼 보이려고 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만의 삶의 속도를 인정하고, 거기에 맞는 선택을 하기로 한다. 그 속에는 책임감도 있고, 실망도 있고, 아직 미완성된 다큐멘터리도 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자신의 의미를 찾아간다. 이것이 바로 진짜 ‘나이 듦’이고, 동시에 나이에 얽매이지 않는 진짜 ‘젊음’이다.
결국 <위아영>은 나이에 대해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에 의문을 던진다. “몇 살이면 이래야 한다”는 공식을 깨뜨리고, 각자가 처한 삶의 리듬에 따라 자신만의 방식으로 성장하고 변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나이는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다. 그것은 상대적인 개념이며, 삶을 대하는 태도와 인식에 따라 전혀 다르게 작용한다. 25세에도 인생을 끝난 듯 살아갈 수 있고, 50세에도 인생을 새로 시작할 수 있다. 이 영화는 바로 그 가능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쩌면 <위아영>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매우 단순하다. "나이 때문에 주저하지 말고, 타인의 삶과 비교하지 말며, 나만의 시간표를 믿어라." 이 문장은 중년을 위한 조언 같지만, 사실은 모든 세대를 위한 말이다. 지금 당장 20대든, 40대든, 60대든 관계없다. 결국 우리는 모두 누군가보다 빠르거나 느리게 걷고 있는 것뿐이며, 그것이 결코 잘못된 길이 아님을 영화는 조용히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