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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행복한 사전> 도쿄 풍경, '말'의 정의, 여백미

by borybory-click 2025. 9. 1.

영화 &lt;행복한 사전&gt; 관련 사진

 

  • 개봉일: 2014. 02. 20.
  • 장르: 드라마, 코미디
  • 평점: 8.67
  • 등급: 전체 관람가
  • 러닝타임: 133분
  • 감독: 이시이 유야
  • 주연: 마츠다 류헤이, 미야자키 아오이, 오다기리 죠

 

1. <행복한 사전> 촬영 배경지 도쿄 풍경

영화 <행복한 사전>은 단순한 직업 드라마를 넘어,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 도쿄라는 도시의 풍경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화려하고 바쁜 도쿄의 모습이 아닌, 이 영화 속 도쿄는 오히려 조용하고 따뜻하며 때로는 낯설 정도로 감성적이다. 일본의 여행지로 유명한 오키나와가 자연 속 여유를 상징한다면, <행복한 사전>이 담아낸 도쿄는 일상이라는 배경 속에 감정과 철학을 녹여낸 감성의 도시로 새롭게 다가온다. 본문에서는 영화 속 주요 배경지를 중심으로 도쿄의 또 다른 매력을 탐구해보고자 한다.

<행복한 사전>의 주인공 마지메는 세상의 흐름과는 다소 동떨어진 인물이다. 말수가 적고, 사회성과는 거리가 멀지만 언어에 대한 진심을 품고 살아가는 그에게 도쿄의 조용한 거리들은 마치 외부 세계와의 경계처럼 기능한다. 영화는 도쿄라는 도시를 낯설고도 친숙하게 보여주며, 마지메의 내면을 투영하는 배경으로 삼는다. 예를 들어, 마지메가 자주 오가는 골목길은 전형적인 도쿄의 주택가 풍경을 담고 있다. 낮게 드리워진 전선, 담쟁이덩굴이 감싼 오래된 담벼락, 자전거가 세워져 있는 골목길은 관광지 도쿄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이 조용한 공간은 마지메의 단조로운 일상과 잘 어울리며, 그의 정직하고 꾸밈없는 성격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도구로 활용된다. 또한, 영화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출판사 건물 주변 풍경도 인상적이다. 고층 빌딩으로 가득 찬 오피스 거리보다는, 오래된 저층 건물과 협소한 골목길, 그리고 작은 공원이 있는 풍경들이 마지메의 업무 공간을 감싸고 있다. 이 같은 공간들은 바쁜 도시 도쿄에서도 여전히 숨 쉴 수 있는 여백이 존재함을 암시하며, 마지메가 속한 세계가 단순히 과거의 잔재가 아닌 '지금 여기'의 일상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배경은 시청자로 하여금 도쿄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만든다.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아사쿠사나 시부야의 번잡함과는 거리가 먼, 일상적인 도쿄의 모습은 오히려 현실적이고 서정적이다. 마지메의 내면을 담담히 따라가는 카메라의 시선은 그를 둘러싼 도시를 배경이 아닌 ‘주인공 중 하나’로 만들며, 시청자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다. <행복한 사전>에서 가장 상징적인 장소 중 하나는 도서관이다. 마지메가 사전 편찬을 위해 자주 찾는 도서관은 고요하고 질서 정연한 공간으로, 언어와 지식의 세계를 상징하는 장소다. 이 도서관은 단순히 자료를 찾는 공간을 넘어, 마지메가 세상과 소통하는 창구이자 그가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장소로 묘사된다. 이 장면들은 대부분 정적인 구도와 자연광을 활용해 촬영되었으며, 도쿄라는 도시 속에서 발견한 고요함의 정수를 담고 있다. 일본 특유의 단정한 건축 양식과 정갈한 내부 디자인은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이 차분해지게 만든다. 도서관에서 책장을 넘기는 소리, 볼펜이 종이에 긋는 소리, 그리고 멀리서 들리는 시계 초침 소리는 마치 일상 속에서 음악처럼 흐르며 관객의 감각을 자극한다. 또한, 마지메가 걷는 강가 풍경은 이 영화가 얼마나 섬세하게 일상을 포착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도쿄에는 수많은 하천과 작은 강들이 있으며, 영화는 이런 수변 공간을 감성적으로 활용한다. 계절이 바뀌며 풍경도 서서히 변화하고, 그 속을 조용히 걷는 마지메의 모습은 삶의 흐름과 언어의 흐름이 닮아 있다는 은유로 읽히기도 한다. 특히 봄철의 벚꽃길이나, 초겨울 낙엽이 떨어진 산책로, 비 내리는 저녁 풍경 등은 도쿄가 단지 인구 밀집 도시가 아닌, ‘감정의 배경’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장면들은 일본의 감성영화에서 자주 활용되는 기법이지만, <행복한 사전>은 이를 보다 절제되고 진중하게 그려냄으로써 시청자의 감정에 더 깊게 스며든다. 이렇듯 도서관과 하천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마지메의 내면과 영화의 주제를 함께 직조해 나가는 공간이다. 시끄럽고 복잡하다는 도쿄의 고정관념을 무너뜨리는 동시에, 그 안에서도 충분히 여유와 사색의 공간이 존재함을 전달한다. <행복한 사전>이 담아낸 도쿄의 진정한 매력은, 바로 ‘반복되는 일상 속의 낭만’이다. 이 영화에서는 극적인 사건이나 전개보다, 반복되고 익숙한 것들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마지메가 매일 오가는 길, 매일 먹는 도시락, 매일 들르는 편의점, 그리고 매일 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점차 변화하는 감정과 관계들이 도쿄라는 도시와 함께 교차되며 깊이를 더한다. 카메라는 종종 아침 햇살이 비치는 주방, 점심시간의 구내식당, 퇴근길의 어두운 골목 등 익숙한 일상의 순간들을 정적으로 담아낸다. 이 같은 연출은 도시의 낭만을 여행이나 이벤트가 아닌, 평범한 루틴 속에서 찾도록 유도한다. 특히 마지메가 살고 있는 집 내부는 오래된 가구와 책들로 가득 차 있으며,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조차 조용하고 단정하다. 이러한 공간은 현대인이 자주 잃어버리는 '집다운 집'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도쿄의 일상은 영화 속에서 낯설지 않은 풍경으로 그려지지만, 동시에 시청자에게 감성적으로 다가온다. 이는 감독의 연출뿐 아니라 촬영기법, 조명, 미술팀의 섬세한 디테일이 어우러져 완성된 결과다. 실제로 이 영화는 도쿄를 다룬 수많은 영화 중에서도 ‘감정에 가장 충실한 도쿄 묘사’라는 평을 받으며, 관객들에게 진한 여운을 남긴다. 일상은 지루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쌓여 한 권의 사전이 되고, 한 편의 인생이 된다는 메시지는 이 영화의 핵심 주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고스란히 도쿄라는 도시의 묘사 안에 녹아 있다. 즉, 도쿄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감정과 기억이 축적되는 '장소로서의 힘'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치이다.

우리는 보통 일본의 감성을 이야기할 때, 오키나와의 푸른 바다나 교토의 전통 정취를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행복한 사전>이 보여준 도쿄는 그 어떤 관광지보다 더 깊은 감성과 철학을 품고 있다. 화려한 건물이나 유명한 거리 대신, 조용한 골목과 흐르는 하천, 그리고 책장 사이에 스며든 햇살을 통해 이 영화는 ‘도시도 감정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 작품을 통해 도쿄는 단순한 생활공간을 넘어, 사람의 감정과 삶을 온전히 품을 수 있는 공간으로 새롭게 재조명된다. 영화 속 도쿄는 오키나와보다 더 감성적이며, 그 감성은 일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잔잔한 위로를 전해준다. 누군가에게 도쿄는 빠르게 흘러가는 도시일 수 있지만, 《행복한 사전》을 본 이들에게는 ‘마음이 천천히 머무는 도시’로 기억될 것이다.

 

2. '말'의 정의

영화 <행복한 사전>은 언어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드라마로, 사전 편찬이라는 흔치 않은 소재를 통해 ‘말’이라는 존재에 대해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진다. 단어는 단순한 의미 전달 수단이 아닌, 사람과 사람을 잇는 다리이며 동시에 사고와 감정의 반영체이다. 영화는 이를 섬세하게 짚어가며 ‘말의 정의’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이 글에서는 영화 속 장면과 인물의 서사를 통해 언어의 본질, 말이 가지는 철학적 의미, 그리고 사전이라는 형식을 통해 드러난 인간적 메시지를 풀어본다.

<행복한 사전>의 중심에는 ‘대도해’라는 이름의 사전이 있다. 이는 단순히 단어의 뜻을 모은 책이 아니라,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의 기록이자, 그 의미를 정의하려는 시도의 집합체다. 주인공 마지메는 이 사전을 편찬하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거는 인물이다. 그가 정의하는 단어는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누군가의 기억, 감정, 삶과 연결되어 있는 ‘살아 있는 말’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들에는 사연이 담겨 있다. 누군가에게는 “고마워”라는 말이 용기를 의미할 수 있고, “괜찮아”라는 말이 위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전은 그 모든 의미를 몇 줄의 정의로 축약해야 한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언어의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말은 과연 정의될 수 있는가. 의미는 고정될 수 있는가. 마지메는 이 과정에서 수없이 단어의 뜻을 고민하며, 때로는 한 단어의 정의를 위해 수일을 몰두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사랑’이라는 단어를 정의하는 장면에서는 그가 경험한 감정과 이론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전은 중립적이어야 하지만, 언어는 언제나 감정적이다. 이 모순은 사전을 만드는 일이 얼마나 복잡하고 인간적인지를 잘 보여준다. 철학적으로도 언어는 단지 현실을 반영하는 도구가 아니라, 현실을 구성하는 힘이다. 영화는 이를 시적으로 표현하면서, 관객에게도 언어란 무엇인지 되묻게 만든다. 결국 이 영화가 말하는 ‘말의 정의’는 사전적 정의 그 자체보다, 그것을 찾아가는 인간의 태도와 고민에 있다. 즉, 말은 완전히 정의될 수 없지만, 정의하려는 그 시도 자체가 인간의 진지한 삶의 흔적이라는 것이다. <행복한 사전> 속 인물들은 말과 깊은 관련을 맺고 살아간다. 마지메는 말에는 서툴지만, 그 누구보다 말의 본질을 소중히 여기는 인물이다. 반면 그의 주변 인물들, 특히 편집장이나 동료들은 말을 능숙하게 다루는 사람들로, 그 대비가 영화의 중요한 장치로 작용한다. 말의 기술이 아닌 말에 대한 태도를 통해 인간관계의 본질을 들여다보게 되는 것이다. 마지메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카구야와의 관계 역시 언어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마지메는 말로 감정을 표현하는 데 익숙하지 않지만, 그의 편지에는 진심이 담겨 있다. 카구야는 그런 마지메의 마음을 알아채고, 그의 말 없는 진심을 언어를 통해 읽어낸다. 이들의 관계는 말이 감정의 전달 도구로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또한, 영화 속에서는 말실수나 표현의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갈등과 오해도 등장한다. 이는 실제 현실에서 우리가 얼마나 언어에 의존하며 살아가는지를 반영한다. 직장 내에서의 회의, 회식 자리에서의 대화, 가족 간의 소통 모두 언어를 매개로 이루어진다. 그 속에서 말은 때로 칼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약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영화는 언어를 정보 전달의 수단이 아닌, 관계의 시작이자 끝으로 그린다. 사전 편찬이라는 소재가 단순히 언어학적 관심에만 머무르지 않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말의 윤리와 책임까지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더욱 깊은 울림을 전한다.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말은 ‘정확한 정의’가 아니라 ‘정확한 태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말은 그 자체보다, 누가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힘을 가지게 된다. 이는 특히 온라인 시대의 언어 사용이 큰 이슈가 되고 있는 지금, 더 큰 의미를 갖는다.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행복한 사전>은 사전이라는 작업 자체를 인간의 삶과 동일시한다. 단어 하나하나를 정의하는 과정은, 결국 인간이 스스로의 감정과 삶을 이해하려는 여정과 닮아 있다. 사전은 단어를 정리하지만, 동시에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시대정신을 담는 기록이기도 하다. 마지메는 사전 작업을 통해 인생을 정리해 간다. 그의 성실함, 반복적인 작업, 끝없는 검토는 언뜻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바로 그 과정이 삶의 본질이라는 메시지를 영화는 조용히 전한다. 사전은 단어만 모아놓은 것이 아니라, 그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살아온 흔적을 담은 총체적 기록이다. 영화 속에서 ‘사전은 시대를 담는다’는 대사가 등장한다. 이는 단어의 의미가 시대와 함께 변하기 때문에, 그 의미를 포착하려면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언어는 살아있고, 시대의 흐름과 함께 진화한다. 예컨대, 과거의 '사랑'과 오늘날의 '사랑'은 같은 단어라도 전혀 다른 문화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사전은 그 차이를 인식하고 기록하는 작업이다. 이를 위해 수많은 예문을 찾아보고, 사용 맥락을 분석하며, 정제된 정의를 만들어낸다. 마지메는 이 모든 과정을 ‘사람을 이해하는 일’로 받아들이고, 그 일에 인생을 건다. 이는 곧 ‘언어란 곧 사람’이라는 영화의 핵심 메시지를 상징한다. 또한, 이 영화는 사전을 만드는 사람들이 단순한 기록자가 아니라 해석자이자 전달자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들은 언어를 통해 인간을 이해하고, 시대를 정리하며, 다음 세대에게 그 의미를 넘겨주는 역할을 한다. 결국 ‘말의 정의’는 단어의 의미를 아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 있는 것이다.

영화 <행복한 사전>은 말의 정의를 단순히 언어학적 측면에서 다루지 않고, 인간의 내면과 사회적 관계, 그리고 삶의 철학적 가치까지 확장시켜 그려낸다. 사전을 만드는 사람들의 묵묵한 삶을 통해, 우리는 말이 단지 도구가 아니라 존재 그 자체임을 깨닫게 된다. 말은 정의될 수 있는 동시에, 끊임없이 다시 정의되어야 한다. 영화는 그 과정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깊이 있는 존재이며, 언어를 통해 서로를 얼마나 섬세하게 이해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행복한 사전>이 말하고자 하는 ‘말의 정의’란, 결국 말이 머무는 사람의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을 진심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자세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지금도 우리는 수많은 말을 쏟아내고, 읽고, 듣고 있지만, 그 말속에 진심이 담겨 있는지를 되돌아보게 된다. 이 영화는 그 조용한 질문을 통해 언어의 본질을 깨닫게 만들며, 동시에 우리의 삶과 말의 관계를 다시금 되짚어보게 만든다. 단어 하나에도 생명이 있고, 사전 한 권에도 인생이 담긴다는 이 메시지는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3. <행복한 사전> 속 여백미, 정적의 힘

일본 영화는 오랜 시간 동안 ‘여백의 미학’으로 대표되는 독특한 감성을 유지해 왔다. 그중에서도 <행복한 사전>은 이 여백미를 가장 잘 표현한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대단한 갈등도 없고, 극적인 반전도 없지만, 조용히 흐르는 이야기 속에서 오히려 더 큰 울림을 전한다. 이 글에서는 영화 <행복한 사전>에 담긴 여백의 미학이 어떤 방식으로 구현되고, 그것이 시청자에게 어떤 정적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살펴본다. 더불어 일본 영화가 꾸준히 이 정적인 미학을 고수하는 이유와 그 문화적 배경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행복한 사전>은 사전 편찬이라는 매우 느리고 고요한 작업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주인공 마지메는 사회성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언어에 대한 애정만큼은 진심인 인물이다. 그의 이야기는 시끄러운 도시와도, 빠르게 변하는 사회와도 동떨어진 채 진행된다. 카메라는 그의 하루를 따라가며 시청자에게 ‘말하지 않는 것’에서 오는 감정을 전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 중 하나는 대사가 적은 장면이 유독 많다는 것이다. 예컨대 마지메가 도서관에서 혼자 사전의 정의를 고민하며 책장을 넘기는 장면은 대사가 거의 없다. 하지만 이 장면은 긴 침묵과 조용한 효과음, 햇살의 방향, 책 넘기는 소리 등을 통해 그의 내면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일본 영화가 자주 사용하는 이 ‘정적의 표현’은 감정의 폭발보다는 내면의 깊이에 집중한다. 말보다 시선, 시선보다 공기 속의 정적이 더 많은 것을 전달한다. <행복한 사전>은 바로 이러한 일본 영화 특유의 미학을 가장 정교하게 구현한 작품이다. 이러한 여백은 때로는 관객에게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바로 그 공간에서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감정을 느끼게 된다. 즉, 영화가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기에, 관객은 오히려 더 깊게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설명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이 영화가 가진 가장 강한 언어이며, 여백의 진정한 의미이기도 하다. 특히 마지메와 카구야의 관계에서도 이러한 여백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서로를 향한 감정을 말로 전하기보다, 말없이 요리를 대접하거나 책을 건네는 등의 행동을 통해 표현한다. 대사로 표현하지 않는 진심은 오히려 더욱 절절하게 다가온다. 이처럼 여백은 감정을 전달하는 하나의 수단이자, 때로는 말보다 더 정확한 표현 방식이 된다. <행복한 사전>에서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요소는 공간의 활용이다. 일본 영화는 흔히 인물과 공간의 관계를 통해 정서를 전달하는데, 이 작품은 그 점에서 매우 섬세하고 일관된 미장센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마지메가 살고 있는 집은 오래되고 협소하지만 정갈하게 정돈되어 있다. 그 속에는 책과 종이, 펜, 사전 초안이 곳곳에 놓여 있으며, 햇살이 창문을 통해 부드럽게 비친다. 이처럼 한 폭의 정물화 같은 공간은 관객에게 ‘생각하는 시간’을 제공한다. 어수선하지 않은 장면 구성은 시청자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하며, 복잡한 편집이나 음악 없이도 장면 자체가 말이 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도서관, 출판사, 골목길 등 영화에 등장하는 장소들은 모두 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누군가는 이 공간들을 지루하게 느낄 수 있지만, 그 안에 깃든 정서는 매우 깊고 섬세하다. 일본 영화는 공간을 단지 배경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확장시키는 도구로 활용한다. 카메라의 움직임도 마찬가지다. <행복한 사전>에서는 빠른 컷 전환이나 다이내믹한 앵글보다 고정된 시선, 느린 팬, 그리고 롱테이크를 통해 인물의 내면을 비춘다. 이는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듯 인물의 삶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게 만드는 효과를 낸다. 이런 연출은 결국 관객이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을 그대로 느끼게 만든다. 일본 영화에서 시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서사 그 자체이다. 마지메가 오랜 시간 사전을 만드는 동안 변화하는 계절, 지나가는 사람들, 바뀌는 공간은 그의 삶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치가 된다. 결국 이 영화는 시각적으로도 여백을 통해 서사를 만들어낸다. 인물의 심리나 사건을 직접 설명하기보다는, 주변의 변화와 공간의 정서로 전달하는 방식은 일본 영화가 가진 고유한 정적 미학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영화 <행복한 사전>은 느림과 반복을 중요한 서사적 장치로 활용한다. 사전 편찬이라는 작업 자체가 방대한 시간이 걸리는 일이며, 수많은 단어들을 정확하게 정의하기 위해서는 끝없는 확인과 수정을 반복해야 한다. 이런 작업의 리듬을 영화는 그대로 차용한다. 마지메는 매일 같은 시간에 도서관에 가고, 같은 자리에 앉아 사전을 편찬한다. 출판사에서는 동료들과 차를 마시며 토론하고, 매일 점심 도시락을 먹고, 반복적인 일상을 살아간다. 이 모든 반복은 지루함이 아닌 ‘의미 있는 누적’으로 그려진다. 여백은 바로 이 누적의 시간에서 생겨난다. 감정도 한 번의 폭발이 아니라, 쌓여가는 과정 속에서 더 진하고 단단해진다. 일본 영화는 자주 이런 방식으로 인물의 내면을 드러내며, 감정의 깊이를 관객이 스스로 느끼도록 만든다. 또한, 여백은 ‘관찰’의 시간을 제공한다. 관객은 인물의 행동을 보고, 생각을 유추하고, 마음을 읽으려 노력한다. 말 대신 행동, 행동 대신 침묵, 그 침묵 속에서 피어나는 감정은 상상 이상의 울림을 가진다. 마지메가 사전을 완성해 가는 과정은 사실상 그의 삶을 살아가는 과정과 동일하다. 완성되지 않은 문장들, 정의되지 않은 단어들, 수정되어야 할 초안들처럼, 인간의 삶도 늘 불완전하고 진행 중이다. 영화는 이를 정적이고 여백이 많은 방식으로 표현함으로써, 관객이 자신을 투영하게 만든다. 느림과 여백이 강조된 영화는 소비하는 콘텐츠라기보다, 마치 ‘감정을 재배하는’ 작품처럼 느껴진다. 급하게 흘러가는 일상에서 멈춰 서서 생각하게 만들고, 말보다는 공기의 흐름, 음악보다는 침묵의 무게에 집중하게 만든다. 이런 방식은 일본 영화가 오랫동안 고수해 온 감성 표현이며, <행복한 사전>은 그 정점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행복한 사전>은 일본 영화 특유의 여백미를 가장 깊이 있게 표현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던지기보다, 조용히 곁에 머물며 자신의 감정을 꺼내도록 유도한다. 대사 대신 침묵으로, 음악 대신 정적으로, 사건 대신 흐름으로 말하는 이 영화는 여백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표현 수단임을 보여준다. 우리는 콘텐츠의 시대에 살고 있다. 자극적인 영상과 빠른 호흡, 즉각적인 감정을 추구하는 이 시대에서 <행복한 사전>은 오히려 거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