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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잠> 수면 장애, 수면 위협, 밤의 반복

by borybory-click 2025. 7. 18.

영화 &lt;잠&gt; 관련 사진

 

  • 개봉일: 2023. 09. 06.
  • 장르: 미스터리
  • 평점: 7.85
  •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 러닝타임: 94분
  • 감독: 유재선
  • 주연: 정유미, 이선균

 

1. 수면 장애

영화 《잠》은 단순한 공포영화로 보기엔 너무 섬세하고, 심리극이라 하기엔 너무 낯설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매일 반복하는 ‘잠’이라는 행위에, 알 수 없는 경계선의 공포가 끼어드는 순간을 포착한다. 영화를 관통하는 핵심 불안은 분명하다. 바로 “잠자는 동안 내가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닐까?”라는 근원적인 두려움이다. 이 설정은 허구적 장치라기보다는 실제 정신의학적 증상에서 비롯된 구조적 공포에 가깝다. 즉, 《잠》은 유사 수면 장애(sleep-related disorders)를 영화적 장치로 가져와 현실의 심리적 문제와 교차시킨 작품이다. 현대인의 불면증, 몽유병, 렘수면 행동장애, 나르코렙시 같은 증상은 단순히 의학적 질병의 범주를 넘어, 인간 내면의 갈등과 억압을 반영하는 거울과 같다. 영화는 이 점을 놓치지 않는다. 특히 주인공 남편 현수가 자는 동안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현상은 명백히 정신의학적 상징체계 안에서 작동한다. 이 글에서는 《잠》이 어떻게 유사 수면 장애를 내러티브의 핵심 축으로 삼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인간의 무의식, 억압, 정체성과 어떤 방식으로 얽혀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영화 초반, 현수는 자신의 이상행동에 대해 별다른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단순히 “꿈을 꾼 것 같다”고 말할 뿐이다. 그러나 정현(정유미 분)은 그의 행동에 명백한 불안감을 느낀다. 첫날은 잠꼬대로 넘길 수 있었지만, 두 번째, 세 번째로 반복되면서 그녀는 그것이 단순한 수면 문제 이상임을 감지한다. 이때 영화가 도입하는 방식은 굉장히 절제되어 있다. 괴성을 지르거나 귀신이 등장하는 전형적 호러 방식이 아니다. 대신 관객은 침묵, 느린 움직임, 기묘한 눈빛, 무표정한 얼굴 등으로 표현된 ‘다른 인격’의 현수를 마주하게 된다. 이 ‘변화’는 정확히 렘수면 행동장애(RBD)와 유사한 증상을 가진다. RBD는 꿈 속에서의 행동을 현실에서 그대로 실행하는 장애로, 자신이나 타인을 해칠 수 있다. 현실에서도 이 증상은 상당히 위험한 것으로 분류되며, 때로는 범죄와도 연결되기도 한다.《잠》은 이 현실의 경계에서 관객을 불안하게 만든다. 우리가 잠든 동안 우리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모른다는 설정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의식 통제력 상실’에 대한 공포를 건드린다. 이는 단순히 스릴러 요소가 아니라, ‘나는 나를 끝까지 믿을 수 있는가’라는 정체성의 핵심을 건드리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확장된다. 정신의학적으로 수면은 ‘무의식’이 표면화되는 상태다. 우리가 꿈을 꾸는 이유도, 무의식 속에 감춰진 감정이나 욕망이 의식의 필터 없이 분출되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꿈을 ‘억압된 욕망의 표출’이라 했고, 융은 이를 ‘개인적 무의식과 집단 무의식의 상징적 언어’라고 설명했다. 《잠》의 남편 현수는 깨어 있을 땐 따뜻하고 유순한 남자지만, 잠든 후에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그 모습은 감정이 배제된 채 폭력적이거나 기이하다. 이는 현대 정신의학에서 말하는 이중 인격적 분리와 매우 유사하다. 수면이라는 통로를 통해 무의식이 밖으로 배출되고, 이로 인해 억눌렸던 감정이나 트라우마가 ‘현실 속 위협’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 구조는 단순한 캐릭터 구축이 아니다. 영화는 수면을 더 이상 안식의 공간으로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수면은 심리적 불안과 억압의 폭발 지점이 된다. 밤이 되면 현실은 해체되고, 낮에 축적된 불안은 더 이상 억제되지 않는다. 정현이 점점 수면을 두려워하게 되는 것은 단순히 남편의 이상 행동 때문이 아니다. 그녀는 ‘잠을 잤다가 깨어나면 남편이 자신이 아닌 존재로 바뀌는’ 그 단절의 경험에서 공포를 느낀다. 수면은 이제 연결이 아닌, 분리를 상징한다. 영화 속 정현은 임신 중이다. 임신은 신체적 변화뿐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매우 불안정한 상태다. 특히 수면 주기와 관련된 호르몬 변화는 민감한 반응을 유발하며, 과도한 스트레스는 수면 장애를 동반하기도 한다. 이 맥락에서 보면 영화는 수면 장애라는 현상을 한 개인이 아닌 ‘부부 전체’, 나아가 ‘가족 전체’의 문제로 확장한다. 수면 장애는 때로 가족의 구조적 문제, 억압된 감정, 관계의 위기 등과 깊게 연결된다. 영화 속 현수의 수면 변화는 단지 개인의 증상이 아니라, 부부 관계에서 억눌린 갈등이 무의식적으로 분출된 결과일 수 있다. 정현은 남편을 의심하면서도 보호하려 하고, 남편은 자신의 행동을 믿지 못하면서도 반복한다. 이 모순적 감정은 수면이라는 무방비 상태에서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특히 남편의 이상행동이 임신 후 심화된다는 점은 암시적이다. 생명의 탄생이라는 중대한 변화 앞에서, 억압된 책임감, 두려움, 불안정한 자아가 더 강하게 표면화된다. 수면 장애는 그 불안의 결과이자, 가족 구성원 간 신뢰 붕괴의 징후로 읽을 수 있다.《잠》은 수면 장애라는 장르적 요소를 이용해 인간 내면의 깊은 갈등을 시각화한다. 특히 자면서 다른 인격이 된다는 설정은 단순한 공포 요소를 넘어, 자기 내부의 ‘타자화된 자아’와의 조우를 의미한다. 현수는 자면서 타인을 위협한다. 그는 깨어 있을 땐 그런 의도가 없다. 하지만 무의식은 그것을 표현한다. 이때 발생하는 괴리감은 인간 내면의 분열을 암시한다. 우리가 인식하는 ‘나’는 과연 전부일까? 혹시 무의식 속의 또 다른 자아가 나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신의학에서도 종종 몽유병이나 수면 중 인격 전환은 억눌린 트라우마나 분열적 자아 상태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이는 과거 경험, 해결되지 않은 감정, 혹은 내면화된 갈등이 외부로 돌출된 결과다. 영화는 그런 무의식의 작동 방식을 ‘수면’이라는 지극히 일상적인 행위를 통해 표현하며, 관객에게 감각적으로 전달한다. 특히 단조롭고 정적인 카메라 워크, 묵직한 사운드 디자인은 수면의 느릿한 리듬과 공포의 예감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영화 《잠》은 ‘공포’를 수면 장애라는 현실적 소재에서 출발해 인간 심리의 가장 깊은 곳까지 밀고 들어간다. 남편의 이상 행동은 단지 신체적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무의식의 출구이자, 관계 속 불안의 반영이며, ‘내가 나 자신을 믿지 못하는 순간’의 극단을 보여준다. 또한 영화는 수면 장애를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관계적, 심리적 문제로 확장해 해석한다. 정현과 현수 부부는 함께 자면서도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잠이 두 사람을 이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분리시키는 매개가 된다는 사실은 우리 일상의 가장 안전한 공간에서마저 불안을 발견하게 만든다.《잠》은 겉으로 보기엔 조용하고 단출한 영화지만, 그 속엔 인간 존재의 근원적 불안과 심리적 균열이 오롯이 담겨 있다. 수면이라는 보편적인 행위를 통해, 영화는 우리가 외면해온 심리의 어두운 구석, 그리고 관계 속의 위태로운 균형을 보여준다.

 

2. 수면이 안식이 아닌 위협으로 정의되는 구조

‘잠’은 누구에게나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행위다. 하루의 끝에 찾아오는 휴식, 정신과 육체의 회복, 다음 날을 준비하는 평화로운 시간. 대부분의 사람에게 잠은 ‘안식’의 상징이며, 안전하고 보호받는 상태로 여겨진다. 하지만 영화 《잠》(2023, 유재선 감독)은 이 상식을 정면으로 부정한다. 이 작품은 ‘잠이야말로 가장 위협적인 순간이 될 수 있다’는 불편한 전제를 통해 관객에게 전혀 다른 감각의 공포를 선사한다. 수면이라는 일상의 영역을 공포의 장치로 재구성한 이 영화는 단순한 심리극을 넘어, 인간 내면의 불안, 무의식의 작동 방식, 관계의 균열 등을 복합적으로 건드린다. 특히 ‘잠든다는 행위 자체가 곧 위험한 상태로 변질된다’는 구조적 전환은, 관객의 인식 자체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잠》이 어떻게 수면이라는 행위를 안식이 아닌 위협의 영역으로 옮겨놓는지를 서사, 연출, 감정의 흐름, 그리고 상징적 장치들을 중심으로 심층 분석하고자 한다.

공포 영화는 종종 극단적인 상황과 비일상적인 공간을 통해 공포감을 유도한다. 숲속 오두막, 폐쇄된 병원, 유령이 나오는 저택 등이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잠》은 그 반대다. 영화는 너무나 일상적인 장소, 너무나 익숙한 환경인 부부의 침실에서부터 공포를 발생시킨다. 주인공 부부가 공유하는 침대는, 애정과 신뢰의 상징이어야 할 공간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오히려 그 침대가 위협의 중심이 된다. 남편이 잠에 들면 예측 불가능한 행동을 하고, 아내는 매일 밤 두려움 속에서 그 곁을 지켜본다. 침대는 더 이상 편안한 곳이 아니라, 두려움이 시작되는 장소로 탈바꿈한다. 이는 곧 수면이라는 행위가 가진 본래의 의미 자체가 뒤집히는 순간이다. 이러한 전환은 단순한 설정의 전복이 아니라, 관객의 무의식 속에 깊이 뿌리내린 안전의 상징을 해체하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나는 언제나 침대 위에서 안전하다”는 인식이 무너지면, 그 뒤를 잇는 감정은 극도의 불안과 경계다. 이 불안은 영화의 전반부에서부터 꾸준히 쌓이고, 중반 이후에는 감정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도달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잠’이라는 행위는 안식이 아닌 위협으로 완전히 전복된다. 《잠》에서 가장 섬뜩한 장면은 ‘남편이 깨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타인을 위협하는’ 순간들이다. 그는 의식적으로 어떤 악한 의도를 품지 않았지만, 잠에 들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아내를 위협하거나 이상행동을 반복한다. 여기서 발생하는 가장 큰 공포는 단순한 폭력 그 자체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통제할 수 없다는 공포다. 수면은 본래 자율신경계에 의해 이루어지는 생리적 현상이다. 우리는 그것을 의도하지 않고, 컨트롤하지 않으며, 기억하지도 못한다. 이 상태에서 사람이 변한다면, 그건 나인가? 아니면 전혀 다른 누군가인가? 이 질문은 영화 속 아내에게만이 아니라, 관객 모두에게 주어진다. 잠든 나는 나일까? 내가 한 행동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나는 과연 나를 믿을 수 있는가? 이런 자기 신뢰의 붕괴는 단순히 인간관계의 불안을 넘어서, 자아의 중심을 흔드는 매우 근본적인 공포를 유도한다. 《잠》은 바로 이 지점을 정교하게 파고든다. 남편의 이상 행동은 귀신이나 악령에 빙의된 것처럼 묘사되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나 ‘현실적인 수면장애’처럼 그려진다. 그렇기에 더 무섭다. 왜냐하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수면의 영역은 누구나 매일 경험하는, 피할 수 없는 시간이기에 이 공포는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영화는 반복적인 수면-각성 구조를 통해 리듬을 만들어낸다. 매일 밤, 남편은 잠들고, 아내는 긴장하고, 무엇인가 발생하고, 다음 날이 오면 아무 일 없었던 듯이 일상이 반복된다. 이런 구조는 일종의 루프처럼 관객을 몰아가며 긴장감을 축적시킨다. 하지만 이 리듬은 완전히 예측 가능하지 않다. 어느 날은 아무 일도 없고, 어떤 날은 극단적 위협이 발생한다. 바로 이 예측 불가능한 리듬이 ‘수면’이라는 시간 자체를 불확실성의 상징으로 만든다. 우리는 보통 수면 시간을 예측 가능한 패턴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잠》에서는 그 패턴 자체가 위협의 전조가 되며, 공포는 시간과 반복 속에서 증식된다. 이러한 리듬 구성은 관객에게 체감적으로 각인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우리는 스스로도 자꾸만 ‘오늘 밤은 괜찮을까?’라는 걱정을 반복하게 된다. 영화는 수면을 서사의 흐름 속에서 심리적 고통의 클라이맥스로 밀어 올리는 방식으로 배치하며, 점점 더 그것이 위협의 상징이 되는 구조를 완성한다. 정현은 남편의 수면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한다. 약을 먹이고, 수면 센터를 찾고, 점을 보러 가며, 심지어 기도를 한다. 하지만 그 어떤 노력도 결과를 바꾸지 못한다. 이것은 단순한 서사상의 반복이 아니라, 수면이라는 행위를 외부적 도구로 제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장치다. 수면은 본래 자율적인 생리현상이지만, 영화는 이를 통제 불가능한 무의식의 상징으로 확장시킨다. 아무리 애써도, 아무리 준비해도, 잠에 들면 자신이 아닌 존재가 된다는 공포. 이것은 단순히 남편의 문제만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모두가 가진 근원적 불안, ‘자기 부정’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한다. 특히, 약물이나 치료로도 개선되지 않는 설정은 현대 사회의 불안한 현실과도 맞물린다. 우리는 불면증이나 불안 장애를 약으로 다스리고자 하지만, 그것이 근본적인 해결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잠》은 그 사실을 부드럽지만 섬뜩하게 관객에게 전달하며, ‘잠’이라는 것 자체에 대한 불신을 형성시킨다. 《잠》은 일상의 가장 사적인 시간인 수면을 공포의 대상으로 전환시키는 데 성공한 작품이다. 수면은 그동안 누구에게나 무해하고, 자연스럽고, 회복의 시간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모든 전제를 해체한다. 수면은 ‘내가 나를 놓는 시간’이며, ‘가장 무방비한 순간’이자, ‘무의식의 폭력이 현실로 드러나는 시간’이 된다. 이 구조적 전환은 단순한 장르적 트릭이 아니라, 현대인이 가진 심리적 균열과도 맞닿아 있다. 누구도 완벽히 자신의 무의식을 제어할 수 없고, 누구나 자는 동안 자신이 아닌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결국 우리 모두를 불안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불안은 단순히 스크린 속 이야기에 머물지 않는다. 영화가 끝난 후,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려는 그 순간에도, 관객은 문득 생각하게 된다. “오늘 밤도 나는, 나로 남아 있을 수 있을까?”

 

3. 밤의 반복

 

영화 《잠》의 구조적 장치로서의 ‘밤’ – 반복성과 리듬성이 만들어내는 공포의 미학

유재선 감독의 영화 《잠》(2023)은 공포와 불안이라는 감정을 매우 일상적인 공간과 시간 속에서 끌어낸다. 특히 이 영화는 ‘밤’이라는 시간대의 반복을 통해 서사 전체의 리듬을 조율하고, 관객의 심리적 반응을 정밀하게 조작하는 데 성공한다. 공포 장르에서 밤은 흔히 익숙한 공포의 배경으로 쓰이지만, 《잠》에서는 단순한 무대 그 이상이다. 이 영화에서 밤은 내러티브의 구조적 핵심이며, 반복성과 리듬성이라는 두 가지 원리를 통해 공포가 생성되고 증폭되는 시간적 장치로 기능한다.

《잠》을 분석하는 데 있어 ‘밤’의 위치는 그저 물리적인 시간이 아닌, 사건이 발생하는 고정된 반복 단위이며, 동시에 정서적 리듬의 조율자다. 이 글에서는 ‘밤’이 영화 속에서 어떻게 반복되며, 그 반복이 어떤 리듬을 형성하고, 결국 관객의 심리를 어떻게 조작하며 스토리의 긴장감을 이끌어내는지를 구조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첫 번째 밤 – 평온함과 낯섦의 이중 구조

영화는 처음부터 관객에게 불안감을 조성하지 않는다. 오히려 첫 번째 밤은 평화롭고 단조로운 리듬으로 시작된다. 부부는 하루를 마무리하고, 침실에서 대화를 나누며, 자연스럽게 잠자리에 든다. 조명은 따뜻하고 카메라는 고정되어 있으며, 리듬은 느릿하다. 하지만 바로 이 평온함이 영화 전체의 리듬에서 중요한 대비를 만든다. ‘이렇게 평화로웠던 시간이 무너질 수 있다’는 암시가 무의식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 첫 번째 밤은 마치 도입부의 심장 박동처럼 느리게 흐른다. 이는 관객의 방심을 유도하고, 동시에 다음 밤부터 발생할 사건의 충격을 배가시키기 위한 감정적 장치로 기능한다. 밤의 리듬은 이처럼 의도적으로 설정되며, 감정적 대비 효과를 위한 기저로 작용한다.

반복되는 밤 – 리듬의 변주가 만들어내는 불안의 패턴

영화는 이후 본격적으로 밤을 ‘반복되는 시간의 장치’로 활용한다. 사건은 언제나 밤에 발생하고, 아침이 되면 다시 평온한 일상이 이어진다. 이러한 구성이 반복되며, 관객은 ‘밤이 오면 무언가가 일어난다’는 암묵적 규칙을 체득하게 된다. 이 규칙 자체가 영화 속 리듬을 구성하는 핵심이다.

그런데 이 리듬은 매번 같은 방식으로 반복되지는 않는다. 어떤 밤은 조용하고, 어떤 밤은 미묘한 이상 행동이 발생하며, 또 다른 밤에는 위협적인 장면이 펼쳐진다. 이렇게 변화무쌍하게 구성된 리듬은 관객에게 예측 가능성과 불확실성을 동시에 경험하게 만든다. ‘또 무슨 일이 일어날까’라는 기대와 ‘이번엔 정말 위험할지도 몰라’라는 불안이 중첩된다.

이와 같은 감정의 리듬은 단순히 서사의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공포를 점진적으로 누적시키는 데 있어 핵심적이다. 관객은 매 밤마다 긴장을 높이며 기다리게 되고, 이러한 감정적 누적은 영화 중반부부터 극대화된다. 밤이라는 시간은 더 이상 하루의 일부가 아니라, 공포가 작동하는 조건으로서 기능한다.

침묵과 정지의 리듬 – 밤을 구성하는 청각적 요소

영화 《잠》에서 밤의 리듬은 단지 서사적 반복이나 시각적 암시만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오히려 더 본질적인 리듬은 청각적 설계와 정지의 시간 속에서 조율된다. 잠든 상태는 원래 움직임이 거의 없는 상태다. 하지만 《잠》은 바로 그 움직임 없음, 즉 정적을 통해 긴장을 끌어올린다.

영화는 밤의 장면에서 배경음악을 거의 배제하고, 침묵, 호흡, 아주 미세한 소리만으로 리듬을 구성한다. 관객은 주인공 부부와 함께 그 침묵 속에 갇히고, 아주 작은 발소리나 베갯잇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이러한 사운드 리듬은 시각보다 훨씬 더 강하게 관객의 감정에 침투한다. 조용한 가운데 갑작스럽게 들리는 소리는 단순한 놀람을 넘어 불안의 촉매제로 작동한다.

정현이 남편의 기척 하나에 긴장하고, 그 미세한 소리 하나에 눈을 번쩍 뜨는 순간, 관객 역시 동일한 심리적 경험을 공유한다. 이는 리듬이 단지 시간의 흐름이 아닌 감정의 파동이라는 것을 명확히 보여준다. 밤은 이처럼 소리 없는 사운드의 리듬으로 공포를 구축해낸다.

리듬의 고조와 파열 – 공포의 클라이맥스로서의 밤

영화가 중반을 넘어가면, 밤의 리듬은 점점 더 빠르고 공격적으로 변한다. 초기에는 천천히 쌓아올린 긴장이, 후반으로 갈수록 압축되고 폭발한다. 이는 관객에게 심리적 파열을 안겨주며, 리듬의 절정을 형성한다. 공포는 이제 정적이나 반복만으로 설명되지 않고, 감정의 붕괴와 결합된 리듬의 왜곡으로 나타난다.

정현은 더 이상 밤을 견딜 수 없게 되고, 관객도 그 리듬 속에서 탈출하고 싶어진다. 이때 밤은 그저 반복되는 시간이 아니라, 심리적 트라우마가 내면화된 시간의 흐름으로 변질된다. 밤이 올 때마다 반복되는 불안, 그 불안이 다시 밤을 불러들이는 구조. 이것은 단지 영화의 리듬이 아니라, 공포를 일으키는 심리적 시간의 메커니즘이다.

낮과 밤의 대조 – 리듬을 뚜렷하게 만드는 대비 구조

《잠》은 리듬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낮과 밤의 대조를 매우 뚜렷하게 설정한다. 낮은 밝고 평온하며,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한 분위기로 구성된다. 낮 동안 정현과 현수는 웃고 대화를 나누고, 일상적인 일들을 함께 한다. 하지만 바로 그 ‘정상적인 낮’이 있을수록, 밤의 공포는 더욱 선명해진다.

이러한 구조는 리듬의 기본 원칙인 강약의 대비를 따른다. 낮이 감정의 하강이라면, 밤은 감정의 상승이고, 이 두 축이 교대로 반복됨으로써 감정의 진폭이 커진다. 관객은 낮에는 안심하고, 밤에는 긴장한다. 이 리듬이 반복될수록 관객은 더 깊은 피로와 몰입감을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밤이라는 시간은 낮과의 관계 속에서 더 명확한 역할을 부여받는다.

결론 – 반복과 리듬으로 구축된 공포의 시간, 밤

《잠》은 밤이라는 시간대 자체를 내러티브의 고정 구조로 설계하면서, 반복성과 리듬성이라는 영화적 장치를 정밀하게 활용한다. 매일 반복되는 밤은 단지 배경이 아니라 사건 발생의 장치이며, 동시에 감정의 고조를 유도하는 리듬이다. 정현의 공포는 남편의 이상행동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밤이 또 온다’는 반복성에 있다.

밤의 리듬은 정적과 불확실성, 예측과 파열, 청각적 긴장과 심리적 압박을 통해 점진적으로 구축된다. 관객은 리듬에 익숙해지면서도 매번 새로운 불안을 경험하게 되고, 그 결과 이 영화는 단순한 공포를 넘어 ‘시간이 주는 공포’를 만들어낸다.

《잠》은 밤이라는 일상적인 시간을 비일상적인 위협의 구조로 재편하고, 그 반복과 리듬을 통해 심리적 공포를 증폭시킨다. 이는 단지 장르적 완성도를 높인 것이 아니라, 시간과 정서의 연계를 통해 새로운 형태의 영화적 감각을 제시한 사례로 평가될 수 있다.
이 영화에서 밤은 그저 지나가는 하루의 절반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절대 자유로울 수 없는 반복의 공포이며, 리듬으로 침투하는 감정의 무대다.