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코다>는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가족을 세상과 연결하는 루비가 본인의 노래에 대한 숨은 재능을 발견하면서 겪게 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본 글에서는 영화 속에서 소리를 완전히 제거하여 소리가 사리지는 순간의 연출기법을 살펴보고, 청각장애인이 수어를 사용하여 손으로 전하는 감정표현을 어떻게 나타내는지 탐구해 본다. 또한, 청작장애인 배우를 직접 캐스팅하여 기존 할리우드 방식에서 벗어난 혁신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아본다.
1. 소리가 사라지는 순간
영화 <코다>는 단순한 성장 드라마가 아니라, 소리와 침묵이 감정을 전달하는 강력한 도구로 작용하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농인 가족과 비장애인 딸의 이야기 속에서 '소리'를 단순한 청각적 경험이 아니라 정체성과 소통, 단절을 의미하는 중요한 요소로 활용한다. 특히, 특정 장면에서 소리를 완전히 제거하는 연출 기법은 관객들에게 새로운 감각적 경험을 제공하며, 영화의 메시지를 더욱 강렬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코다에서 침묵이 활용된 방식과 그 서사적 의미는 무엇일까? 코다에서 가장 강렬한 순간 중 하나는 루비(에밀리아 존스)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감독은 갑자기 모든 배경음을 제거하고 관객을 루비의 부모의 입장으로 이끌어 간다. 관객은 갑자기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으며, 루비가 열창하는 모습을 무음 상태로 지켜보게 된다. 이는 단순한 연출 기법이 아니라, 청각장애인 부모가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을 직접 체험하게 만드는 장면이다. 보통 영화에서 감정을 극대화하기 위해 배경음악과 효과음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하지만 코다는 정반대의 접근 방식을 선택한다. 소리를 제거함으로써, 오히려 감정의 집중도를 높이고 관객이 캐릭터의 입장을 더 깊이 공감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이 순간 침묵은 단순한 ‘소리 없음’이 아니라, 부모가 딸의 재능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단절의 감정을 극대화하는 도구가 된다. 또 다른 강렬한 장면은 루비의 아버지 프랭크(트로이 코처)가 그녀의 목소리를 직접 ‘느끼는’ 순간이다. 프랭크는 루비가 노래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녀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없기 때문에 손을 그녀의 목에 가져다 대고 진동을 느낀다. 이 장면에서 대사는 거의 없지만, 침묵 속에서도 전달되는 감정의 깊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하다. 프랭크가 목소리의 진동을 느끼는 순간은 단순히 노래를 ‘듣는’ 것이 아니라, 딸과 연결되는 새로운 방식을 찾는 순간이다. 이는 영화가 청각적인 경험을 단순한 청취가 아니라, 신체적 감각으로 확장하여 보여주는 방식 중 하나다. 이처럼 코다는 침묵을 활용하여 기존의 소리 중심적인 감정 표현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감정을 전달한다. <코다>의 연출에서 흥미로운 점은 단순히 침묵을 삽입하는 것이 아니라, 침묵과 소리를 대비시킴으로써 더욱 극적인 효과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루비가 가족과 함께 있을 때는 대체로 조용한 환경이 유지되지만, 그녀가 음악을 부르는 순간에는 강렬한 소리가 가득 차 있다. 이 대조는 루비가 가족과 세상 사이에서 겪는 정체성의 갈등을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루비가 떠나는 순간, 그녀는 차 안에서 마지막으로 수어로 가족에게 작별 인사를 한 후 조용히 노래를 부르며 떠난다. 이 장면에서 소리는 점점 잦아들고, 침묵이 자리 잡는다. 이는 단순한 이별이 아니라, 그녀가 가족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고 떠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대부분의 음악 영화에서는 클라이맥스를 장대한 오케스트라 연주나 강렬한 음악으로 장식한다. 하지만 코다는 오히려 정반대의 방식을 택한다. 음악과 침묵을 대비시킴으로써 감정적인 파동을 만들어내며, 관객이 소리와 무음의 리듬을 더욱 섬세하게 인지하도록 유도한다. 이러한 연출 기법은 단순한 감성적 효과를 넘어, 영화 전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연결된다. 즉, 우리는 보통 음악이 ‘들리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코다는 음악이 반드시 들려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경험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코다는 단순한 음악 영화가 아니라, 침묵과 소리가 조화를 이루는 방식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혁신적인 작품이다. 이 영화가 감동적인 이유는 강렬한 음악 때문만이 아니라, 때때로 음악이 멈추는 순간이 더욱 깊은 울림을 주기 때문이다.
2. 손으로 전하는 감정
청각장애인을 위한 시각적 언어인 ASL(미국식 수어, American Sign Language)은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을 넘어 문학적, 예술적 표현 방식으로도 활용된다. 특히 영화 속에서 ASL은 감정을 극대화하고, 캐릭터의 내면을 깊이 전달하는 중요한 도구로 쓰인다. 수어의 시각적 특성을 살려 서사 구조를 보완하거나, 비장애인 관객에게 새로운 감각적 경험을 제공하기도 한다. ASL은 단순한 단어의 조합이 아니라 공간을 활용한 시각적 언어이므로, 영화에서 문학적인 요소를 극대화하는 데 적합하다. 수어 시(Poetry in ASL)에서는 손의 움직임뿐만 아니라 얼굴 표정과 신체 움직임이 리듬을 형성하며, 이를 통해 감정을 더욱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영화 사운드 오브 메탈 (2019)에서는 주인공 루벤이 청력을 상실한 후 점차 ASL을 배우면서, 그의 정서적 변화가 수어를 통해 묘사된다. 초기에는 단순한 손동작만을 사용하다가, 점차 얼굴 표정과 몸짓까지 활용하는 모습을 통해 그의 내면 변화가 섬세하게 전달된다. 이러한 방식은 문학에서 '서사의 흐름'을 구성하는 기법과 유사하다. 또한 콰이어트 플레이스 (2018)에서는 가족 간의 대화가 수어로 이루어지는데, 이는 단순한 의사소통을 넘어 영화 전체의 긴장감을 조성하는 핵심 요소로 작용한다. 수어 대화가 진행될 때의 침묵은 일반적인 대화 장면보다 더 강한 서스펜스를 만들어내며, 관객으로 하여금 감정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한다. 수어는 단순한 대사 전달이 아니라 몸짓과 표정을 활용한 예술적 표현 방식이기도 하다. 특히 연극과 무용에서는 ASL이 하나의 퍼포먼스로 사용되며, 영화에서도 이러한 시각적 요소가 강조된다. 영화 코다 (2021)에서는 농인 가족과 청인 딸 사이의 소통 방식이 주요 서사로 등장한다. 이 영화에서 ASL은 단순한 대화가 아니라 가족 간의 사랑과 갈등을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딸 루비가 아버지에게 자신의 노래를 '보여주기' 위해 아버지의 손을 자신의 목에 올려놓는 장면은, 청각장애인이 소리를 느끼는 방식을 아름답게 표현한 장면으로 평가받는다. 또한 더 트라이브 (2014)와 같은 영화에서는 ASL을 활용한 무대 연출이 돋보인다. 대사 없이 오로지 수어와 몸짓으로만 진행되는 이 영화는, 수어가 단순한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아니라 강력한 예술적 표현 방식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수어는 언어적 기능을 넘어 감정을 전달하는 도구로 활용된다. 일반적인 대사는 음성, 억양, 속도를 통해 감정을 전달하지만, 수어는 손동작과 얼굴 표정, 신체 움직임의 조합으로 더욱 강렬한 감정을 표현한다. 예를 들어, 영화 더 쉐이프 오브 워터 (2017)에서 주인공 엘라이자는 말을 할 수 없지만 ASL을 사용하여 감정을 전달한다. 그녀의 손짓과 표정은 대사보다 더 깊은 감정을 담고 있으며, 상대방과의 교감을 더욱 밀도 있게 만든다. 이러한 방식은 관객이 인물의 감정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게 하며, 영화적 몰입도를 높이는 효과를 준다. 또한 ASL은 영화에서 '침묵의 의미'를 강조하는 장치로도 쓰인다. 콰이어트 플레이스에서는 가족이 생존을 위해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수어가 유일한 소통 방식이 된다. 이는 영화 전체의 긴장감을 배가시키고, 청각을 잃은 상황에서 소통하는 방법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수어가 영화에서 중요한 예술적 도구로 활용됨으로써, 관객들은 비장애인의 시각이 아닌 농인의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기회를 얻게 된다. 앞으로도 수어를 활용한 영화들이 더욱 다양하게 등장하며, 그 문학적·예술적 가치를 확장해 나가길 기대해 본다.
3. 캐스팅 혁신
2021년 개봉한 영화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s)는 청각장애인 부모를 둔 비장애인 딸의 성장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이 영화가 주목받은 이유 중 하나는 단순한 감동적인 서사가 아니라, 영화계에서 보기 드문 혁신적인 캐스팅 방식 때문이다. 과거에는 농인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 비농인 배우가 수어를 배우고 연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코다는 주요 청각장애인 캐릭터를 실제 농인(청각장애인) 배우들에게 맡김으로써, 보다 자연스럽고 현실적인 연기를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영화 속에서 루비의 부모 프랭크와 재키, 그리고 오빠 레오를 연기한 배우들은 모두 실제 농인 배우들이다. 프랭크 역을 맡은 트로이 코처(Troy Kotsur)는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며 역사적인 순간을 만들었으며, 이는 농인 배우가 주류 영화계에서 인정받은 중요한 사례로 기록되었다. 이는 단순한 캐스팅 결정이 아니라, 할리우드가 그동안 외면해 왔던 농인 커뮤니티의 현실을 조명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그들 스스로 표현할 수 있도록 한 중요한 변화였다. 할리우드에서는 오랫동안 장애인 캐릭터를 비장애인 배우가 연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인 사례로 1986년 영화 어린 애너벨에서 농인 캐릭터를 청인(비장애인) 배우가 연기한 것이나, 1996년 Mr. Holland’s Opus에서 농인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들이 대부분 비장애인이었던 점을 들 수 있다. 이런 캐스팅 방식은 ‘장애를 연기하는 것이 배우의 연기력 시험대’라는 인식을 조장하는 한편, 실제 장애인 배우들에게 돌아가야 할 기회를 박탈하는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코다는 이러한 고정관념을 깨고, 농인 배우들이 농인 캐릭터를 직접 연기함으로써 훨씬 더 현실적이고 깊이 있는 감정을 전달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또한, 영화 촬영 과정에서도 ASL(미국식 수어)을 중심으로 한 제작 환경이 조성되었다. 감독과 스태프들이 수어를 배우고, 현장에서는 통역사가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등 농인 배우들이 불편함 없이 연기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다. 이는 단순히 ‘포용적인 캐스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농인 배우들이 온전히 자신의 연기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한 혁신적인 시도였다. 코다는 캐스팅의 다양성이 단순히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요소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 영화는 아카데미 작품상, 각색상, 남우조연상 등 주요 부문에서 수상하며 대중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인정받았다. 이는 단순한 예외적인 사례가 아니라, 앞으로 영화계 전반에서 포용적인 캐스팅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는 신호탄이었다.
특히, 코다의 성공 이후 할리우드에서는 장애인 배우를 적극적으로 기용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2022년 HBO 드라마 The Last of Us에서는 농인 캐릭터를 실제 농인 배우인 케빈 우드라드(Kevin Woodard)가 연기하며, 비장애인 배우가 농인 캐릭터를 연기하는 방식에서 벗어났다. 이는 코다가 촉발한 변화가 단순한 일회성이 아니라, 장기적인 흐름이 될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한다. 코다는 영화계가 다양성과 포용성을 실천하는 방식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했다. 농인 배우들이 직접 농인 캐릭터를 연기함으로써 더 진정성 있는 감정 전달이 가능해졌고, 이는 영화의 몰입도를 더욱 높이는 요소가 되었다. 또한,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농인 커뮤니티에 국한되지 않고, 앞으로 더 많은 장애인 배우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결론
영화 <코다>에서 침묵은 감정을 전달하는 강력한 도구로 작용한다. 소리가 사라지는 순간, 우리는 오히려 캐릭터들의 감정을 더 깊이 느낄 수 있으며, 그들이 처한 현실을 보다 직접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이는 영화가 '청각장애'라는 주제를 다루는 것을 넘어 소리와 침묵이 공존하는 새로운 서사를 창조했음을 의미한다. 영화 속에서 ASL은 문학적, 예술적 요소를 결합한 강력한 표현 방식으로 작용한다. 서사의 흐름을 강화하고, 감정을 극대화하며, 시각적 스토리텔링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이 영화에서는 실제로 농인(청각장애인) 배우를 캐스팅하여 비장애인 배우가 농인 캐릭터를 연기하는 방식에서 벗어났다. 할리우드에서 포용적 캐스팅이 일시적인 트렌드가 아니라 지속적인 변화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그리고 코다가 불러온 혁신이 얼마나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