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봉일: 2018. 11. 22.
- 장르: 드라마
- 평점: 8.65
-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 러닝타임: 125분
- 감독: 토머스 스타버
- 주연: 프란츠 로고스키, 산드라 휠러, 피터 쿠스
1. <인 디 아일> 마리온의 미소
독일 영화 《인 디 아일(In the Aisles)》은 대사가 많지 않은 작품이다. 인물들은 감정에 대해 길게 설명하지 않고, 화려한 음악이나 극적인 장면으로 감정을 끌어내지도 않는다. 오히려 정적인 화면과 차분한 톤 속에서 등장인물들의 미세한 표정과 움직임으로 그들의 내면을 전한다. 그 가운데 가장 인상 깊은 인물이 바로 ‘마리온’이다. 마리온은 말보다는 미소로 자신의 감정을 전한다. 그리고 그 미소는 단순한 친절이나 사회적 제스처를 넘어서, 그녀가 짊어진 삶의 무게를 은근히 드러내는 방식이기도 하다.
마트라는 공간은 상징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지만 누구 하나 진심으로 누군가를 바라보지 않는 곳. 소비와 노동만이 존재하는 무채색의 공간이다. 그곳에서 마리온은 소위 ‘캔디 코너’에서 일하는 직원으로 등장한다. 그녀는 동료들에게 친근하고, 일터의 활기를 돋우는 역할을 자처한다. 말이 많지는 않지만, 언제나 환하게 웃으며 사람을 대하는 모습은 자연스럽게 주변 사람들에게 안도감을 준다. 그리고 그녀가 크리스티안에게 처음 건넨 그 미소는, 이 영화를 상징하는 감정의 출발점이 된다. 마리온의 미소는 처음엔 그저 친절로 느껴진다. 새로 들어온 수줍은 청년에게 따뜻하게 다가가는, 직장 내 선배의 다정한 태도처럼 보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미소에는 ‘조심스러움’이 묻어난다. 자신을 선뜻 열지 않으려는 듯한 경계, 혹은 누군가가 너무 가까워질까 봐 한 발짝 물러서는 감정이 그 안에 숨어 있다. 이는 크리스티안이 그녀에게 조금씩 마음을 여는 과정과 교차되며, 관객에게 마리온이 가진 감정의 무게를 암시하기 시작한다. 크리스티안이 마리온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갈 때마다, 마리온은 웃는다. 하지만 그 웃음은 단순히 반가움이나 호감이 아니다. 때로는 애써 감정을 숨기려는 표정이고, 때로는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막이다. 마리온의 삶엔 우리가 처음부터 알지 못했던 서사가 있다. 그녀는 결혼한 여성이며, 가정에서 폭력적인 남편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중반부에 드러난다. 하지만 그녀는 그 사실을 단 한 마디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갑작스럽게 사라졌고, 한동안 출근하지 않았고, 다시 돌아와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미소 짓는다. 그것이 그녀가 상처를 감추는 방식이었다. 이 미소는 사실 일종의 ‘생존 전략’에 가깝다. 마리온은 외부 세계에 자신의 고통을 쉽게 드러낼 수 없는 상황에 있다.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오히려 자신을 더 힘들게 만들 수 있다는 걸 알고 있기에, 그녀는 늘 웃는 얼굴로 거리를 유지한다. 그리고 그 미소는 직장에서의 자신의 존재를 안정적으로 지켜주는 유일한 수단이기도 하다. 누군가와 갈등을 만들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키지 않으며, 동시에 주변 사람들과 적당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수단. 그것이 마리온의 미소가 가진 의미다. 크리스티안과의 관계 속에서도 마리온은 솔직하지 못하다. 분명 서로를 향한 감정이 있지만, 마리온은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고 그에게 기대는 선택을 하지 않는다. 그 대신 미소 짓고, 침묵하고, 돌연히 자리를 비운다. 마치 자신에게 ‘행복할 권리’가 없다고 믿는 사람처럼, 그녀는 스스로 감정을 억제하며 뒤로 물러선다. 이는 단지 가정폭력의 피해자라는 설정을 넘어서,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수많은 여성들의 정서적 현실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마리온은 영화 내내 감정의 극단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녀는 분노하지 않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도 없다. 감정의 폭발 대신, 침묵과 미소로 자신의 감정을 흘려보낸다. 그리고 그 미소는 점점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아왔기에 이렇게 웃고 있는 걸까?’, ‘저 웃음 뒤에는 어떤 고통이 있을까?’ 그렇게 마리온의 미소는 하나의 상징이 된다. 그것은 단지 여성성의 표현이 아니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무기’이며, 동시에 세상과 타협하는 방식이다. 《In the Aisles》는 아주 조용한 영화다. 감정이 겉으로 드러나기보다는, 인물의 뒷모습과 눈빛, 침묵과 미소 같은 사소한 표현으로 전달된다. 마리온은 이 영화의 ‘정서적 중심’이다. 그녀의 미소는 크리스티안에게 위로가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깊은 고독의 메시지를 전하는 이중적인 장치로 작용한다. 크리스티안이 그녀에게 빠져드는 것은 단순한 호감 때문이 아니라, 말하지 않고도 서로의 아픔을 알아보는 감정의 교류 때문이다. 그리고 마리온은 끝까지 자신을 말로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마지막까지 그 특유의 미소로 스스로를 감싸 안는다.
마리온의 미소는 이 영화를 관통하는 가장 인상적인 ‘대사’다. 그것은 고통을 견뎌온 시간의 흔적이고, 누군가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상처의 흔적이며, 동시에 누군가에게 위로를 건네고 싶은 조용한 다정함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미소를 통해, 감정이라는 것은 반드시 말이나 눈물로 표현되어야만 진실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말하지 않아도 전달되는 감정, 그리고 말하지 않기에 더 강렬하게 다가오는 서사. 마리온은 그 미소 하나로 자신의 이야기를 완성한다. 《In the Aisles》는 말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는 영화다. 그리고 마리온은 그 물음에 조용히 답한다. “나는 말하지 않지만, 느끼고 있다.” 그녀의 미소는 그렇게 시작되었고, 그렇게 기억된다.
2. 창고형 마트
영화 《In the Aisles》는 겉보기엔 조용하고 단조로운 영화다. 독일 동부의 한 대형 마트,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 말수 적은 주인공, 반복되는 노동, 자잘한 인간관계. 언뜻 보면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설정 속에 이 영화는 오히려 ‘일상’을 통해 가장 강력한 메시지를 던진다. 그 중심에 바로 ‘공간’이 있다. 이 영화에서 마트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하나의 상징적 구조물이다. 그리고 그 마트, 특히 창고형 마트는 현대 사회가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를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무대가 된다.
먼저, 창고형 마트의 특징을 떠올려보자. 이곳은 사람과 물건이 하루에도 수없이 오가지만, 정서적 소통은 거의 없는 공간이다. 넓은 통로, 높은 천장, 끝없이 쌓인 박스들, 메마른 조명 아래 규칙적으로 돌아가는 지게차와 노동자의 움직임. 효율과 기능만을 위해 설계된 구조물 안에서 인간은 철저히 역할에 따라 움직인다. 이런 환경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일하고 살아가는 방식과 매우 닮아 있다. 영화 속 주인공 크리스티안은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는 조용히 지게차를 타고, 상품을 정리하고, 점심시간에도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 마트는 그에게 어떤 의미일까? 가족도 친구도 없는 삶에서 이 공간은 일종의 새로운 사회적 질서다. 개인의 내면보다는 역할 수행이 우선되는 사회. 감정보다 절차가 중시되고, 관계보다는 시스템이 중요시되는 현실. 마트는 그 상징적 축소판이다. 이 영화가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 비인격적인 공간에서 인간은 어떻게 감정을 나누고, 존재감을 확보하며, 살아남는가에 대한 문제다. 현대 사회는 점점 더 효율적이고, 자동화되고, 감정이 개입할 틈이 없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마치 마트에서 모든 것이 계획된 위치에 있어야 하고, 오류 없이 처리되어야 하는 것처럼. 영화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 잊히고 있는 인간성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크리스티안이 처음 마트에 들어왔을 때, 그는 교육을 받고, 규칙을 배우고, ‘사수’ 브루노에게 지게차 운전을 익힌다. 이 과정은 단순히 직업 기술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는 인간의 서사를 담고 있다. 하지만 이 ‘사회화’ 과정은 따뜻하지 않다. 어딘가 건조하고, 메마르다. 동료들과 웃는 순간도 있지만, 그 웃음 뒤에는 늘 피곤과 무력감이 깔려 있다. 마트라는 공간은 인간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물류를 위한 공간이다. 그 안에 인간이 억지로 자신을 끼워 맞추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는 현실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많은 사람들이 대형 건물, 사무실, 창고, 병원, 물류센터 등 기능 중심의 공간에서 하루 대부분을 보낸다. 이런 곳은 인간적인 감정보다 효율적인 시스템을 위해 설계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사람들은 점점 감정 표현을 줄이고, 개인적인 삶을 포기하고, 시스템에 적응한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직장 동료와 감정을 공유하기보다, ‘갈등 없이 하루를 넘기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바로 그 흐름이, 마트의 통로를 걷는 크리스티안의 무표정한 얼굴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마트에는 다양한 물건이 있다. 식품, 음료, 세제, 생필품 등. 소비를 위한 모든 것이 진열되어 있다. 하지만 정작 그 물건들을 관리하는 사람들의 삶은 소비되지 않는다. 그들은 통계에 포함되지만, 개개인의 이야기는 드러나지 않는다. 영화는 그 묵묵한 사람들에게 시선을 준다. 이들이 얼마나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이 영화가 가진 진짜 가치다. 보이지 않는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 브루노는 오래된 사수로, 후배들을 잘 챙기고 유쾌한 사람이지만 내면엔 고통이 있다. 마리온은 밝은 미소로 주변을 감싸지만, 그녀의 가정은 고요하지 않다. 크리스티안은 범죄 전과가 있는 인물로, 사회로부터 ‘환영받지 못한’ 이력 속에서 다시 삶을 시작하고자 한다. 이들은 모두 사회의 중심에서 약간은 벗어난 사람들이다. 그리고 마트는 그런 이들을 조용히 받아들인다. 그곳은 따뜻하진 않지만, 최소한의 소속감을 준다. 현대 사회의 수많은 조직과 직장이 그렇다. 인간적인 유대는 없을지라도, ‘어딘가에 속해 있다’는 감각 하나만으로 사람들은 살아간다. 영화는 공간에 대한 시선을 바꾸게 만든다. 그냥 물건을 쌓아놓는 창고처럼 보이던 마트가, 사실은 감정이 억눌리고 조심스럽게 흘러가는 삶의 무대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통로(aisle)는 단순히 진열대를 구분 짓는 길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이기도 하다. 누군가가 말을 걸기까지 망설이는 거리, 감정을 표현하기 전의 거리, 마음을 건네려다 멈춰서는 거리.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의 원제 “In the Aisles”는 단지 장소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감정의 거리, 삶과 삶 사이의 틈을 의미하는 말이다. 우리는 점점 더 창고형 사회에 살고 있다. 더 많은 시스템, 더 많은 효율, 더 적은 대화, 더 짧은 감정, 더 깊은 침묵. 그리고 그 속에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조용히 사라지고 있다. 《In the Aisles》는 그 조용한 사람들을 조용히 보여준다. 큰 사건도 없고, 드라마틱한 전개도 없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가장 현실적인 감정과 마주하게 된다.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고독, 웃음 뒤에 감춰진 피로, 그리고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는 그 짧은 순간의 위로. 그것이 이 영화가 보여주는 마트의 진짜 얼굴이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마트라는 공간이 다시는 예전처럼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일상에서 얼마나 많은 감정을 억누르며 살고 있는가. 말 없는 공간에서, 반복되는 업무 속에서, 표정 없는 사람들과 함께 하며, 얼마나 많은 감정을 삼키고 있는가. 이 영화는 그러한 현실을 말하지 않고도 느끼게 해 준다. 그것이 이 영화의 힘이며, 창고형 마트가 은유하는 오늘의 사회 구조다.
3. <인 디 아일> 속 지게차
독일 영화 《In the Aisles》는 말보다 정적이고, 사건보다 침묵이 많은 영화다.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지 않고, 오히려 시선, 몸짓, 움직임으로 마음을 전달한다. 그런 영화의 구조 속에서 눈에 띄는 장치가 하나 있다. 바로 지게차다. 영화의 배경인 창고형 마트 안에서 지게차는 단순히 상품을 옮기는 노동 도구로 등장하지만,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그것은 단지 기계가 아닌, 인물들의 삶을 반영하고 연결하는 철학적 상징물처럼 다가온다.
지게차는 영화에서 크리스티안이 새롭게 배우는 도구다. 처음 입사한 그에게 브루노는 지게차 조작법을 알려준다. 그리고 영화는 이 장면을 굉장히 섬세하게 다룬다. 기계를 익히는 과정이 단순한 기술 습득이 아니라, 삶에 적응하고 사회에 소속되는 과정처럼 그려진다. 지게차는 크리스티안이 세상과 다시 연결되는 수단이자, 그가 ‘쓸모 있는 존재’가 되어가는 전환점이 된다. 사회로부터 단절된 이력과 조용한 성격을 가진 그에게 지게차는 말없이도 뭔가를 해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그렇기에 지게차는 크리스티안에게 단순한 기계가 아니다. 그것은 그의 언어이며, 존재의 방식이다. 조심스럽게 핸들을 돌리고, 물건을 들어 올리고, 통로를 조용히 지나가는 모습은 마치 누군가와의 대화를 대신하는 행위처럼 보인다. 그는 말은 없지만 움직인다. 그의 움직임은 곧 그의 감정이고, 그의 의지다. 영화가 이 지게차를 그렇게 차분하게,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움직임이 감정을 대변한다는 점을 말없이 보여주기 위함이다. 또한 지게차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정적 거리를 좁혀주는 매개체로 작용한다. 크리스티안은 말이 없지만, 그의 지게차 운전은 점점 능숙해지고, 주변 동료들에게 인정을 받는다. 브루노는 그런 그를 바라보며 조용히 미소 짓고, 마리온은 그가 지게차를 타고 일하는 모습을 관심 있게 바라본다. 즉, 이 도구는 크리스티안이 혼자였던 세계에서 타인과 연결되는 다리가 된다. 도구가 사람을 외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도구를 통해 사람이 관계를 시작하게 되는 장면은 이 영화의 핵심적인 감정선 중 하나다. 하지만 동시에 지게차는 반복과 시스템의 상징이기도 하다. 물건을 들어 옮기고, 다시 제자리에 두는 작업. 매일같이 똑같은 동선, 같은 조작, 같은 박스, 같은 위치. 영화는 이러한 반복적인 장면을 통해 현대인의 노동 환경을 비춘다. 단순한 반복이 삶의 전부가 되어가는 현실, 개인의 개성과 감정이 억눌리는 노동의 일상성. 이 모든 것은 지게차의 움직임을 통해 조용히 묘사된다. 이 점에서 지게차는 이 영화가 은근히 드러내고 있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작동 방식 그 자체이기도 하다. 크리스티안은 점점 지게차에 익숙해지고, 마치 그것이 몸의 일부처럼 다룬다. 그 모습은 한편으로는 능숙함의 표현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기계와 하나가 되어가는 인간을 상징하기도 한다. 인간적인 감정보다 효율적인 조작이 우선되는 사회. 그런 구조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기계에 익숙해져야 하고, 또 얼마나 스스로를 기계처럼 만들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지. 영화는 그 질문을 아주 조용히 던진다. 지게차는 그 모든 의미를 안고 통로를 지나간다. 브루노 역시 지게차를 다루지만, 그의 삶은 오히려 더 무거운 감정을 안고 있다. 그는 직장에서의 오랜 경력과 사람들과의 유쾌한 관계 뒤에, 깊은 우울과 피로감을 감추고 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스스로 세상을 떠난다. 이후, 그의 부재 속에서 크리스티안은 지게차에 앉아 멍하니 있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은 도구와 인간 사이의 관계가 단지 ‘일’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 기계 안에는 브루노와 나눈 시간, 그의 흔적, 그의 무게감이 담겨 있다. 지게차는 기억의 그릇이 된다. 이처럼 《In the Aisles》는 지게차라는 아주 평범한 기계를 통해 놀라울 만큼 많은 감정과 철학적 의미를 담아낸다. 그것은 삶의 무게를 옮기는 장비이자, 존재를 증명하는 도구이고, 누군가의 감정을 전하는 매개체이며, 동시에 기억의 저장소다. 이런 식의 묘사는 영화가 가진 깊이와 정서적 섬세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도구들, 예컨대 컴퓨터, 포스기, 엘리베이터, 스마트폰, 차량 등은 모두 지게차와 같은 기능을 한다. 그것들은 단순한 기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의 감정을 실어 나르고, 기억을 남기며, 사람과 연결되게 한다. 문제는 우리가 그 의미를 얼마나 인식하느냐에 달려 있다. 무감각한 반복이 되면 그것은 단지 기계일 뿐이다. 하지만 크리스티안처럼, 그 기계를 통해 삶을 회복하고, 사람과 연결되고,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면, 도구는 더 이상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삶의 일부가 된다.
《In the Aisles》는 큰 사건 없이 조용히 흘러가지만, 영화 내내 지게차가 등장할 때마다 관객은 어느새 그 안에 감정을 담아 따라가게 된다. 그것이 이 영화의 마법이자 힘이다. 가장 평범한 도구가 가장 인간적인 메시지를 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섬세한 연출. 지게차는 단지 기계였던가? 그렇지 않다. 그것은 관계의 도구였고, 존재의 언어였으며, 영화 속 침묵을 대신한 또 다른 주인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