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봉일: 2017. 11. 16.
- 장르: 드라마
- 평점: 8.43
-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 러닝타임: 111분
- 감독: 마크 윌리엄스
- 주연: 제라드 버틀러, 윌렘 대포, 그래 첸 몰, 맥스 젠킨스
1. 정지된 하루의 연출 기법
2017년 영화 <타임 투게더: A Family Man>은 겉으로 보기에는 흔한 가족 드라마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단순한 감정선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영화는 매우 현실적이고도 민감한 질문을 던진다. 바로 "좋은 아빠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사회적 성공과 가정 내 역할 사이에서 방황하는 한 남성의 이야기를 통해, 진짜 ‘아버지다움’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주인공 데인은 성공지향적인 커리어맨이다. 헤드헌팅 회사에서 일하며 최고의 실적을 자랑하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는 법을 안다. 동료와의 경쟁, 상사와의 줄다리기, 고객을 설득하는 기술까지 모든 게 그의 커리어를 위한 도구이다. 하지만 영화는 초반부터 이 인물이 가진 결핍을 조용히 드러낸다. 그는 누구보다 바쁘고, 목표에 집중하지만, 동시에 가족과의 대화는 점점 줄어들고, 집은 그에게 잠시 머무는 공간에 불과하다. 아내와는 감정의 균열이 생기고, 자녀와는 어색한 거리감이 감돈다. 이러한 상황은 많은 현대 아버지들이 공감할 수 있는 현실이다. 가정을 위한 책임감이라는 명목 아래, 일터에 자신을 모두 쏟아붓지만, 정작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은 눈에 띄게 줄어든다. 가정은 뒷순위가 되고, 가장이라는 역할은 경제적 지원자에 머무른다. 영화는 이 구조가 과연 옳은 것인가를 묻는다. 특히 데인의 삶이 아들의 병으로 인해 전환점을 맞이하면서, 영화는 관객에게 감정적으로 다가온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 그는 가장 소중한 것을 놓치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이 영화가 돋보이는 이유는 데인의 감정 변화를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단번에 변하지 않는다. 아들이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도, 처음에는 여전히 회사의 중요한 미팅과 승진 계획에 더 큰 가치를 둔다. 관객은 그런 모습을 보며 답답함을 느낄 수 있지만, 그 모습은 현실적이다. 우리는 종종 큰 사건을 겪고도 삶의 패턴을 쉽게 바꾸지 못한다. 변화는 충격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 충격을 받아들이는 ‘시간’ 속에서 서서히 이뤄지는 것이다. 영화는 바로 그 ‘서서히 변하는’ 시간을 정교하게 따라간다. 영화 중반 이후, 데인은 조금씩 우선순위를 바꾼다. 회사에서의 경쟁과 가족의 곁, 어느 쪽이 더 자신에게 필요한 것인지 혼란스러워하며 망설이지만, 결국 그는 가장 인간적인 선택을 한다. 이때부터 그가 보여주는 모습이 바로 영화가 정의하는 ‘좋은 아빠’다. 성공을 포기한 아버지가 아니라, 진짜 의미 있는 삶을 선택한 사람. 그것은 감정적 반성이 아니라 실천적 변화로 나타난다.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회의 일정을 조정하고, 아들의 수술을 함께 기다리는 선택을 하며, 가족 식사에 참여하는 등의 ‘작지만 큰 행동’으로 표현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좋은 아빠’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여전히 불완전하고 실수하며, 두려움을 갖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순간마다 가족을 먼저 생각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이는 오늘날 많은 아버지들에게 필요한 메시지다. 우리는 자주 ‘좋은 아버지’라는 말에 완벽함을 요구하지만, 영화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좋은 아빠’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함께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이다. 특히 영화에서 아버지라는 인물상이 그리는 정서는 매우 섬세하다. 데인은 감정을 표현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아이의 병을 처음 들었을 때도 차분하게 반응하며, 아내가 울고 있을 때도 위로보다는 현실적 해결책을 제시하려 한다. 이는 전형적인 ‘전통적 남성상’에 기반한 행동이지만, 영화는 그런 모습조차도 비난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감정의 억눌림을 드러내면서, 어떻게 그것이 결국 관계를 멀어지게 하는지를 천천히 보여준다. 이 영화가 가진 특별함은 감정의 큰 파동보다는, 작은 감정의 떨림을 조명한다는 점이다. 화려한 연출이나 극적인 전환 없이, 일상의 장면에서 관계의 단절과 회복을 다룬다. 병원 복도에서 말없이 걷는 장면, 아내의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장면, 아이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는 순간들이 다층적인 감정을 만들어낸다. 이처럼 조용한 화면 속에서, 아버지라는 존재가 감정적으로 ‘깨어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한다. 또한 영화는 ‘좋은 아버지’의 모습이 아이와 직접 놀아주거나, 말을 많이 나누는 모습으로만 제한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오히려 함께 있는 시간의 질, 그리고 아이의 감정을 인지하고 반응하는 태도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가족 간의 소통이 점점 형식화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건드리며, 감정적 교류의 회복 필요성을 강조한다. 데인이 변화하는 과정은 단지 가족 내 역할의 변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는 인간으로서, 남성으로서, 아버지로서 새롭게 정체성을 찾는 과정을 겪는다. 그리고 그 변화는 가족을 지키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도 구원한다. 영화는 ‘가족을 위해 희생하라’는 도식을 벗어나, ‘함께 존재함으로써 서로를 살리는’ 관계의 가치를 조명한다. 이는 매우 현대적인 아버지상이며, 더 이상 권위적이고 일방적인 아버지 역할이 아닌, 공감하고 책임지는 성숙한 인간으로서의 아버지를 제시한다. 오늘날 많은 콘텐츠가 ‘엄마’의 역할과 감정에 집중하는 반면, <타임 투게더>는 ‘아빠’라는 존재의 감정적 진화를 정면에서 다룬다. 이는 매우 드문 접근이지만, 동시에 사회적으로도 의미 있는 시도다. 가정 내 아버지의 역할이 여전히 ‘생계 책임자’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는 현실에서, 이 영화는 그것을 넘어서 감정적 존재로서의 아버지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결국 이 영화는 ‘좋은 아빠’의 정답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 남성이 아버지로서 무엇을 놓쳤고, 무엇을 되찾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우리에게 그 의미를 생각하게 만든다. 좋은 아빠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진심을 담아 가족과 연결되려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거창한 말을 하지 않아도, 한마디 말과 작은 행동으로 가족을 지켜낸다. 영화는 그것을 고요한 언어로 전하고 있다.
2. <타임 투게더> 속 남성의 일중독
영화 <타임 투게더: A Family Man>은 일중독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섬세하게 다룬다. 특히 남성 중심의 시각에서 그려지는 일과 가정 사이의 균열은 단순한 드라마가 아닌, 우리 사회 전체에 놓인 질문처럼 다가온다. 이 영화는 주인공 ‘데인 젠슨’의 일상과 내면을 통해, 현대 사회에서 남성이 일에 몰입하게 되는 구조적 배경과 그로 인한 부작용, 그리고 궁극적인 해법을 차분하게 탐색한다.
데인은 잘 나가는 헤드헌터다. 고액 연봉, 경쟁 중심의 업무 환경, 끝없는 성과 압박 속에서도 그는 누구보다 능숙하게 자신의 위치를 지켜낸다. 그러나 그의 성공은 어디까지나 일에 한정된 이야기다. 가정에서는 부재자에 가깝다. 아내와는 감정적 단절이 깊어지고, 아이들과는 정서적 연결이 희미하다. 이런 삶의 구조 속에서, 그는 일밖에 모르는 사람이 되어간다. 영화는 이 지점을 매우 조용하지만 뚜렷하게 짚는다. 일중독은 그가 일부러 선택한 길이 아니라, 어느 순간 ‘일만이 자신을 증명해 주는 유일한 수단’이 되어버린 결과다. 현대 사회에서 많은 남성들이 데인과 비슷한 삶을 살아간다. 특히 가장의 위치에 놓인 이들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책임감 아래, 일에 몰입하는 것이 당연한 듯 여겨진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출퇴근 외에는 자신의 삶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다. 문제는 그것이 점차 습관이 되고, 결국 자신이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처럼 느껴진다는 데 있다. 영화 속 데인은 바로 그런 인물이다. 회사에서는 능력자로 인정받지만, 가정에서는 점점 잊히는 존재다. 일중독의 구조는 단순히 성실함과는 다르다. 이는 자기 존재의 가치를 ‘성과’와 ‘인정’에서만 찾는 심리적 메커니즘에 가깝다. 데인도 마찬가지다. 그는 성취감 없이는 불안함을 느끼고, 일에서 벗어나는 순간 자신이 쓸모없어질까 두려워한다. 더 높은 실적, 더 큰 계약, 더 빠른 승진을 향해 계속 달려가면서도, 그 끝에 진정한 만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는 이 과정을 굉장히 현실적으로 그려낸다. 성공해도 불안하고, 실패하면 무너지는 불안정한 감정의 흐름. 이는 단지 데인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일에 몰입하게 만드는 사회 분위기의 결과다. 이러한 일중독은 결국 관계의 파괴로 이어진다. 데인의 가족은 점점 그에게서 마음을 닫아간다. 그의 존재는 점점 '불편한 사람'이 되어간다. 아이의 건강 문제 앞에서도 그는 처음엔 일을 놓지 못한다. 이는 단순한 이기심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그 상황에서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동안 감정과 거리를 두며 살아왔기 때문에, 진짜 중요한 순간에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 것이다. 이처럼 일중독은 감정적 판단력마저 마비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렇다면 영화는 이 문제에 대해 어떤 해법을 제시할까. <타임 투게더>가 제안하는 해법은 화려하지 않다. 오히려 작고 느린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 데인은 단번에 일을 내려놓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승진 경쟁을 의식하고,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에 참석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는 점차 ‘놓아야 할 것’을 알아가기 시작한다. 아들의 병실에 오래 머물기 위해 회의에 늦고, 가족과의 식사 자리를 우선순위에 놓기 시작한다. 이 과정은 매우 현실적이고, 그래서 더욱 공감된다. 일중독의 해법은 완전한 탈출이 아니다. 오히려 균형 회복이다. 영화는 ‘일’과 ‘가정’을 경쟁 관계로 보지 않는다. 대신 ‘일을 위한 삶’이 아닌 ‘삶을 위한 일’로 중심을 재정비하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곧 우선순위의 문제다. 누군가에게 가장 중요한 순간에 함께 있어주는 것, 자신의 존재가 가족에게 어떤 의미인지 되돌아보는 것, 그리고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드러내는 용기를 갖는 것. 영화는 그런 사소해 보이는 행동들이야말로 삶의 균형을 되찾는 시작이라고 말한다. 특히 눈에 띄는 점은, 이 영화가 남성의 감정 회복을 매우 섬세하게 그려낸다는 점이다. 데인은 처음에는 무감각하고 냉정해 보이지만, 점차 자녀를 향한 미묘한 감정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감정을 감추지 않게 된다. 울음을 참고, 감정을 숨기는 것이 ‘남자다움’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이는 남성에게 감정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에 대한 반성처럼 보이기도 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데인은 여전히 완벽하지 않다. 그는 여전히 실수하고, 조심스럽게 감정을 표현하며, 일을 완전히 놓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가 바뀐 건, 더 이상 ‘일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이 어떤 존재로 기억되길 바라는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또한 영화는 단순한 가족 드라마를 넘어, 우리 사회 전반에 당신은 지금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일하고 있는지 질문하고 있다.
<타임 투게더>는 일중독에 빠진 남성이 단순히 일을 내려놓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감정을 회복하고, 관계를 복원하며, 자기 자신을 되찾아가는 서사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좋은 아버지’로 살고 싶은 마음, ‘더 나은 인간’으로 변화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일이라는 이름의 사슬에서 벗어나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조용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3. <타임 투게더> 괜찮은 척하는 아버지들의 마음
영화 <타임 투게더: A Family Man>은 현대 사회에서 가족과 일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애쓰는 한 남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단순히 가족 드라마라고 치부하기엔, 이 영화는 너무나 많은 ‘현실’을 품고 있다.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점은, 주인공 데인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수많은 ‘괜찮은 척하는 아버지들’의 내면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겉으로는 괜찮다고 말하며 살아가는 아버지들이 왜 그렇게까지 애쓰는지, 그 마음 깊은 곳을 조심스럽게 들여다본다.
영화의 주인공 데인은 잘 나가는 헤드헌터다. 실적도 좋고, 동료와의 경쟁에도 능하다. 그의 하루는 빠듯하고, 머릿속은 늘 업무로 가득 차 있다. 그는 바쁘다는 이유로 가족과 저녁을 함께 하지 못하고, 아이들의 일상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를 비난하지 않는다. 그는 “가족을 위한 일”을 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영화는 바로 이 지점에서 정말 이 모든 것이 가족을 위한 것인지 혹은 자신의 존재를 지키기 위해 괜찮은 척하며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건 아닌지 질문하고 있다. 사실 데인은 영화 내내 ‘괜찮은 사람’처럼 행동한다. 직장에서 무너지지 않고, 회의에서는 당당하며, 때로는 유머로 분위기를 이끌 줄도 안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그는 늘 불안하다. 승진에 실패할까 두렵고, 고객을 뺏길까 초조하며, 동료와의 경쟁에서 밀릴까 신경이 곤두서 있다. 가정에서는 존재감이 점점 옅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 불편한 감정을 애써 외면한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설명할 줄 모르고, 감정을 인정하는 것이 약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언제나 괜찮은 척한다. 이 영화는 그런 데인의 모습에서 오늘날 많은 아버지들의 현실을 투영한다. ‘괜찮은 척’은 단지 감정을 숨기는 수준이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생존 전략이자, 자존감을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다. 특히 남성들에게 사회는 오랜 시간 동안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약함’으로 규정해 왔다. “울지 마라”, “참아야 한다”, “책임져야 한다”는 말들은 무의식적으로 남성의 감정 표현을 막아왔다. 데인도 그런 사회 속에서 자라온 인물이다. 그는 가정의 가장으로서 어떤 일이 닥쳐도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영화는 그러한 신념이 어떻게 점차 그를 외롭게 만드는지를 보여준다. 영화의 전환점은 아들의 병이다. 아들이 암 진단을 받으면서 데인의 감정선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평소처럼 출근하고 회의에 참여하면서도, 그는 자신이 더 이상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그는 처음엔 여전히 감정을 숨긴다. 울지 않고, 절망하지 않고, 가족 앞에서도 강한 모습을 유지하려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그 괜찮은 척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가족은 완벽한 가장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아파하고 함께 울 수 있는 존재를 원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감정을 드러내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매우 절제되어 있다. 데인은 대놓고 오열하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천천히 무너진다. 아이를 바라보는 눈빛, 아내의 손을 잡는 미묘한 움직임, 회의실을 빠져나와 혼자 깊은숨을 내쉬는 순간들이 그에게 쌓인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그것은 강한 척하지 않아도 충분히 강한 사람의 모습이다. 이 영화가 전하는 진짜 메시지는 여기 있다. 진짜 강함은 감정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마주하는 데서 비롯된다는 것. 현대 사회에서 많은 아버지들은 ‘무언가를 참고 있다’. 말 못 할 걱정, 표현 못 한 사랑, 이해받지 못한 외로움 같은 것들. 가정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뒤로 미루고, 자신의 감정은 후순위로 둔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말수는 줄고, 얼굴엔 무표정이 늘고, 마음엔 거리감이 생긴다. 이 영화는 그런 현실에 조용히 공감의 손을 내민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라고 말해주는 유일한 장면들로, 많은 아버지들의 속마음을 대변한다. 또한 영화는 ‘가장’이라는 역할을 새롭게 정의하려 한다. 데인은 과거에는 가장의 역할이 경제적 책임에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는 점차 ‘감정적 연결’이야말로 진짜 가족을 유지하는 힘임을 깨닫는다. 아이와의 대화, 아내와의 눈 맞춤, 가족과 보내는 짧은 일상이야말로 진짜 가장이 해야 할 역할임을 알아간다. 영화는 이를 과장 없이 잔잔한 톤으로 그려냄으로써, 더 많은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데인이 완전히 바뀌는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여전히 회의에 참여하고, 직장에 다니며, 승진 경쟁에도 일부 참여한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거기에 자신의 전부를 걸지 않는다. 감정적으로 무너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가족 앞에서 더 이상 완벽한 사람으로 보이려 하지 않는다. 이 작은 변화가 바로 영화가 말하는 회복의 시작이다.
<타임 투게더>는 단순한 가족영화로 치부되기엔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한 시선이 깊다. 특히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조용한 울림을 준다. 이 영화는 ‘괜찮은 척’이 결코 강함의 증표가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진짜 중요한 것은 함께하는 시간과 감정을 나누는 용기임을 말해준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살아가지만, 속으로는 무너지고 있는 누군가에게 이 영화는 분명 위로가 된다. 진짜 괜찮은 아버지는 감정을 감추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나누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괜찮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타임 투게더>는 그 말을 수많은 아버지들을 위해, 그리고 스스로도 모르게 괜찮은 척하며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위해 대신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