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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콜 오브 와일드> 야성이 주는 자유, 인간 우월주의, 개와 인간

by borybory-click 2025. 6. 17.

영화 &lt;콜 오브 와일드&gt; 관련 사진

  • 개봉일: 2020. 05. 14.
  • 장르: 모험, 드라마, 가족
  • 평점: 8.70
  •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 러닝타임: 100분
  • 감독: 크리스 샌더스
  • 주연: 해리슨 포드

 

1. <콜 오브 와일드>의 야성이 주는 자유

2020년 개봉한 영화 <콜 오브 와일드(The Call of the Wild)>는 단순한 모험 영화 이상의 깊은 울림을 담고 있다. 잭 런던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한 마리 개가 야생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통해 인간과 동물 모두가 지닌 본능적 욕망, 자유에 대한 갈망, 그리고 현대 사회 속 억눌린 내면을 조명한다. 특히 영화는 야생이라는 공간을 단순히 험난하고 거친 자연으로 묘사하는 것을 넘어, 진정한 자유의 심리학적 은유로 풀어낸다.

영화의 주인공인 개 ‘벅’은 원래 부유한 가정에서 안락한 삶을 누리던 반려견이다. 그러나 우연한 사건으로 인해 북미의 혹독한 황야, 골드러시 시대의 유콘 강 지역으로 팔려가면서 그의 삶은 완전히 뒤바뀐다. 벅이 겪는 환경의 변화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의 심리 변화, 특히 억압된 욕망과 본능이 야생을 통해 해방되는 구조를 그대로 보여준다. 처음 벅은 야생에 적응하지 못한다. 매서운 추위, 거친 노동, 강압적인 인간들, 위험한 동물들 속에서 그는 본능적으로 위축되고, 기존의 사회적 질서와 문명의 울타리를 그리워한다. 이는 현대인이 겪는 심리적 혼란과도 닮아 있다. 우리는 익숙한 환경, 사회적 규범, 안정적인 일상에 안주하지만, 그 이면에는 통제 불가능한 본능과 자유를 향한 막연한 갈망이 자리 잡고 있다. 영화 속 야생은 바로 그런 심리를 상징적으로 담아낸다. 벅이 점차 야생의 법칙을 깨닫고, 그 속에 적응하면서 그는 억눌렸던 자신을 발견한다. 이는 심리학적으로도 매우 흥미로운 구조다. 인간은 사회화 과정 속에서 본능을 억제하고 규율에 순응한다. 그러나 억눌린 본능과 욕구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극한 상황, 혹은 일상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환경에서 잠재되어 있던 본능은 다시 깨어난다. 벅의 변화는 바로 그 심리적 각성의 여정을 은유한다. 그는 점차 야생 속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고, 더 이상 인간의 통제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영화가 던지는 중요한 메시지는 ‘야생이 곧 위험’이라는 이분법적 인식에 의문을 제기하는 데 있다. 야생은 험난하지만, 동시에 억눌린 욕구와 자유를 회복하는 공간이다. 특히 영화 속에서 벅과 인간 ‘존 손튼’(해리슨 포드 분)의 관계는 매우 상징적이다. 손튼은 벅에게 물리적인 보호를 제공하지만, 벅의 야생 본능을 억누르려 하지 않는다. 그는 벅이 점차 야성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오히려 그 자유를 존중한다. 이는 진정한 자유가 타인의 억압 없이 자신의 욕구를 발견하고 실현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벅은 완전히 야생으로 돌아간다. 그는 더 이상 인간의 울타리 안에 머물지 않고, 자연의 법칙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는다. 이 부분은 인간 심리의 깊은 본질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현대 문명 속 우리는 수많은 규칙과 규범 속에 살아간다. 회사, 학교, 사회적 관계 등 모든 구조는 안정과 질서를 주지만, 동시에 통제와 억압을 내포한다. 이 구조에 길들여질수록 본능과 자유는 점차 흐려진다. 그런 점에서 <콜 오브 와일드>의 야생은 단순한 공간을 넘어 인간 심리의 무의식적 영역을 상징한다. 심리학자인 칼 융은 인간 내면에는 ‘그림자’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 그림자는 우리가 억압한 욕망, 본능, 두려움, 원시적 충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화 속 야생은 벅이 자신의 그림자를 마주하고, 그것을 억누르지 않고 통합해 가는 심리적 여정을 시각적으로 그려낸다. 야생을 통한 자유의 심리는 단순히 무질서한 해방이 아니다. 벅이 야생에 완전히 적응하고, 자신만의 울음소리를 내며 새로운 무리를 이끌어가는 모습은 통합된 자아, 즉 본능과 이성이 균형을 이루는 성숙한 자유를 의미한다. 이는 인간도 마찬가지다. 억압된 본능을 무조건 배제하는 것이 아닌, 그 본능을 인정하고 삶 속에서 건강하게 발현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로 가는 길임을 영화는 강조한다. 또한 영화는 자연 속의 고독을 통해 심리적 자유를 확장한다. 벅은 야생으로 돌아가면서 점차 홀로서기를 배운다. 이는 외부 환경에 의존하지 않고,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스스로를 인정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타인의 평가, 사회적 지위, 물질적 성공에 얽매인다. 하지만 진정한 심리적 자유는 외부의 인정이 아닌, 내면의 자각에서 비롯된다. 결론적으로 <콜 오브 와일드> 속 야생은 단순히 모험과 생존의 배경이 아니다. 그것은 현대인이 잊고 지내는 자유의 본질, 억눌린 본능, 내면의 욕구, 심리적 자각을 촉진하는 상징적 공간이다. 벅이 야생을 통해 자신을 찾듯, 인간도 문명의 틀 안에서만 자신을 규정하지 말고, 때때로 본능과 자유를 향한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깊은 통찰을 영화는 담담하게 전한다.

이 영화는 단순한 개의 성장기나 자연 찬가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마음 한구석에 지니고 있는 자유를 향한 갈망, 그리고 야생처럼 통제되지 않는 심리적 공간에 대한 탐험의 기록이다. <콜 오브 와일드>를 통해 우리는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지, 야생이 주는 심리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깊이 돌아볼 수 있다.

 

2. 인간 우월주의 

2020년 개봉한 영화 <콜 오브 와일드(The Call of the Wild)>는 표면적으로는 한 마리 개 ‘벅’의 성장과 모험을 담은 가족 영화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단순한 동물 모험극을 넘어, 우리가 오랫동안 당연시해 온 인간 중심적 사고방식, 즉 인간 우월주의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현대 사회는 인간을 자연의 정점에 놓고, 모든 생명과 자원을 인간의 필요에 따라 소비하고 이용하는 구조 위에 세워져 있다. 동물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고, 자연은 인간의 편의를 위해 개발해야 하며, 생명의 가치도 인간의 시각에 따라 서열화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콜 오브 와일드>는 바로 이 고정관념을 섬세하게 해체한다. 영화의 주인공 ‘벅’은 처음부터 인간의 소유물로 그려진다. 그는 부유한 가정의 반려견으로 살다가 납치당해 북미 황야로 팔려간다. 그 순간부터 벅의 존재는 철저히 인간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 전락한다. 개썰매를 끌거나, 금을 찾는 탐험가들의 짐을 나르거나, 또는 인간의 오락을 위해 소비되는 존재로만 다뤄진다. 이는 인간이 동물을 어떻게 소비하고, 심지어 착취하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영화 속 북미 황야는 인간 우월주의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자연을 정복하려는 탐험가, 동물을 소유하려는 욕망, 이익을 위해 무분별하게 자원을 파괴하는 태도 등은 인간이 자연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용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영화는 이 구조 속에서 벅의 내면을 중심으로 시선을 바꾼다. 벅은 더 이상 인간의 소유물이 아니다. 그는 야생의 본능을 깨닫고, 인간의 통제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특히 주인공 존 손튼(해리슨 포드 분)과의 관계는 인간 우월주의의 틀을 흔드는 중요한 장치로 작용한다. 손튼은 벅을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 그는 벅을 친구로, 독립적인 존재로 대하며, 그가 야성으로 돌아가는 것을 막지 않는다. 이 부분에서 영화는 기존의 인간 중심 서사를 정면으로 비튼다. 벅이 야생으로 돌아가는 과정은 단순한 모험이 아니다. 이는 인간의 소유물이라는 지위를 벗어나, 자연의 한 구성원으로 돌아가는 상징적 서사다. 벅은 인간의 필요에 따라 길들여지고 이용되던 존재에서 벗어나, 자신의 본능과 자유를 회복하며, 자연 속 생명으로 다시 자리 잡는다. 이러한 구조는 우리가 오랫동안 익숙했던 ‘인간이 자연을 지배한다’는 관점을 근본적으로 흔든다. 또한 영화는 야생의 동물과 자연을 소비재로 바라보는 태도를 비판적으로 조명한다. 개썰매를 끄는 다른 개들의 피로와 고통, 혹독한 환경 속에서 쓰러지는 동물들, 탐욕적인 인간의 모습은 인간 우월주의가 가져온 폐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특히 벅이 점차 인간의 욕망에서 벗어나 야생을 선택하는 모습은 자연이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인간 또한 자연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한다. 영화는 벅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이끌며, 인간 중심적 가치관을 자연스럽게 해체한다. 벅의 내면, 감정, 욕구, 고통을 관객이 함께 느끼며, 우리는 어느새 동물과 자연을 지배의 대상이 아닌 동등한 생명으로 바라보게 된다. 이는 기존의 수많은 영화들이 동물을 단순한 조력자, 귀여운 캐릭터, 또는 인간을 돋보이게 하는 장치로만 소비해 온 태도와 확연히 다른 지점이다. 특히 <콜 오브 와일드>는 인간의 욕망과 자연 파괴의 연관성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북미의 골드러시 시대는 자연 파괴와 인간 탐욕이 극대화된 시기였다. 영화 속에서도 인간들은 금을 찾아 황야를 헤집고, 자연을 파괴하며, 생명을 희생시킨다. 그러나 결국 살아남는 것은 자연의 본성을 회복한 존재, 즉 벅과 같은 야생의 생명이다. 이는 인간의 통제와 개발이 궁극적으로 자연을 이길 수 없음을, 오히려 자연에 순응하고 공존하는 것이 더 깊은 생명력을 지닌 선택임을 강조한다. 존 손튼 역시 영화 속에서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는 인간 우월주의를 내려놓은 인물로, 벅과의 관계를 통해 진정한 자연의 의미를 깨닫는다. 그는 벅을 소유하지 않으며, 벅의 야생 본능을 억누르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벅을 통해 자연과 동물의 가치, 인간의 한계, 그리고 공존의 필요성을 배운다. 이는 기존의 인간-동물 관계를 재해석하는 핵심적인 시선이다. <콜 오브 와일드>는 단순한 동물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우리 사회 깊숙이 뿌리내린 인간 우월주의를 비판하고, 자연과 동물을 하나의 독립적 존재로 바라볼 것을 촉구한다. 우리는 여전히 많은 영역에서 인간 중심적 사고에 갇혀 있다. 반려동물도 결국 인간의 필요에 의해 길들여지고, 자연보호라는 명분 속에서도 인간의 이익이 우선시 된다. 영화는 이러한 모순을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지적한다. 벅의 야생 회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자유, 자연의 본질을 회복하는 과정은 인간이 자연을 바라보는 태도를 근본부터 바꿔야 함을 일깨운다. 우리는 자연을 지배할 수 없다. 자연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일 뿐이며, 그 사실을 잊을 때 우리는 결국 스스로를 파괴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콜 오브 와일드>는 야생과 동물의 시선을 통해 인간 우월주의를 해체하는 강렬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영화는 자연을 배경이 아닌 주체로, 동물을 조연이 아닌 독립적 생명으로 그리며, 우리가 익숙하게 여겨온 인간 중심의 세계관을 깊이 돌아보게 만든다. 벅의 여정은 곧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자연과의 새로운 관계, 더 겸손하고 평등한 시선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3. <콜 오브 와일드> 속 개와 인간의 상호 의존 

2020년 개봉한 영화 <콜 오브 와일드(The Call of the Wild)>는 겉으로 보면 북미의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한 마리 개 ‘벅’의 모험을 담은 감동적인 이야기로 보인다. 그러나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단순한 주종 관계, 혹은 인간의 일방적 지배가 아닌,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상호 의존 구조’로 깊이 있게 풀어냈다는 점이다.

<콜 오브 와일드>는 잭 런던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며, 현대의 시선으로 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보다 섬세하고 현실적으로 재해석했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벅은 처음에는 인간의 소유물로 등장한다. 부유한 가정의 반려견으로 살아가던 그는 갑작스럽게 북미의 황야로 팔려가고, 험난한 환경 속에서 개썰매를 끄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여기까지의 구조만 보면 벅은 철저히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도구에 불과해 보인다. 하지만 영화가 흥미로운 지점은, 벅과 인간 ‘존 손튼’(해리슨 포드 분)이 만나면서 이 관계의 균형이 변하기 시작한다. 손튼은 벅을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 그는 벅을 동등한 생명으로 바라보고, 벅의 본능과 자유를 존중한다. 이 시점부터 영화는 개와 인간의 관계를 기존의 일방향적 주종 구조가 아닌,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고 의지하는 상호 의존적 관계로 발전시킨다. 벅은 존 손튼을 통해 인간과의 긍정적 관계를 경험한다. 그는 인간의 욕심이나 폭력, 지배가 아닌, 존중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하지만 손튼 역시 벅이 필요하다. 그는 벅을 통해 외로움과 상처를 치유하고, 자연 속에서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이 부분은 영화가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얼마나 입체적으로 풀어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특히 영화 속 북미 황야의 험난한 환경은 인간과 동물 모두 혼자서는 생존할 수 없음을 상징한다. 극한의 자연, 예측할 수 없는 위험, 고립된 삶 속에서 인간과 동물은 서로를 의지하며 함께 살아간다. 벅이 개썰매를 이끌며 인간을 돕는 동시에, 인간은 벅을 보호하고 먹이를 제공한다. 이는 인간 우월주의적 관계가 아닌, 생존을 위한 상호 의존의 필연성을 강조한다. 이러한 구조는 현대 사회의 반려동물 문화와도 맞닿아 있다. 우리는 종종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여긴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여전히 소유와 지배의 관계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영화는 이 고정관념을 깨고, 동물과 인간이 서로를 필요로 하며, 심리적·정서적·생존적 측면 모두에서 상호 의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영화는 벅과 손튼의 관계를 통해 ‘존중’과 ‘자유’가 상호 의존의 핵심임을 강조한다. 손튼은 벅을 강제로 통제하지 않는다. 그는 벅의 야생 본능을 인정하고, 벅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선택을 막지 않는다. 이런 태도는 인간과 동물이 진정한 상호 의존 관계를 맺기 위해 필요한 신뢰와 존중의 중요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벅 역시 손튼을 무조건 따르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본능과 자유를 존중받으며, 인간과의 관계를 선택한다. 이는 일방적 복종이 아닌, 자발적 관계 형성을 통해 상호 의존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벅이 야생으로 돌아간 이후에도, 손튼과의 관계는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진다. 영화는 이런 선택과 관계의 과정을 통해 인간과 동물이 진정한 동반자로 거듭나는 모습을 감동적으로 담아낸다. 또한 영화는 상호 의존의 한계를 숨기지 않는다. 인간이 자연을 완벽히 통제할 수 없듯, 동물도 인간의 필요만을 위해 존재할 수 없다. 벅이 야생으로 돌아가는 결말은 인간과 동물의 관계가 결국 독립성을 전제로 할 때 더 건강하고 지속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동물과의 관계를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중요한 메시지다. 결국 <콜 오브 와일드>는 개와 인간의 관계를 통해 상호 의존의 본질을 탐구한다. 영화는 단순히 동물을 의인화하거나, 인간의 도구로 소비하는 기존의 틀을 넘어,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고, 서로의 존재를 통해 치유와 성장을 이루는 깊이 있는 관계를 제시한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여전히 동물과의 관계를 이분법적으로 정의하는 경향이 있다. 반려동물은 가족이거나, 도구이거나, 혹은 자연 속의 야생 동물은 인간과 별개로 분리된 존재로 여겨진다. 하지만 <콜 오브 와일드>는 그 이분법을 허물고, 인간과 동물이 더 넓은 자연 속에서 서로를 필요로 하며, 의지하고 공존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동물과의 관계를 다시 고민하게 만든다. 우리는 정말로 동물을 가족처럼 존중하고 있을까? 우리의 필요만을 위해 동물을 소비하고 있지는 않은가? <콜 오브 와일드>는 이러한 질문을 관객 스스로 던지게 만들며, 인간과 동물이 공존할 수 있는 진정한 상호 의존 구조를 어떻게 형성해야 하는지를 깊이 성찰하게 한다.

결론적으로 <콜 오브 와일드>는 개와 인간의 관계를 통해 상호 의존의 아름다움과 현실을 동시에 담아낸 작품이다. 영화는 단순한 모험 서사를 넘어, 우리가 자연과 동물, 그리고 서로의 존재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를 섬세하게 풀어낸다. 벅과 손튼의 관계는 인간과 동물이 지배와 복종을 넘어, 진정한 동반자로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상징으로 오래도록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