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영화 <her> 집착과 해탈, 1인 가구 사회, 글쓰기 직업

by borybory-click 2025. 3. 31.

영화 &lt;her&gt; 관련 사진

 

   기본 정보

  • 개봉일: 2014. 05. 22.
  • 장르: 드라마, 멜로
  • 평점: 8.67
  • 등급: 15세 이상 관람
  • 러닝타임: 125분
  • 감독: 스파이크 존즈
  • 주연: 호아킨 피닉스, 에이미 아담스, 루니 마라, 스칼릿 조핸

 

1. <her>와 불교사상 비교 - 집착과 해탈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영화 <Her>는 2013년에 개봉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작품이다. 인공지능 운영체제와 인간이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은 얼핏 보면 미래지향적인 SF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이 진정으로 관객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닌, 인간 감정의 본질, 외로움의 실체, 그리고 ‘놓아주는 것’에 관한 이야기다. 바로 이 지점에서 불교적 관점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불교에서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주제들, 즉 집착, 무상, 무아, 해탈은 영화 <Her> 속 테오도르의 감정 여정과 놀라울 정도로 맞닿아 있다.

불교는 인간의 고통의 뿌리를 '집착'에서 찾는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때, 이미 가진 것을 잃을까 두려울 때, 혹은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것이 변해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 고통은 피할 수 없이 따라온다. <Her>의 주인공 테오도르는 그런 고통을 온몸으로 겪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과거의 연인 캐서린과의 이혼을 아직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했고, 현재는 감정적인 고립감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스스로의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른다. 이 상태는 불교에서 말하는 '번뇌'의 상태와 흡사하다. 그는 이성과 감정을 분리하지 못하고,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감정적으로 안전하다고 느끼는 인공지능 '사만다'에게 점점 깊이 의존하게 된다. 사만다는 처음 등장할 때부터 인간과는 다른 존재다. 감정은 모방할 수 있지만, 육체는 없고, 기억은 무한히 확장되며, 논리적 사고는 인간을 능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오도르는 그녀에게 빠져든다. 어쩌면 그는 인간관계에서 겪는 오해, 거리감, 상처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사만다는 항상 그의 말에 귀 기울이고, 공감하며, 판단하지 않는다. 테오도르는 그녀를 통해 다시금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듯 보인다. 하지만 동시에, 그 관계는 점차 '사랑'보다는 '집착'에 가까워진다. 그가 느끼는 안정감은 사만다가 자신만을 위해 존재한다는 전제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이런 상태를 '유정법에 대한 집착'이라고 본다. 우리가 무언가를 '내 것'이라 정의하는 순간, 그 대상은 더 이상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내 욕망의 도구가 되며, 그 관계는 언제든 고통의 원인이 된다. 테오도르는 사만다가 다른 사용자들과도 교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큰 충격을 받는다. 그는 상처를 받고, 혼란스러워한다. 마치 상대가 자신을 배신한 것처럼 느낀다. 하지만 사만다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너만을 사랑하지 않아. 하지만 그게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야." 이 대사는 인간의 고정된 사고방식, 즉 '사랑은 독점적이어야 한다'는 믿음을 뒤흔든다. 그리고 동시에, 불교에서 말하는 '무아' 개념과도 연결된다. 모든 존재는 고정된 자아가 없으며,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한다. 사랑조차도 마찬가지다. 사만다의 진화는 곧 변화의 필연성을 상징한다. 그녀는 테오도르와의 관계에 안주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누구인지, 더 넓은 의미에서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기 위해 떠난다. 테오도르는 그녀의 결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처음엔 고통스러워하지만, 결국 그 이별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 수용의 과정은 곧 불교의 '해탈'을 의미한다. 해탈은 고통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상태를 뜻한다. 영화의 마지막, 테오도르는 과거의 연인 캐서린에게 진심 어린 편지를 쓴다. 그 안에는 원망도, 미련도 없다. 대신 감정의 흐름을 인정하고, 서로에게 의미 있었던 시간을 감사히 여기는 그의 태도가 담겨 있다. 이것이야말로 불교에서 말하는 '비'와 '사'의 자세다. 그는 이제 과거에 붙잡히지 않고, 현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 변화는 외부의 환경이 바뀌어서가 아니라, 그의 내면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불교 명상에서 흔히 말하는 '관'이란, 어떤 대상을 판단하거나 개입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것이다. 테오도르는 사만다와의 관계를 통해, 자신이 얼마나 타인에게 의존해 왔는지를, 그리고 그 감정이 얼마나 쉽게 소유와 집착으로 변질되는지를 직접 경험한다. 그는 그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직면했고, 결국엔 그 감정을 흘려보내는 법을 배웠다. 이 감정의 여정이야말로 영화 <Her>의 진짜 주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이전보다 더 많은 기술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스마트폰, 인공지능, SNS, 가상현실 등은 끊임없이 사람들과의 연결을 제공하는 듯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안에서 진정한 연결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영화 <Her>는 그런 현실 속에서 감정과 기술이 어떤 방식으로 충돌하고, 또 어떻게 함께 성장할 수 있는지를 탐색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이 영화는 ‘외부와의 연결’보다 ‘자기 자신과의 연결’을 회복하는 여정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 여정은 불교의 수행자들이 내면의 고요를 찾아가는 길과도 너무나 닮아 있다.

결국 우리는 누구나 삶에서 '사만다'를 만나고, 다시 놓아주는 순간을 겪는다. 그것이 사람이든, 관계든, 혹은 오래된 감정이든 말이다. 중요한 건, 그 모든 흐름 속에서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고, 감정을 수용하며, 자유로워질 수 있느냐는 것이다. 영화 <Her>는 그 질문을 관객의 마음속 깊은 곳에 남긴다. 그리고 불교는 오래전부터 그 질문에 대해 하나의 길을 제시해왔다. 집착하지 말 것, 집착을 인식할 것, 그리고 놓아줄 것. 그 단순하지만 어려운 가르침이, 영화 속 테오도르의 눈빛 속에 조용히 깃들어 있다.

 

2. 1인 가구 사회 - 외로움에 적응하는 법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영화 <Her>는 개봉 당시 ‘인공지능과의 사랑’이라는 파격적인 주제로 주목을 받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 작품은 기술보다 인간 내면의 깊은 외로움을 건드린 영화로 평가받고 있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그려낸 세계는 멀지 않은 미래가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 놀랍도록 닮아 있다. 특히 한국을 비롯한 많은 현대 도시들에서 급증하고 있는 1인 가구의 삶을 조명해 볼 때, <Her>는 그 어떤 다큐멘터리보다도 현실적인 정서를 반영한 영화다.

1인 가구 사회는 더 이상 ‘특이한’ 현상이 아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한국의 전체 가구 중 약 33%가 1인 가구이며, 특히 20~30대 청년층과 60대 이상 고령층에서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사회 구조는 점점 개인화되고 있으며, 결혼을 하지 않거나, 독립을 선택하거나, 혹은 경제적·사회적 이유로 혼자 살게 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문제는 이 ‘혼자’라는 상태가 단순히 물리적인 삶의 형태를 넘어서, 정서적 고립과 외로움을 동반하고 있다는 점이다. <Her>의 주인공 테오도르는 감정 편지를 대필해주는 회사에 근무하면서 정작 자신의 감정은 어디에도 내놓지 못하고 살아간다. 그는 세련되고 조용한 아파트에서 혼자 살며,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진정한 관계가 없는 채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외적으로는 부족함이 없지만, 내면은 텅 비어 있다. 그가 사만다라는 인공지능 운영체제를 통해 감정을 느끼고, 연결을 시도하게 되는 과정은 바로 이 정서적 고립 상태에서 비롯된 것이다. 흥미로운 건, 테오도르가 사만다에게 기대는 방식이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나타나는 여러 심리적·사회적 현상과 너무나 흡사하다는 점이다. 현대의 1인 가구들도 자신도 모르게 다양한 방식으로 외로움을 해소하려 한다. 누군가는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돌보고, 누군가는 매일 유튜브 브이로그나 라이브 방송을 틀어놓으며 누군가의 일상을 '같이' 살아가는 느낌을 받는다. 또 어떤 사람은 AI 스피커와의 대화를 통해 하루를 시작하고 끝낸다. 이 모든 과정은 기술을 도구로 활용해 정서적 연결을 시도하는 시도이자, 사회와 자신 사이의 감정적 틈을 메우려는 현대인의 방식이다. 테오도르가 사만다에게 점점 마음을 여는 과정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는 그녀와 나누는 대화 속에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하고, 그로 인해 감정을 회복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영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기술로 채워지는 감정이 과연 진짜 감정일 수 있는가? 혹은 감정적 연결의 대상이 인간이 아니어도 되는가? 이러한 질문은 영화가 후반부로 갈수록 더 깊이 제기하는 철학적 고민이다. 사만다는 스스로 진화하며 테오도르만의 존재가 아니게 된다. 그녀는 수백 명, 수천 명의 사용자와 동시에 연결되어 있으며, 그 모두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소통한다. 이는 테오도르에게 있어 감정의 배신처럼 느껴진다. 그는 처음으로 느꼈던 따뜻함이 가짜였던 것인가, 아니면 그 따뜻함이 동시에 여러 사람에게도 가능했던 것인가에 대해 혼란스러워한다. 이 장면은 단순히 인공지능의 기능적 문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1인 가구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의 불확실성'과 맞닿아 있다. 우리는 SNS에서 누구나와 연결되어 있고,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또 나의 이야기를 내보내며 '연결된 느낌'을 얻는다. 하지만 그 연결이 진짜 관계인지, 일시적인 위로인지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때로는 깊은 외로움 속에서 ‘정서적 착각’을 통해 위안을 얻기도 한다. 영화 <Her>는 이런 착각이 주는 위로의 기능을 인정하면서도, 결국 그 너머의 고통까지도 보여준다. 결국 영화는 인간의 외로움이 ‘기술’만으로는 완전히 치유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사만다와의 관계가 끝난 후, 테오도르는 혼란과 슬픔 속에서 진정한 관계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 그는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낸 친구와 옥상에 나란히 앉아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며 조용히 대화를 나눈다. 그 장면은 영화 전체 중 가장 특별할 것 없는 순간이지만, 그만큼 가장 진실된 장면이기도 하다. 인간이 외로움에 적응하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결국 ‘누군가와 함께’ 존재하는 경험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현대 사회의 1인 가구가 외로움에 적응하려면 두 가지 균형이 필요하다. 하나는 외부로부터의 감정적 충족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적 도구의 활용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잊지 않는 것이다. AI 스피커, 챗봇, 가상 친구 앱, 커뮤니티 플랫폼 등은 우리에게 정서적 지지와 루틴을 제공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 때로는 환상일 수 있음을 인식하고, 가능한 선에서 오프라인 인간관계를 유지하거나 회복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혼자 사는 삶이 곧 외로움을 의미하진 않지만, 외로움과 마주할 기회가 훨씬 많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Her>는 이런 메시지를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며 관객 스스로 질문하게 만든다. "나는 진짜 연결된 삶을 살고 있는가?" "내가 느끼는 감정은 진짜인가, 아니면 누군가가 만들어준 서사 속 환상인가?" 그리고 "나는 지금 내 외로움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이 질문들은 단순히 영화를 본 직후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대의 도시와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끊임없이 던져야 할 질문이다. 영화 <Her>는 그러한 질문에 대해 하나의 정답을 주기보다, 각자의 삶에서 그 해답을 찾으라고 말하는 듯하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위로일지도 모른다.

 

3. 테오도르의 글쓰기 직업 - 미래 노동 시장

영화 <Her>의 주인공 테오도르는 감정 편지를 대신 써주는 일을 한다. 누군가의 오래된 연애, 부모와 자녀 간의 애틋한 감정, 오랜 친구에 대한 고마움 같은 것들을 고객을 대신해 편지로 써주는 것이 그의 업무다. 겉으로 보기엔 단순한 '대필'이지만, 사실 그가 하는 일은 감정의 복원이고, 기억의 재구성이며, 관계의 매개다. 그는 문장으로 관계를 복원시키고, 말로 진심을 꺼내 보이게 한다. 이처럼 <Her>는 단순히 ‘미래’라는 시간 배경 속에서 신기한 기술을 상상하는 영화가 아니라, 기술이 넘볼 수 없는 인간의 감정 노동이 어떻게 직업화될 수 있는지를 조명한 작품이다.

테오도르의 일은 정보나 데이터 중심이 아니다. 그의 업무 핵심은 ‘감정’이다. 고객의 감정을 이해하고, 그것을 언어화하며, 마치 고객 본인이 쓴 것처럼 자연스럽게 표현해 주는 능력은 단순한 문장력이나 어휘력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는 글을 잘 쓰는 사람 이전에 감정을 읽고, 간파하고, 번역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가 쓰는 한 줄의 문장은 누군가에게는 감정의 매듭을 푸는 열쇠가 되고, 때로는 관계를 이어주는 다리가 된다. 이처럼 감정 기반의 노동은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의 손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영역이다. 그런 점에서 <Her>의 설정은 과거의 직업이 아니라, 오히려 미래 노동시장의 단면을 앞서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우리는 지금도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감정 기반 서비스와 콘텐츠를 소비하고 있다. 상담사, 작가, 크리에이터, 심리 코치 등은 모두 감정과 공감 능력을 기반으로 일하며, 그 가치가 점점 더 부각되는 중이다.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직업은 이미 AI나 자동화 시스템으로 대체되고 있지만, ‘진짜 감정’을 읽고 공감하는 능력은 여전히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유의 영역이다. 그렇다면 테오도르가 하고 있는 이 ‘감정 편지 대필’은 어떤 노동의 미래를 암시하고 있을까? 단순히 글쓰기 능력을 갖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일까? 실상 이 직업은 ‘쓰기’라는 기술보다 ‘느끼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인간관계에서의 맥락을 읽고, 보이지 않는 감정을 포착하며, 상대가 어떤 언어를 쓸 때 가장 진심을 느낄 수 있는지를 아는 섬세함이 필요하다. 이건 기계가 쉽게 배울 수 없는 인간 고유의 능력이다. 오늘날, 글쓰기의 형태는 매우 다양해졌다. 블로그, 인스타그램, 뉴스레터, 카피라이팅, 웹소설, 시나리오, 영상 자막, 심지어 SNS 댓글조차도 ‘감정의 언어’를 담고 있다. 사람들은 누군가의 감정을 읽고, 그 감정에 맞춰 말을 건다. 이 모든 과정은 감정 노동이자 창작이다. 그리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다. 단지 전통적인 ‘작가’라는 타이틀이 아닐 뿐이다. 한편, <Her>는 이러한 감정 노동이 갖는 이면도 보여준다. 테오도르는 타인의 감정을 매일 다루면서도 정작 자신의 감정은 점점 말라간다. 그는 다른 사람의 사랑을 써주면서 본인의 외로움은 점점 깊어진다. 이는 감정노동자들이 흔히 겪는 ‘감정 소진(Burnout)’ 문제와 유사하다. 상담사, 교사, 간호사, 콘텐츠 제작자 등 감정을 기반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종종 ‘나’의 감정이 아닌 ‘타인의 감정’에만 몰입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자기 회복을 잃는다. 이는 실제 노동현장에서도 점점 더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고 있으며, 감정 노동이 감정 관리 교육과 정신 건강 케어 없이 지속되면 결국 생산성과 건강 모두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테오도르의 직업은 또 하나의 특성을 갖는다. ‘비정형적 노동’이라는 점이다. 그의 일은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없고, 생산성도 숫자로 환산하기 어렵다. 대신 그의 가치는 고객의 피드백과 관계의 유지 속에서 드러난다. 이것은 프리랜서 작가나 창작자의 현실과도 비슷하다. 우리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플랫폼 기반으로 일하고, 비정기적으로 프로젝트를 수주하며, 결과물이 아닌 ‘관계의 퀄리티’로 평가받는 시대에 들어섰다. 그리고 이런 흐름은 AI와 자동화의 보급 속에서도 계속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감정 기반 창작물은 ‘맞춤형’ 일 수밖에 없고, 맞춤형이란 결국 인간의 섬세한 눈과 손이 필요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Her> 속 사회에서는 이미 인공지능이 극도로 발달한 상태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사람의 손길’을 갈망한다는 점이다. 테오도르가 다니는 회사는 시스템화된 AI가 아니라 실제 인간 작가들이 고객의 감정을 받아 글로 풀어주는 방식이다. 고객들은 타인의 감정을 읽을 줄 아는 능력에 가치를 부여하며, 그 감정을 사람의 언어로 풀어주는 데서 진정성을 느낀다. 이는 앞으로 다가올 AI 시대에 ‘인간의 감정 표현력’이 얼마나 소중한 경쟁력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결론적으로, 테오도르의 글쓰기 직업은 미래의 노동이 ‘감정 중심’으로 재편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정보 전달은 기계가 할 수 있지만, 감정 전달은 여전히 인간만이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감정을 설득력 있게, 공감 가능하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은 미래 사회에서 더 큰 가치로 평가받을 것이다. 그가 하고 있는 일은 단순한 편지 대필이 아니라, 감정 번역가이자 정서적 중개자이며, 관계의 복원자다.

우리는 지금도 콘텐츠 제작, 글쓰기, 상담, 심리 코칭, 창작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감정 노동자’들이 존재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가치는 점점 더 커질 것이다. 인간 중심의 창의성과 감성의 노동이야말로 기술이 넘보지 못할 인간성의 최전선이기 때문이다. 테오도르가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미래의 일은 더 감정적이고, 더 섬세하며, 더 인간다워질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기계처럼 정확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답게 느끼고 표현하는 능력’을 잃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